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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국현 Jul 16. 2022

예미니스트들을 위하여

감정의 안테나 두 번째 이야기

나는 예민하다. 성격이 예민하다. 그것도 매우 예민하다. 상대방이 무심코 던진 사소한 말 한 한마디에도 가슴에 화석으로 남는다. 한 번 상처받으면 잊어버리지 못하고 자꾸 곱씹는다. (뒷 끝이 길다) 상대방은 분명 아무 생각 없이 한 말일 텐데 ‘저 사람은 무슨 의도로 그런 말을 했을까?’ ‘실수로 한 말이 원래는 본심이라고 하던데’ 기타 등등 혼자서 장편 소설을 쓴다. 행여 내가 상대방에게 말 한마디 실수라도 하게 되면 들은 사람이 어떻게 생각할지 오만가지 생각을 하다가 안드로메다까지 간다. ‘분명히 (나처럼) 삐졌을 텐데 언제 어떻게 사과해야 하지?’ 별별 걱정을 다한다. 한국 사람이면 가장 많이 하는 거짓말이라는 “다음에 밥 한 번 먹자.”라는 말도 쉽게 흘려듣지 못하고 ‘언제 어디서 무얼 먹어야 하나?’ 하면서 혼자 끙끙 앓는다. 


내가 부주의하여 바닥에 있는 개미를 보지 못하고 밟아서 그 개미가 죽었을 때 죄책감을 느낀다. ‘이 개미에게도 사랑하는 가족이 있을 텐데…’ 모기를 잡을 때도 마찬가지다. ‘모기야, 미안하다. 내 몸의 안녕을 위해 지금 너를 처단할 수밖에 없는 나를 용서해 다오, 다음 생에는 독수리로 태어나거라.’ 라며 혼자 제사를 지낸다. 그래서 하루하루 사는 게 매우 불편하다. 


장자가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우울하면 과거에 사는 것이고, 불안하면 미래에 사는 것이고, 편안하면 이 순간에 사는 것이다.” 항상 지나간 일을 곱씹고, 다가올 일에 불안해하니 현재에 집중하는 게 무척 어렵다. 몸은 현재에 있지만 나의 마음은 과거나 미래의 어느 시점에서 방황하고 있다. 그래서 진정한 카르페 디엠 Carpe diem을 실천할 수가 없다.


예민한 사람들(이하 예미니스트)의 단점은 남의 감정을 너무 헤아린다. 공감 능력이 뛰어나다 보니 다른 사람의 심적 고통에 대해 매우 예민하게 반응한다. 그래서 타인이 무언가 부탁하면 거절을 못한다. 실의에 빠진 사람의 문제를 해결해주려 노력하고, 그 과정에서 가끔씩은 그래서는 안 된다는 것을 잘 알면서도 상대방이 원하는 것을 모두 들어주기도 한다. 내가 거절하면 상대방이 상처받을까 봐 그냥 내가 상처받고 만다. 겉으로는 기꺼이 자신을 희생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정작 자신의 마음은 점점 문드러져 간다.


또한 예민한 사람들은 대체로 자존감이 낮은 편이다. 악어 등에 떨어진 돌멩이는 그저 돌멩이일 뿐이지만 개구리에게 떨어진 돌멩이는 최소한 중상이다. 예미니스트의 마음은 개구리 피부처럼 연약하다. 이렇듯 상처를 쉽게 받고 누적되다 보니 마음이 이미 걸레처럼 너덜너덜해지고 이를 전문 용어로 자존감이 낮다고 한다.


예민하다는 것은 한 겨울에 실오라기 하나도 걸치지 못한 것과도 같다. 개구리 피부처럼 살랑살랑 부는 바람에도 살갗을 에인다. 하지만 한 여름에는 굉장히 시원함을 느낄 수도 있다. 보통 사람에겐 아무것도 아닌 사소한 일에 격한 감정을 느끼기도 한다. 시멘트 바닥 사이에 핀 민들레 꽃을 볼 때에도 갑자기 가슴이 벅차오른다. 이렇듯 예민함은 삶의 저주일 수도 있고 축복일 수도 있다.


예미니스트들은 말 그대로 감각이 무척 예민하다. 예민한 뜻의 영어 단어 sensitive는 라틴어 sēnsus 감각에서 유래되었다. Sensitive는 예민한 이라는 뜻도 있지만 섬세한, 세심한, 감성적의 뜻도 있다. 해상도가 높은 마음을 가졌다는 뜻이다. 마음으로 사진으로 찍는다면 높은 퀄리티의 사진을 찍을 수 있다. 여자 친구가 “나 달라진 거 없어?”라고 물었을 때 금방 대처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 


그리고 또 감수성이 풍부하여 EQ가 발달했다. 타인의 반응에 아주 민감하기 때문에 감성지능이 높은 편이다.  EQ, 즉 감성지능은 자신과 타인의 감정을 정확히 인식하고 조정하며 적절히 표현하는 능력을 의미한다. 타인과 효과적으로 의사소통하고, 다른 사람과 공감하고, 갈등을 완화하기 위해 긍정적인 방식으로 자신의 감정을 이해하고 관리하는 능력이다. 감성지능이 높은 사람은 타인과 관계에서 갈등을 잘 유발하지 않고 조직 내의 갈등을 잘 해결하는 능력이 있다. 이렇듯 감성지능이 높으면 상대방의 사고, 감정, 의도 등을 추론하고 자신의 입장과 통합할 수 있으며, 다른 사람과 효율적으로 상호작용을 하고 바람직한 인간관계를 형성하고 유지할 수 있다.


주변에 살펴보더라도 존경받는 리더들은 대체로 공감 능력이 우수한 사람들이 많다. 우리가 알다시피, 인생에서 가장 성공하거나 가장 성취된 사람은 가장 똑똑한 사람이 아니다. 조직 내에서 인간관계를 가장 잘 만드는 사람이다. EQ가 중요한 시대가 되면서 감수성은 장점이 되고 있다. 


예미니스트의 특성을 간략히 언급해 보았다. 이렇듯 예미니스트들은 민감한 감정 때문에 사소한 일에도 벅찬 감동을 받기도 하지만 역시 사소한 일 때문에 마음이 아프기도 하다. 이렇게 감정의 기복이 심하니 마치 하루 종일 롤러코스터를 타는 것과 같다. 롤러코스터를 한 두 번 타면 재미있겠지만 하루 종일 롤러코스터를 탄다면 고문이 따로 없을 것이다.


삶이 장시간 롤러코스터를 타는 것 같다면 간단한 방법이 하나 있다. ‘그냥 잠시 내리면 된다.’ 컴퓨터로 비유하자면 일단 ‘리셋’하는 것이다. 한숨 자고 나면 기분이 한결 나아지는 것을 모두 경험해 보았을 것이다. 

한 숨 자는 것 외에도 삶의 롤러코스터에서 잠깐 내리는 방법들이 여럿이 있다. 대표적인 방법으로 명상이 있다. 명상의 장점은 필자의 글 ‘일체유뇌조’(https://brunch.co.kr/@c31b04b12cde4eb/9) 편에서 설명했기에 여기에서는 넘어가기로 하겠다. 


명상을 수행한다면 감정의 폭풍이 휘몰아칠 때 바람에 중심을 잃거나 폭우 속에서 무턱대고 헤매는 것이 아니라, 폭풍을 관찰할 수 있게 되고 폭풍의 실체가 없음을 알게 된다. 폭풍을 해석하지 않고 폭풍을 직시하는 것이다. 삶의 모든 문제는 해석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꼭 명상이 아니어도 좋다. 그저 기다리는 것도 훌륭한 방법이다. 기다리면 폭풍도 지나가듯 내 삶을 흔들던 롤러코스터도 멈추게 된다. 롤러코스터를 더욱 빠르게 달리게 한 원동력이 내 마음이라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예미니스트들은 유난히 발달한 오감을 가지고 있다. 성능 좋은 안테나 덕분에 더 많은 정보를 갖게 되고 강도도 훨씬 강하게 다가온다. 그만큼 삶이 넘쳐난다. 정신건강의학과 전홍진 교수님은 수많은 진료와 상담을 통해 TV에 나오는 유명인들의 상당수가 무척 예민한 사람들이라 한다. 전홍진 교수님은 평범한 예미니스트와 사람과 유명인의 차이는 자기의 예민함을 잘 컨트롤하는 것이라고 진단한다. 유명인들은 본인의 예민함을 본인만의 능력으로 승화한 것이다.


 예민한 것은 열등한 것이 아니다. 19세기에는 예민한 카나리아 한 마리가 수많은 광부들의 목숨을 살렸다. 수많은 예미니스트들이 과거를 돌이켜 보아 역사를 만들고, 미래를 예측하여 인류의 방향을 제시해 주었다. 예민한 사람들은 미운 오리 새끼가 아니라 우리 사회의 한 마리의 카라리아, 또는 백조일 수 있다. 


우리 사회에는 예민하다는 말의 뉘앙스가 다소 부정적이다. 그래서인지 예민한 사람들은 자신의 장점을 모르고 일반 사람처럼 되려고 억지로 노력하고 자책한다. 필자의 졸필 ‘감정의 안테나’(https://brunch.co.kr/@c31b04b12cde4eb/5)에서도 언급했듯 우울과 불안이라는 감정은 과거와 미래를 비추는 안테나 역할을 한다. 예민한 사람들은 성능 좋은 안테나를 가진 셈이다. 남이 듣는 것보다 많이 들을 수 있고 남이 보는 것보다 정확히 더 볼 수 있다. 라이고 LIGO 같이 민감한 안테나가 없었다면 우리는 아직도 중력파의 존재를 알지 못했을 것이다.


가끔은 안테나를 나의 내면으로 돌려 진정한 나의 모습을 탐색해 보자. 잠시 멈추어서 조용히 나의 내면의 목소리를 들어 보는 것이다. 그동안 너무 타인의 목소리에만 집중한 탓에 나의 내면의 소리를 너무 소홀히 했다. 타인에게 삶의 에너지를 많이 뺏겨 내 삶에 진정한 주인으로 살지 못했다. 성능 좋은 안테나로 진정한 나의 모습과 나의 숨겨진 능력을 발견해 보자. 그래서 과거도 미래도 아닌 바로 여기!!! 에서, 내 삶의 주인은 타인이 아닌!!! 바로 내가 됨으로써 진정한 내 삶의 주인으로 살아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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