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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신익 Apr 11. 2017

[영화 리뷰] - <분노>

무언가를 믿거나 믿지 못한 자기 자신에 대한 분노

  와타나베 켄, 마츠야마 켄이치, 츠마부키 사토시, 미야자키 아오이 등등. 일본의 내로라하는 배우들이 총출동한데다가 음악은 <전장의 크리스마스>, <마지막 황제>, <레버넌트: 죽음에서 돌아온 자> 등 전세계를 넘나들며 많은 영화에서 명곡들을 남긴 류이치 사카모토가 맡았다. 감독의 이름은 이상일. 어떤 대단한 한국인 감독이길래 이런 배우들이 캐스팅이 됐을까 하고 찾아보니 이상일 감독은 재일교포였다. <보더 라인>, <69 식스티 나인>, <훌라 걸스>, <악인> 등 일본 평단의 극찬을 받은 작품들을 연이어 연출하며 일본 영화계에서 대중과 평단에게 확실한 인상을 심은 감독이었다. <분노>는 이상일 감독이 왜 일본 영화계에서 인정받는지를 잘 알 수 있는 작품이다. 철저히 감정 위주로 흘러가는 작품임에도 관객들에게 부담스럽지 않으면서도 여운이 깊은, 묘한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아마 이 영화를 관람하고 영화를 쉽게 잊을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영화는 세 개의 에피소드가 병렬적으로 구성된 형식의 플롯을 가지고 있다. 사실상 옴니버스에 가까울 정도로 이 영화는 각 에피소드간에 현실적 연관성을 두지 않는다. 여러 에피소드를 다루는 영화는 이내 각 에피소드 사이의 연관성이 발견되고 그에 따라 각 에피소드가 이야기 상에서 얽히는 경우가 많지만 이 영화는 끝까지 별개로 가져간다. 세 에피소드를 관통하는 것은 영화가 시작하고 제시되는 살인 사건을 제외하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는 세 에피소드에 상황과 감정 상의 공통점을 두어 독특한 감정과 미스테리를 만들어낸다. 세 에피소드 모두 신원을 알 수 없는 누군가가 각 에피소드 주인공들의 삶에 개입하고 각별한 사이가 되는데 여기서 발생하는 믿음, 그리고 완전히 공유되지 않은 전사들을 통한 의심이 주요 분위기를 형성하고 앞서 제시된 살인 사건을 통해 미스테리를 형성한다. 참으로 인간적인 미스테리다.

  감정적으로는 같지만 각 에피소드에는 수 많은 차이점들이 존재해 각 에피소드의 개성이 뚜렷하게 드러난다. 부녀 관계, 청소년, 강간 피해자, 동성애자, 시골과 도시 등. 인물의 성격과 공간을 상이하게 가져가면서 각 에피소드는 그 자체로 훌륭한 이야깃거리가 될 만큼 첨예하게 잘 짜여져있다. 그리고 각 에피소드가 끝까지 만나지 않는 구조로 진행이 되면서 그 차이점은 개성있는 영화의 분위기를 만든다. 특히 영화가 다루고 있는 인물과 공간의 범주는 평범해보이는 요소들부터 사회적 약자, 혹은 피해자의 시선까지 포함을 하기에 각 에피소드별 특징이 두드러지면서도 감정을 일반화하여 일관성을 지켜낸다.

  영화의 연출 자체도 감정 위주로 흘러간다. 사건의 인과 관계를 물어보고 그에 따라 인물을 믿거나 의심하는 것으로 보이지만 중요한 것은 믿거나 의심하는 행위 그 자체이다. 이에 대한 첫 번째 대표적인 예시는 영상과 소리의 분열이다. 무슨 말이냐면 에피소드 1의 화면에 에피소드 2의 소리가 입혀지는 것이다. 만약 영화가 의심의 내용을 증명하는 게 목적이었다면 굳이 이런 무리한 편집을 할 필요가 없다. 교차 편집이 있을 지언정 영상과 소리는 분열되지 않았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세 에피소드가 공유하고 있는 감정이다. 그렇기 때문에 에피소드 간의 영상과 소리를 분열하면서 진행하는 편집이 가능했으며 동시에 이러한 편집을 선택한 이유라 생각한다. 이러한 연출을 통해 세 에피소드가 가지는 공통적인 감정을 지속적으로 강조해 영화의 일관성을 지키며 감정을 누적시킨다. 그렇기 때문에 영화가 결국 어마어마한 감정을 전달하면서도 관객들에게 큰 부담을 주지 않을 수가 있던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두 번째 대표적 예시는 인서트 컷 혹은 교차 편집의 사용이다. 영화는 유독 인서트 컷이나 교차 편집된 씬들이 많다. 인서트 컷과 교차 편집된 씬들은 물론 당연히 감정의 이미지화, 그로 인한 간결한 표현을 위해서라 생각한다. 일례로 유마[츠마부키 사토시분]가 경찰로부터 전화를 받고 나오토[아야노 고 분]의 물건을 정리하는 씬을 생각해보면 전화를 받는 컷 이후에 물건을 정리하는 컷들이 교차로 편집된다. 이미 경찰로부터 전화를 받았을 때 나오토에 대한 마음을 정리하는 것을 물건을 정리하는 것을 통해 표현하고 있다. 이런 교차 편집이나 인물의 감정을 표현하는 인서트 컷들이 영화 내에 다수 분포해있고 이러한 표현은 인물의 감정을 짧은 이미지로 만들어낸다. 그렇기 때문에 부담스러울만큼 거대한 감정의 총량을 영화가 가지고 있음에도 관객들에게 거부감 없이 받아들여질 수 있었던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미스테리의 형식을 가지고 있음에도 이렇게 감정 위주로 연출한 이유는 영화의 주제를 부각시키기 위해서라 생각한다. 영화는 분노의 근원을 찾아가는 영화다. 그 근원은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불신, 혹은 믿음에 대한 배신이며 결국 분노가 향하는 것은 믿음의 대상이 아니라 믿음의 주체, 자신 스스로다. 죄책감에 못이긴 분노를 위해 영화는 철저히 감정 위주로 연출되고 표현되며 영화 내내 감정을 누적한다. 그렇게 했기 때문에 영화 말미, 진실을 직면했을 때 세 에피소드의 주인공들이 보이는 반응은 관객들에게 절대로 잊을 수 없는 감정적 여운을 남길 수 있게 된다.

  물론 영화에 아쉬운 부분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내용상으로 구원의 기회를 받는 인물이 단 한 에피소드에서만 등장해 이야기의 균형이 조금은 어긋나보이며 가장 무거운 짐을 가장 어린 인물에게 짊어지게 한다는 점에서 영화는 정말 잔인했다. 또한 모든 시작점이 살인 현장에 적혀 있던 '분노'라는 글자인 점을 생각해보면 살인자의 분노에 대해서는 설명이 쉽게 넘어가는 점이 아쉽다. 물론 피해자 입장에서의 영화라고 생각하면 가해자의 감정을 추가하는 것이 옳지 않을 수도 있지만 최소한의 설정을 추가할 수는 있지 않았을까 생각을 해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가 선사하는, 뒤섞인 장르적 재미와 세 에피소드를 개별적으로 가져가면서도 묶여있는 듯한 묘한 연관성을 표현하는 매끈한 연출력, 다채로운 표현, 무엇보다 감정적 충격과 여운은 영화가 끝나고 며칠이 지난 지금까지도 잊을 수가 없다. 영화 속 많은 요소들이 복잡하게 공존하고 있다는 점, 그리고 이를 물 흐르듯 하나의 영화에 풀어냈다는 점에서 이상일 감독의 역량을 충분히 확인할 수 있다는 점이며 이 영화가 전달하는 감정 자체만으로도 영화는 길이 기억에 남을 작품이 아닐까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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