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다 보면 화나는 일이 참 많다. 내가 하는 일은 되는 게 하나도 없는 것 같은데 내 주변에는 모두가 나보다 잘되는 것 같아 보인다. 내가 아무리 노력해도 이 사회가 부조리하고 불공정하여 나의 노력이 별 소용없다는 생각도 든다. 뉴스를 보면 온통 분노 이야기뿐이다. 정치 뉴스는 정치에 대한 분노, 경제 뉴스는 먹고사는 문제에 대한 분노, 사회 뉴스는 불안한 사회에 대한 분노 등등 스포츠 코너가 나올 때까지 온통 분노에 대한 이야기뿐이다. (내가 응원하는 팀이 지면 스포츠 뉴스 보다가 또 열받는다) 요즘 시대에는 모두 스마트폰에 익숙해져서 손가락 터치 한 번에 기계가 쉽게 반응을 해줘서 그런지 인간관계나 일이 자신의 뜻대로 빨리 움직여 주지 않으면 나도 모르게 짜증이 폭발한다.
화는 왜 나는 것일까? 화는 감정의 일종이며 감정은 자극에 대한 몸의 반응이야. 등산을 하다가 뱀을 보면 깜짝 놀라면서 피하게 돼. 본능적으로 방어 기제가 작동된 것이지. 이처럼 뱀이라는 자극에 대한 내 몸의 반응이 감정이야. 뱀에 대한 무서웠던 기억이 뱀에 대한 우리의 감정을 결정하지. 뱀에 대한 기억이 공포라는 감정과 결합되면 이는 생존에 많은 도움을 주었어. 감정이란 나중에 찾기 쉽게 각각의 기억에 붙인 일종의 ‘라벨링’이라 할 수 있지.
분노에 대해 말하기 전에 먼저 감정에 대해 잠시 알아보자. 살아있는 모든 것들은 누적된 진화의 결과물이야. 뇌과학자들은 뇌는 움직이기 위해 진화한 것이라고 말해. 미국의 뇌과학자 로돌포 R 이나스는, '운동이 내면화'된 것이 바로 뇌라고 주장했지. 움직임이 복잡해지면서 이를 조율하기 위해 복잡한 신경계가 필요해지고 그 신경계들을 조율하기 위한 기관이 뇌라는 것이야. 동물은 식물과 달리 움직이는 방향으로 진화했어. 생존하기 위해 먹을 것과 짝을 만나려면 일단 움직여야 해. 움직이려면 일단 움직이고 싶어야 하지. 움직이고 싶다는 느낌이 바로 '감정'이야. 그래서 감정이라는 느낌을 만들어내는 '변연계'라는 뇌가 탄생하게 된다.
감정은 생존에 유용하지만 너무 지나치면 해가 되었어. 그래서 감정을 통제할 수 있는 수단이 필요해졌지. 이때 등장하는 것이 이성을 담당하는 대뇌피질이야. 이렇게 대뇌피질이 변연계를 둘러싸게 된다. 감정을 이성으로 둘러싼 셈이지. 마치 인자한 어머니가 말썽쟁이 자식을 감싸 안은 것처럼 말이야. 움직임을 욕망하는 자아, 욕망을 통제하는 자아 등 수많은 자아가 생겨나고 그래서 이것을 다시 하나로 통제하려는 자아의 등장이 바로 마음의 기원이라고 할 수 있어.
뇌에서 감정과 관련되어 있는 정보들을 가장 많이 처리하는 뇌 부위가 ‘편도체’이다. 화가 나면 이 편도체가 활성화돼. 화가 폭발하면 논리적인 뇌의 회로와의 균형이 깨지면서 편도체가 뇌의 회로를 점령한다. 심리학자 다니엘 골먼 Daniel Goleman은 이러한 현상을 ‘편도체 납치’라고 명명했어. 마치 테러리스트가 항공기를 납치하여 제멋대로 조종하듯이 편도체가 뇌를 분노의 수렁으로 몰아넣는 것이지. 뇌 안의 평화는 깨지고 편도체가 뇌를 지배한다. 주체할 수 없는 분노의 쓰나미가 일어난다면 뇌가 편도체에게 점령당했다고 생각하면 돼. 생존의 위협이 느껴졌을 때 아드레날린이 분출된다. 아드레날린이 갑자기 솟구치는 상황을 ‘화가 났다’라고 표현하지. 이 아드레날린이 투쟁 도피 메커니즘을 만들어. 화가 난다는 것은 지금은 위급한 상황이니 대처하라는 몸의 신호야. 생존을 위해 분노의 에너지를 빌리는 것이지.
인간이 누적된 진화의 결과물이라면 왜 분노는 도태되지 않고 지금까지 남아 있을까? 아주 먼 옛날 두 명의 원시인이 산길을 가다가 호랑이를 만났다. 한 원시인은 즉시 감정이 분출하면서 재빠르게 대응한다. 바로 도망치는 것이다. 나머지 한 원시인은 현재 상황을 침착하게 분석하고 고민하고 있다. 그리고 심지어 호랑이에게 말을 걸려고 한다. 누구의 생존 확률이 높을까? 앞서 말한 바와 같이 감정은 과거의 경험에 붙인 일종의 ‘라벨링’이야. 라벨을 달아 놓은 이유는 급박한 상황이 발생했을 때 바로 꺼내어 사용하기 위해서이지. 분노라는 감정은 수많은 라벨들을 빠르게 검색하고 그 상황에 맞는 매뉴얼을 찾게 만들어 주는 역할을 한다.
지난 20만 년 동안 이러한 투쟁 도피 메커니즘은 일상적인 위험에 노출된 인간이 살아남기 위한 매우 유용한 도구였어. 하지만 문명화된 현대 사회에서는 과거와 같은 위험이 많지 않아. 오히려 아드레날린의 분출을 조절하지 못하면 일상이 위험해질 수 있어. 직장 상사가 보고서를 빨리 달라고 재촉했을 때 우리 몸은 이 상황을 위급 상황으로 판단하고 아드레날린과 노르아드레날닌이 분비되고, 이때 과도한 투쟁으로 반응하게 되어 상사에게 불같이 화를 내면 생계를 이어갈 수 없을 수도 있어. 반대로 과도한 도주로 반응하여 그냥 그 자리를 떠나버린다면 회사를 정말로 떠나야 할 수도 있지. 우리의 뇌는 문명의 속도에 맞춰 변하지 못하였고 여전히 석기시대에 머물러 있다.
지나친 화는 건강에도 해롭다. 특히 심장에 악영향을 끼치지. 순간적으로 폭발하는 분노는 스트레스 관련 호르몬 분비가 급격하게 늘어나며 혈압이 치솟아 심장 박동을 요동치게 만들어. 이는 동맥경화증, 심근경색색, 고혈압 등 심혈관 질환 위험이 높인다. 심근경색의 경우 건강한 사람도 한 번의 큰 분노 때문에 심장이 크게 타격을 받게 돼. 분노 조절을 하지 못하면 급사의 위험도 높아진다. (드라마에서 성질 급한 주인공이 뒷 목 잡고 쓰러질 때가 바로 이런 경우다) 스트레스 호르몬 수치가 만성적으로 높아지면 면역 시스템이 억제되어 질병에 걸리기 쉬워. 자신의 분노를 다스리지 못하면 결국 스스로에게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할 수 있어. 로마 시대의 철학자이자 정치가인 세네카는 이렇게 말했어. “분노하지 말라. 분노하게 된 원인보다 더 큰 해가 올 것이다.”
분노는 몸이 보내는 신호의 일종이야. 분노는 무언가 잘못됐다는 신호라 볼 수 있지. 분노는 제거해야 할 악성 종양이 아니야. 분노가 없으면 더듬이 없는 곤충 신세가 될 수 있어. 곤충은 다리 하나 정도 없어도 살 수 있지만 더듬이가 하나라도 없으면 생존하기 어렵지.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분노를 무조건 억누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분노를 제대로 이해하고 해석하는 것이야. 분노는 중력이나 날씨처럼 세상에 존재하는 자연 현상의 일부라 볼 수 있어. 자연법칙은 내가 원한다고 변하지 않아. 내가 간절히 기도한다고 내일의 태양이 서쪽에서 뜨지 않는 것처럼. 중력은 거스르는 것이 아니라 이용해야 하는 것이야. 분노도 마찬가지로 휩쓸려 가는 것이 아니라 그 힘을 이용할 줄 알아야 해.
분노의 에너지는 아주 크다. 이 에너지를 파괴에 사용하지 않고 창조하는 에너지로 삼아야 해. 분노의 에너지를 이용할 줄 알면 보다 손쉽게 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 화가 나면 열이 나지. 인간은 열이라는 에너지를 다루게 되면서부터 문명을 이룩할 수 있게 되었어. 내 안의 열에너지를 잘 관리할 때 이를 심리학적으로 ‘승화’라 부른다.
우리 몸은 바이러스나 세균에 감염되면 체온을 높여 바이러스나 세균을 퇴치한다. 분노도 열의 효능과 비슷해. 열은 우리 몸의 면역 시스템에 이상이 있다고 신호를 보내주며, 침투한 바이러스와 세균을 퇴치하지. 따라서 열이 나면 몸이 아프긴 하지만 우리를 보호해 준다. 분노도 열처럼 우리를 보호해 줘. 분노는 내가 너무 지쳤다고 알려준다. 자기 위로나 휴식이 필요하다는 신호이지. 갑자기 분노가 치밀어 오를 때 (무척 어렵겠지만) 일단 숫자 열을 센다. 그리고 생각해 본다. 이 신호의 의미는 무엇일까? 나의 삶 어디에 문제가 생겼다는 신호인가? 어떤 문제일까? 이 신호를 어떻게 해석하고 처리해야 할까?
호랑이가 나타나지 않는 현대에서는 주로 다음과 같은 상황에서 분노가 일어난다.
(1) 상대방이 나의 기준에서 벗어날 때
(2) 상대방이 나의 요구나 기대에 부응하지 않을 때
(3) 두렵거나 불안할 때
(4) 타인으로부터 인정받지 못할 때
(5) 좌절할 때
한 마디로 즉, 세상일이 내 맘대로 되지 않았을 때 발생하는 것이 분노이다. 하지만 화가 나는 더 근본적인 이유는 타인의 행동이 아니라 타인의 행위에 대한 나의 해석 때문일 경우가 더 많아. 해석은 나의 뇌가 일련의 현상을 자신의 경험과 이해에 따라 가공하는 과정이야. 이 과정이 그다음의 감정을 결정하지. ‘저 사람은 나빠’ 이런 식으로 누군가에게 내리는 평가는 우리의 대뇌가 만들어낸 해석이다. 객관적인 사실이 아닐 수도 있어. 그 해석에 부정적인 느낌이 가미되면 비로소 분노의 감정이 형성된다.
분노라는 신호를 현명하게 이용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이 있을까? 그것은 분노를 그냥 받아들이고 수용하는 것이야. 서로의 뇌가 다르기 때문에 같은 사실을 다르게 해석한다. 그것이 갈등과 분노의 원인이 된다. 분노를 해결하려면 서로의 해석이 다르다는 것을 인정해야 해. 나와 다른 사람의 생각이 다르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이지.
그 누구도 모든 점이 나의 생각과 일치할 수 없어. 같은 생각은 서로 공유하고 다른 생각은 다른 부분은 서로 존중하며 간섭하지 않는 것이 건강한 관계하고 할 수 있지. 존중은 우리가 좋고 나쁨, 높고 낮음의 구분이 없이 평등하다는 의미이다. 내가 맞다고 생각하는 일을 상대방도 동의해야 한다고 강요하는 것은 그저 폭력이 될 뿐이야.
오늘은 분노에 대해 대략 알아보았다. 다음 시간에는 분노가 치밀어 오를 때 화를 다스리는 법에 대해 이야기해 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