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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신익 Apr 10. 2017

[스포일러有] <프리즌>의 캐릭터 '정익호' 읽어보기

한 구역의 왕이 되고 싶었던 남자

  한국 영화에도 관객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긴 캐릭터들은 정말 많다. 형사의 대표격인 <공공의 적>의 강철중[설경구 분], 복수의 아이콘이자 한국 영화에서 가장 절박한 캐릭터가 아닐까 싶은 <올드보이>의 오대수[최민식 분], 그리고 존재감 자체로 위압감을 선사하는 <타짜>의 아귀[김윤석 분]나 <추격자>의 지영민[하정우 분]도 있었다. 찾아보면 정말 잘 만든 캐릭터들이 한국 영화 곳곳에 자리하고 있다. 그리고 최근 개봉한 어느 한 작품에서 위에 언급한 캐릭터들과 어깨를 견줄만한 캐릭터가 탄생했다. 아마 한국 영화 중에서 가장 존재감이 강하고 무서운 죄수가 아닐까 생각되는데, 바로 <프리즌>에서 배우 한석규가 연기한 정익호다.

  오늘은 이 정익호라는 캐릭터에 대해서만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캐릭터 자체가 흥미롭게 만들어진 것에 더해 한석규라는 배우의 어마어마한 연기력으로 제대로 살려 내니 굉장히 묵직하고 기억에 남는 캐릭터가 만들어졌다고 생각한다. 그럼 <프리존> 속 정익호에 대해 본격적으로 이야기를 해보자.

  <프리즌>은 감옥이라는 점을 제외하면 다른 범죄 영화(정확히 말하면 조폭이 등장하는 범죄 영화)와 같이 각기 다른 조직이 있고 그 조직간의 신경전이 주를 이루는 작품이다. 그 속에서 정익호는 어느 영화에든 항상 있는 '큰형님'의 역할을 하는 캐릭터다. 자신의 조직원에 대해 나름대로의 애착도 있고 자신이 속한 사회(=교도소)의 질서를 정렬하는, 어찌 보면 조폭 영화에서 보면 이상적인 큰형님의 모습을 그대로 가지고 있다고 볼 수도 있다. 하지만 익호와 다른 조폭 간에는 가장 큰 차이점이 있다. 바로 익호는 다른 어떤 요소들보다 자신의 구역을 굉장히 중요하게 여긴다는 점이다.

   영화 속 익호의 행동들을 생각해보면 자신의 구역을 뒤흔들만한 요소들에 대해서는 직접 나서서 해결하는 모습도 보이지만 그렇지 않은 갈등에 대해서는 크게 관여를 하지 않는 편이다. 대표적으로 유건[김래원 분]과 창길[신성록 분]의 갈등이다. 지속적으로 갈등을 겪는 두 사람에게 익호는 이참에 서열 정리를 하라며 시원하게 싸우라고 한다. 이들이 아무리 대차게 싸워봤자 자신의 구역인 교도소의 질서를 깰만한 갈등은 아니다. 그저 하나의 이벤트이고 구경거리이기 때문에 가볍게 이야기를 하곤 한다.

  하지만 자신의 수하가 되고서 유건이 기존 오른팔인 홍표[조재윤 분]가 갈등할 때는 반응이 다르다. 그들의 갈등은 자기 구역의 질서를 흔들 수도 있는 갈등이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이 직접 개입해서 갈등을 해결한다. 유건의 형 유철[김찬형 분]이 죽임을 당한 것도 이 범죄의 소굴을 세상 밖으로 꺼내 이 구역을 뺏어가려 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게 익호는 자신의 구역에 위협을 가하는 요소들을 거침없이 제거해나가면서 자신의 구역을 확장해나가려 한다. 그리고 자신의 구역에서 벗어나려 하지 않는다. 그 쯤 되는 권력이 있다면 감옥 밖으로 나가고도 남을 정도의 힘인데다가 강 소장[정웅인 분]이 그를 석방하려 하자 그 반응은 오히려 공격적이다.

  물론 평범한 틀에서 보면 이는 평범한 큰형님들의 반응이라고 볼 수 있다. 익호의 캐릭터에 대한 가장 확실한 증거는 그 공간을 침범하는 가장 큰 몇가지 시도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첫 번째는 배국장[이경영 분]이 처음 등장했을 때다. 교도소 안에서의 익호만의 공간, 원예실에 대해 불만을 제기하고 직접적으로 그 공간에 들어와 익호를 지속적으로 공격한다. 그 때 나오는 숏들은 익호가 어딘가를 바라보는 얼굴 찍 숏, 그리고 이어지는 숏은 원예용 가위가 잡힌 숏이다. 사실상 익호의 살인을 예고하는 숏들이나 다름이 없다. 물론 유건의 개입으로 인해 무산되지만 자신의 공간에 들어와 자신만이 생활을 방해하는 배국장의 모습에 이렇게 공격적으로 대응하는 것이라 생각된다.

  두 번째는 창길의 공격이다. 창길은 자신의 패거리와 함께 식사하고 있는 익호를 공격한다. 이 때 익호는 수감자 한 명의 눈을 파내는, 지금까지 점잖던 그에게서는 예상할 수 없었던 극도로 잔인하고 광적인 행동을 하게 된다. 앞서 말한대로 창길은 익호에게 있어 그렇게 중요한 존재가 아니었다. 하지만 이 상황이 벌어지는 공간을 생각해보자. 작업장과 조리장은 익호와 그 패거리들의 공간이다. 그들이 따로 밥을 먹고 주로 일을 하는 공간이며 김박사[김성균 분]와 외부 인사가 들어와 거래를 하는 공간이다. 창길은 이 씬에서 처음으로 이 공간을 침범했고 이 공간의 질서(=익호)를 깨려고 했다. 그렇기 때문에 그 후속 조치로 극단적인 숟가락 액션을 선보이고 창길을 죽인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소개할 장면은 마지막 유건과 익호의 충돌이다. 익호는 교도소에 방화를 하는데 발화 지점이 작업장과 원예실이다. 불이 나고 폭발이 일어나자 익호는 화제를 진압하기 위해 모든 죄수들을 풀으라고 한다. 그리고 그 때 익호의 표정과 대사 톤을 생각해보자. 그 목소리는 분노에 가득 찬 목소리다. 숟가락 액션을 할 때의 광기 하나 없이 오직 분노에 가깝다. 유건이 저지른 방화는 지금까지 익호의 구역에 가해진 가장 최대의 공격이기 때문이다. 익호를 끌어내기 위해 유건이 방화를 선택한 이유도 같은 이유에서가 아닐까 싶다. 자신의 구역에 대한 직접적인 공격은 익호를 자극할 것이고 그에 따라 익호를 밖으로 끌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마지막 장면의 반응은 익호가 자신의 구역에 대한 애착이 없다면 일어날 수 없는 상황이라 생각한다.(상식적으로 자기 밑의 애들을 화제 진압에 투입하고 말지 뭐하러 자기가 직접 들어가겠나)

  그래서일까. "이 안에서 대한민국 전부 내 구역으로 만들어 버릴거야."라는 대사가 여러모로 의미심장해 보인다.  얼핏 보면 '내 구역으로 만들어버린다'는 야망이 더 강해보이지만 필자는 '이 안에서'라는 대사가 재미있는 대사로 보였다. 보통의 영화들에서 범죄자들이 출소 후의 계획을 구상한다면 익호는 나갈 수 있는 힘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감옥 내에서 모든 계획을 세우고 실행한다. 문장을 기계적으로 뜯어보면 '이 안에서'는 일종의 전제 조건이다. 익호는 밖에서 세상을 내 구역으로 만들어버리는 것이 아니라 '감옥 안에서' 이 일을 해내고자 한다. 그 점에서 위 대사는 공간에 대한 애착이 묻어나는 대사로 보인다.

  <프리즌>은 익호의 존재로서 상황이 성립하는 영화로 보인다. <프리즌>의 상황은 감옥 외부와 감옥 내부 둘로 나뉜다. 감옥 외부에서는 수감자들의 범죄 행각이 이뤄지고 그에 대한 관련 세력들이 존재하며 이를 추적하는 경찰 집단이 있다. 반대로 감옥 내부는 수감자들 사이의, 그리고 수감자들과 간수들 사이의 영역 싸움이 있다. 전자의 상황이 성립하려면 교도소 내부에 법을 무시하고 수감자들을 자유롭게 조종할절대 권력자가 있어야 한다. 또한 후자의 상황이 성립되려면 그 절대 권력자가 죄수여야 한다.(만약 교도관 측에 절대 권력자가 존재한다면 수감자 사이의 생태계가 이토록 첨예할 수 없으니까.) 익호는 그 두 가지의 전제를 가지고 탄생한 캐릭터다. 그리고 그가 수감자로서 남기 위해 나현 감독은 익호의 캐릭터에 공간에 대한 애착을 넣은 것 같다. 이 영화가 구상될 때 익호라는 캐릭터가 이 독특한 상황보다 먼저 구상됐을 것 같지는 않다. 다만 이 상황을 합리화하는 과정에서 익호라는 캐릭터는 굉장히 독창적이면서도 필요한 조건들을 잘 갖춘, 개성과 존재감이 굉장히 강한 캐릭터가 아닌가 생각했으며 그 캐릭터는 한석규라는 대 배우를 만나 이렇게 한 마리의 괴물이 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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