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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국현 Dec 23. 2022

언어, 다시 짓는 존재의 집 (하)

영화 <컨택트>에서 주인공 루이스는 헵타포드(외계인)의 언어로 배운 후 미래를 볼 수 있게 된다. 헵타포드는 글을 쓰기 전에 이미 전체 문장의 구조와 길이를 알고 있었다. 과거, 현재, 미래를 동시에 인지할 수 있는 그들의 인식 능력이 반영된 언어 구조인 것이었다. 인류의 언어는 선형적인 구조를 가진 반면에 그들의 언어는 원형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영화 속의 우주선은 콘택트렌즈처럼 생겼어. 마치 새로운 눈을 주려고 지구에 온 것처럼. 헵타포드는 루이스에게 세상을 새롭게 볼 수 있는 눈을 선물해 준다. 루이스는 그들의 언어를 분석하고 이해함으로써 미래를 보는 능력을 얻게 된다. 새로운 언어를 습득함으로 인해 세계를 보는 눈이 달라진 것이지.

 

이 소재를 뒷받침하는 이론이 있어. 미국의 언어학자 에드워드 사피어 Edward Sapir와 그의 제자인 벤저민 워프 Benjamin L. Whorf의 이름을 딴 ‘사피어 워프 가설’이야. 그 가설을 한 마디로 정의한다면 “인간은 모국어의 범위 안에서 자연세계를 판단한다”이다. 생각이 언어보다 클 수는 없다는 것이지. 사피어 워프 가설의 강한 해석은 사용하는 언어가 사고방식을 결정한다고 해. 하지만 이런 강한 해석은 아직까지는 대체로 인정을 받지 못하고 있어. 약한 해석으로는 언어가 사고 형성에 영향을 끼친다고 하며 일상생활에서도 쉽게 경험할 수 있지. 


<프롤로그> 편에서도 얘기했지만 우리는 (하늘에서 내리는) 눈을 보고 기껏해야 몇 가지 정도로 나눌 수 있지만 북극에 사는 이누이트 족은 수십 가지가 넘게 눈을 구별할 수 있어. 한국인에게는 보이지 않는 수십 가지 종류의 눈이 이누이트에게 보이는 이유는 그들에게는 눈을 구별할 수 있는 그들만의 언어가 있기 때문이야. 한국인도 그들의 언어를 배우면 그들처럼 눈을 수십 가지로 구별할 수 있게 되지. 이누이트의 언어를 배우면 “지금은 마우야(매우 부드러운 눈)가 내리고 있다”라고 말할 수 있어. 눈을 새롭게 보는 눈이 생긴 것이지. 비록 작긴 하지만 새로운 세상을 볼 수 있게 된다.


아빠가 언어의 집을 다시 짓는 이유는 이 세상을 오해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보기 위해서이다. 누군가는 이를 ‘진리’라고 말하기도 하지. 진리란 무엇일까? 진리의 정의는 세상의 존재하는 사람의 수만큼 있어. 각자 가지고 있는 언어의 한계로 인해 각자 달리 세상을 해석하기 때문이야. 아빠가 생각하는 진리는 ‘세상에 있는 그 자체 있는 그대로 보는 것’이라고 생각해. 하지만 인간은 세상을 있는 그 자체를 볼 수가 없어. 인간은 특정 영역의 빛만 볼 수 있고 특정 영역의 소리만 들을 수 있기 때문이지. 인간이 볼 수 있는 빛을 가시광선이라 하고 가시광선의 비중은 전체 빛 중에 10조 분의 1밖에 되지 않는다고 해. 세상의 일부분만 볼 수 있는 인간이 과연 진리를 볼 수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칸트도 외부 사물을 있는 그대로 인식할 수 없다고 말했다) 다채로운 언어 능력이 그나마 세상을 보는 해상도를 높여 줄 수 있다.


그리고 꼭 보는 것만이 진실일까? 어쩌면 사과를 보는 인간보다 사과를 듣는 박쥐가 인간보다 (칸트가 말하는) 물자체를 제대로 인식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박쥐는 소리로 세상을 해석한다) 인간은 오래전부터 눈앞에 보이는 세계가 진짜인지 아닌지를 의심했었다. 고대 인도인들은 이 세계를 ‘마야 maya’라 불렀으며 그 말은 ‘환영’이란 뜻이다. 즉, 인간은 환영 속에 산다는 것이야. 그리스 철학자 플라톤은 ‘이데아’라는 진짜 세계가 따로 있고 이 현실은 그저 횃불에 비치는 그림자 같은 가짜 세계라 생각했어. 플라톤은 이성을 통해서만 이데아에 이를 수 있다고 말했지. ‘이성(rationality)'은 비율을 뜻하는 ratio을 그 어원으로 하고, 진리를 뜻하는 그리스어 logos라는 단어에서 유래되었다. 이성이란 '개념적으로 사유하는 능력'을 뜻하는 말이야. 즉, 이성은 언어로서 개념화되고 표현된다. 


데카르트는 매트릭스 영화의 소재와 비슷한 생각을 했어. ‘사악한 악마가 나의 뇌를 통속에 집어넣고, 지금 내가 느끼고 있는 현실은 그저 뇌가 보낸 신호이지 않을까?’ 그래도 계속 의심하는 지금의 나는 의심할 수 없다고 해서 ‘코키토 에르고 줌 Cogito ergo sum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그의 철학도 역시나 언어로 표현되고 전달된다. 모두 각자만의 언어로 세상을 해석하고 자신의 언어 체계를 진리라고 주장한다. 그래서 2천 년 동안 철학자들이 한 일은 새로운 언어를 만들어 사유의 세계를 넓히는 것이었어. 철학의 역사는 곧 언어 융합의 역사라고 말할 수 있지. 수소가 합쳐져 헬륨이 되고 헬륨이 합쳐져 탄소가 되듯이 철학자들은 시대에 맞는 새로운 언어들을 융합해 왔다. 


헤겔은 역사가 ‘변증법’의 원리를 통해 발전한다고 말했어. 세상에 정상적인 것이 있으면 또 그에 반대되는 것이 존재하지. 그런데 이 정상과 반대는 서로 모순되어 공존하지 못하고 서로 투쟁하게 된다. 그리고 이 투쟁의 과정을 거쳐 융합된 새로운 종합이 등장하게 되지. 하지만 이 새로운 종합도 다시 정상이 되고 이는 다시 필연적으로 모순되는 반대를 만들어내게 된다. 이러한 정, 반, 합의 과정은 무한 반복하면서 하나의 방향으로 발전해 나가는 것이 헤겔이 제창한 ‘변증법’이야. 변증법은 정, 반, 합의 과정을 거치는 융합의 산물인 것이지. 이렇듯 철학은 융합의 무한 반복이야.


마르크스는 헤겔의 변증법을 바탕으로 자신만의 사상으로 발전시켰어. 이것이 마르크스의 변증법적 유물사관이야. 그는 역사를 계급 간의 투쟁으로 보았고 그 투쟁의 끝은 모든 사람이 평등해지는 사회라고 생각했어. 고대 사회에서 왕은 가장 정상적인 존재였다. 이에 대립되는 존재는 노예였지. 왕과 노예는 서로 모순되는 존재여서 서로 투쟁하게 되고, 이는 새로운 영주라는 존재가 탄생하게 되면서 노예 사회에서 봉건 사회로 이행된다. 영주는 중세에서 가장 정상적인 존재가 되었지만 그에 대립되는 존재는 농노였다. 다시 이 둘은 투쟁을 과정을 거치게 되고, 다시 새로운 합으로서 부르주아 계급이 탄생하게 된다. 부르주아는 근대의 정상적인 존재이고 다시 필연적으로 그에 모순되는 프롤레타리아와 대립하게 된다. 그리고 이 둘의 투쟁에서 결국 프롤레타리아가 최종적으로 승리하게 되고 모든 계급 갈등을 청산할 것이라고 마르크스는 예언했어. 마르크스는 선배 헤겔의 사상을 원료로 삼아 자신만의 철학으로 융합한 것이지.


언어의 수준을 높이고 싶으면 나만의 융합이 필요하다. 독서를 많이 해야 하는 이유는 기존에 생성되어 있는 원소(단어, 개념)들을 최대한 많이 수집하기 위해서야. 융합을 하기 위해서는 높은 온도가 필요하다. (태양이 핵융합을 할 수 있는 이유는 높은 온도 때문이다) 깊은 사색이 생각의 온도를 올려준다. 나의 뇌라는 융합 발전소에 원소들을 넣고 온도를 올려 새로운 언어로 융합해야 한다. 이런 과정을 통해 나만의 언어가 탄생할 수 있지. 독서는 나만의 변증법적 융합발전소인 셈이야. 나의 독서 그리고 사색의 넓이와 깊이가 내 발전소의 용량이 된다. 오스트리아 태생의 영국의 철학자 칼 포퍼는 “삶은 문제해결의 연속이다.”라고 말했어. 그리고 아인슈타인도 비슷한 말을 했지. “문제를 만들 때 사용했던 것과 같은 생각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난제는 새로운 언어로 해결될 수 있어. 그래서 복잡한 문제일수록 사유의 깊이가 필요한 법이다. 


나의 언어는 글쓰기로 완성되며, 나의 글쓰기는 내 융합의 결과물이야. 이 결과물이 내 삶의 매뉴얼이자 안내서가 되어 준단다. 나는 곧 나의 언어이며 나의 언어가 나의 이야기를 만든다. 스토리 story가 누적되면 히스토리 history가 되듯이 누적된 나의 언어가 나의 역사를 만들어 간다. 나만의 언어가 있어야 나의 정체성과 주체성을 세울 수 있어. 나만의 언어가 없으면 남의 언어를 빌려와야 하며 이는 곧 타인에게 종속되거나 기생해야 함을 의미해. 철학적 언어가 부족하면 사유 능력이 떨어져 복잡한 현실을 꿰뚫어 볼 수 없고, 인문학적 언어가 부족하면 공감 능력이 떨어져 타인의 고통을 읽을 수 없게 되지. 

 

영국의 소설가 조지 오웰은 1948년에 소설 ‘1984’을 세상에 내놓았다. ‘1984’는 빅 브라더의 극단적인 전체주의를 묘사하는 디스토피아 소설이야. 소설 속의 정부(빅 브라더)는 오직 자신만의 권력 유지를 위해 과거를 날조하고 국민을 선동하고 개개인의 사생활을 철저히 감시한다. 텔레스크린, 사상경찰 등을 동원하여 공공시설뿐 아니라 집 안까지 감시하며 사회 모든 것을 통제한다. 일기를 쓸 때에도 머리 위에 텔레스크린이 감시하고 있어서 권력에 반하는 생각을 적을 수도 없다. 명목상으로는 전쟁으로부터 시민의 안전을 보호하기 위한 선의의 감시라고 하지만 실질적으로는 오로지 독재를 유지하기 위한 통제일 뿐이다. 


빅 브라더는 대중의 언어를 통제한다. 단어의 수를 축소함으로써 시민의 사고를 축소하려는 의도인 것이다. ‘신어’라는 새로운 언어를 만들고 권력 유지에 방해되는 언어를 제거하고 줄여 나가서 최종적으로 개인으로부터 사유하는 자유를 박탈시킨다. 언어를 통제할 수 있으면 대중의 의식까지 통제할 수 있다는 생각이다. 권력의 지시와 생각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하라고 강요한다. 빅 브라더 사회에는 ‘왜 why?’라는 질문이 없다. 사고의 융합이 멈춘 것이다. 태양이 융합을 멈추면 태양은 물론 지구를 포함한 태양계가 사라진다. 사고의 융합이 사라지면 역사는 다시 과거로 회귀한다. 역사의 빅 크런치 Big crunch가 발생하는 것이다.


책을 읽는 또 다른 목적은 타인의 사유 체계와 연결하기 위해서야. 내가 세상의 모든 것을 직접 경험할 수 없으니 책을 통해 타인의 경험과 깨달음에 연결될 수 있지. 스티브 잡스는 “창의성은 사물과 사물을 연결하는 것이다”하고 말했어. 타인과 나의 생각을 연결하면 창의적인 언어를 만들어 낼 수 있다. 하늘의 별은 홀로 존재할 때는 그저 별이지만 별과 별을 연결하면 하나의 이야기로 창조된다.


사냥과 순결의 신으로 불리는 아르테미스에게 칼리스토라는 아름다운 시녀가 있었다. 칼리스토는 어느 날 혼자 사냥을 나갔다가 숲 속에서 잠깐 잠이 들었다. 그런데 하늘에서 제우스가 칼리스터의 잠든 모습을 보고는 한눈에 반하고 말았다. 제우스는 지상에 내려와 그녀가 섬기는 아르테미스의 모습으로 변신해 그녀 앞에 나타나 관계를 맺었다. 그 후 칼리스토는 제우스의 아이를 가지게 되었고 이를 안 아르테미스는 그녀가 순결을 잃었다고 생각해 칼리스토를 쫓아냈다. 칼리스토는 아들을 낳았고 그 소식은 제우스의 아내인 헤라에게 전해지고 말았다. 질투심 많은 헤라는 그녀에게 저주를 내렸고 칼리스토는 곰으로 변하게 되었다. 곰으로 변한 칼리스토는 아들을 놓아둔 채 숲으로 도망칠 수밖에 없었다. 


세월이 흐른 뒤 어느 날 한 젊은 사냥꾼이 숲 속에서 커다란 곰과 만나게 되었다. 그 곰은 칼리스토였고 그 사냥꾼은 바로 칼리스토가 낳은 아들 아르카스였다. 숲 속에 버려진 아이를 어느 농부가 데려다 키웠고 지금은 늠름한 사냥꾼이 되었다. 칼리스토는 자기 아들을 한눈에 알아보고 반가운 마음에 두 팔을 벌리고 다가갔지만 아르카스는 곰이 자기를 공격하는 줄 알고 화살을 쏘려 했다. 그때 하늘에서 제우스가 이 광경을 보고 있었고 이 안타까운 장면을 보다 못해 칼리스토를 하늘로 올려 별자리로 만들어주었다. 물론 아르카스도 함께 하늘로 올려서 별자리로 만들었다. 그래서 밤하늘에는 칼리스토가 변한 큰 곰자리와 아르카스가 변한 작은 곰자리가 생겼다. 별자리는 이야기가 되어 대대로 전해지고 있다. 바다를 항해하는 자들에게는 길잡이가 되어 주고 미래를 알고자 하는 이들은 별을 보며 점을 쳤다.


사람도 타인의 관계를 통해서만 존재할 수 있어. 한자 사람인(人)은 사람이 서로 기대어 있는 모습이야. 내가 타인과 어떻게 관계 맺을지에 따라 나의 삶이 결정된다. 나의 언어에 따라 타인과의 관계도 결정된다. 사회라는 그물은 구성원들의 언어로 짜인다.


우연히 보았던 유튜브 동영상을 소개해 볼게. 어느 따뜻한 봄날, 사람들은 화창한 날씨를 만끽하고 있었다. 하지만 앞을 보지 못하는 한 맹인은 거리에서 구걸을 하고 있었다. “저는 맹인입니다. 도와주세요” (I’m blind. Please help.)라는 문구를 내걸고 사람들의 적선을 구했지만 모두 냉랭할 뿐이었다. 적선은 잘 되지 않았고 따뜻한 봄날에 그 맹인만 소외된 듯했다. 그러던 중 한 여성이 지나가다가 잠깐 멈추어 보더니 맹인의 문구를 다시 써주었다. 그랬더니 지나가는 거의 모든 행인들이 맹인에게 적선을 해주었다. 맹인은 짧은 시간 동안 제법 많은 적선을 받았다. 어리둥절해하고 있는 맹인에게 아까 지나갔던 여성이 다시 돌아왔다. 그 맹인은 여성에게 “도대체 무얼 한 것입니까?”라고 물었더니 그 여성은 “같은 걸 썼어요, 단지 단어가 다를 뿐이에요.”라고 말하고 다시 지나간다. 그 여성이 써 준 문구는 “아름다운 날입니다. 하지만 저는 그걸 볼 수가 없네요.” (It’s a beautiful day and I can’t see it)이었다. 바뀐 몇 마디의 단어가 지나가던 사람들의 마음을 바꾸어 놓은 것이었다. 우리에게도 이렇게 잠시라도 세상을 바꿀 수 있는 언어를 가지고 있는가?


1963년 8월 28일 미국 노예해방 100주년 기념일에 피부색도 다르고 종교도 다른 25만 명의 사람이 워싱턴 링컨 기념관에 모였다. 이 많은 군중 앞에 젊은 흑인 목사가 역사에 길이 남을 연설을 한다. 

“저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언젠가 이 나라가 떨쳐 일어나 진정한 의미의 국가 이념을 실천하리라는 꿈, 즉 모든 인간은 평등하게 태어났다는 진리를 우리 모두가 자명한 진실로 받아들이는 날이 오리라는 꿈입니다.

저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조지아의 붉은 언덕 위에서 과거에 노예로 살았던 부모의 후손과 그 노예의 주인이 낳은 후손이 식탁에 함께 둘러앉아 형제애를 나누는 날이 언젠가 오리라는 꿈입니다.

저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저의 네 자식들이 피부색이 아니라 인격에 따라 평가받는 나라에서 살게 되는 날이 언젠가 오리라는 꿈입니다.

저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주지사가 연방 정부의 정책 개입과 연방법 실시를 거부한다는 말만 늘어놓는 앨라배마 주에서도, 흑인 소년, 소녀가 백인 소년, 소녀와 서로 손잡고 형제자매처럼 함께 걸어 다닐 수 있는 상황으로 언젠가 탈바꿈되리라는 꿈입니다.

지금 저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모든 계곡이 높이 솟아오르고, 모든 언덕과 산이 낮아지고, 울퉁불퉁한 땅이 평지로 변하고, 꼬부라진 길이 곧은길로 바뀌고,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 모든 생물이 그 광경을 함께 지켜보리라는 꿈입니다.”


‘I have a dream’으로 유명한 마틴 루터 킹의 연설이다. 그리고 11개월 후 흑인에게 투표권을 부여하는 시민법이 제정되었지. 흑인들은 미국 땅에 노예로 끌려온 지 350여 년 만에 드디어 시민으로 인정을 받게 된 것이었다. 그가 세상을 떠난 지 약 40년 후 흑인 버락 오바마는 미국 최초로 흑인 대통령이 되었어. 오바마는 마틴 루터 킹 목사를 기리며 이런 말을 했다. “마틴 루터 킹은 우리의 양심을 흔들었습니다. 그의 신념과 용기는 지금 이 시대에도 필요합니다.” 울림의 언어는 공명이 되어 사회를 변화시킨다. 왕이라는 뾰족한 산은 오랜 파동의 침식 작용으로 인해 조금씩 평평해졌어. 같은 꿈을 꾸고 같은 언어를 공유하면 모두가 꿈꾸는 세상을 만들 수 있다. 


내가 그동안 얼마나 성장했는지 알려면 그동안 나의 언어를 돌이켜 보면 된다. 언어는 마음의 창이자 감옥이라고 말한다. 언어의 수준이 업그레이되지 않았다면 나의 언어는 나의 감옥이 된 것이야. 창이 많은 세상은 밝은 미래가 오겠지만 감옥이 많은 세상은 지옥이 될 뿐이다. 프랑스 철학자 질 들뢰즈는 “개념은 인격이다”라고 말했어. 이는 나의 언어가 나의 인격을 만든다는 뜻이야. 언어가 불량하면 좋은 어른이 될 수 없어. 그래서 성장한다는 것은 나만의 언어를 늘려가는 것이다. 아빠는 좋은 아빠, 좋은 어른이 되고 싶어서 오늘도 책을 읽고 글을 쓴다. 독서는 나를 발효시킨다. 발효되지 않는 인생은 부패해져 갈 뿐이다. 하이데거는 ‘언어는 존재의 집’이라고 말했어. 니체도 “꿀벌은 밀랍으로 집을 짓고 살지만 사람은 개념으로 집을 짓고 산다.”라고 말했고. 


사랑하는 나의 딸, 오늘도 책으로 우리 언어의 집을 멋지게 지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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