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원 우먼 쇼'
제임스 카메론은 영화의 마법이 감독의 생각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배우의 마음에서 나온다고 말했다. 그 만큼 배우가 영화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굉장히 크다. 관객들이 스크린을 보며 시선이 향하는 것은 결국 배우이기 때문이다. 그런 만큼 몇몇 영화는 일부 배우, 혹은 캐릭터에 기대어 영화를 진행한다. 굉장히 큰 위험 부담이 있겠지만 만약 좋은 배우를 만난다면 그 만큼 든든한 경우도 없을 것이다. <미스 슬로운>은 그런 영화다. 이름부터 캐릭터의 이름을 지칭하는 이 영화는 제시카 차스테인이란 훌륭한 배우가 사실상 혼자 이끌어간다고 봐도 무방한 영화다. 만약 그녀가 없었다면 이 영화가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꽤나 욕심이 많은 영화다. 실화는 아니지만 소재로 삼는 로비스트와 정치인의 세계는 워낙 방대하다보니 영화에 굉장히 많은 양의 에피소드가 들어간다. 그리고 그 에피소드들은 하나의 캐릭터, 미스 슬로운[제시카 차스테인 분]을 중심으로 흘러간다. 분명 긴장감이 넘치고 실화라고 해도 믿을만큼 사실적인지라 영화를 보다보면 빠져드는 맛이 있는 이야기지만, 그 양이 워낙 많고 지적이고 두뇌 회전이 빠른 주인공을 중심으로 돌아가다보니 일부 설명이 부족한 채 넘어가는(혹은 필자가 캐치하지 못하는) 부분들이 다수 있었다. 일종의 수싸움을 중심으로 하는 만큼 인과 관계가 복잡한 것도 이러한 단점에 조금은 기여하지 않았나 생각된다.
하지만 제시카 차스테인의 연기를 보고있으면 영화의 플롯에 대한 이성적인 이해를 뒤로 하더라도 영화가 전달하고자 하는 긴장감과 위기감이 고스란히 전달된다. 사실상 '원 우먼 쇼'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로 영화 전방위에 걸쳐서 영향력을 선사하고 있다. 물론 슬로운이라는 캐릭터 자체가 그렇다. 주변 인물들까지 확실한 계산 하에 컨트롤하는, 철저하고 무서운 인물이지만 이를 캐릭터의 존재 이상으로 살려내는 것이 제시카 차스테인의 연기였다. 태연한 웃음, 때론 감정적인, 때론 평범한 그 모습 뒤에 존재하는 냉철함과 치밀함, 그리고 굽히지 않는 신념. 슬로운이라는 이중적인 캐릭터를 완벽하게 전달하고 스크린 위에 살려낸 것은 다름이 아닌 제시카 차스테인의 연기였다.
좋은 영화를 만들기 위해서는 많은 요소들이 필요하다. 좋은 시나리오, 좋은 감독, 좋은 제작자, 좋은 배우, 기술적인 부분들에서도 좋아야 한다. 어찌 보면 제임스 카메론 감독의 명언은 과도하게 배우에 치중하게 된 이야기라고 보일 수도 있지만 이런 영화들을 볼 때마다 그 말이 맞음을 다시금 실감하게 된다. 뒤에서 받쳐주는 좋은 요소들이 좋은 영화를 만들 수는 있다. 하지만 말 그대로 영화의 '마법'이 일어나려면 뛰어난 배우가 있어야 한다. <미스 슬로운>은 비록 그 마법의 경지까지 간 작품은 아니었다. 하지만 영화에서 배우의 힘이 얼마나 중요한지 다시금 깨닫게 해주는 작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