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리기와 에세이를 위하여
요즘 무라카미 하루미를 끼고 산다. 머릿속에 가득 채우기보다는 몸에 붙여 산다. 달리기를 하고 에세이를 읽는다. 3년 전, <하루키 드 무지끄>라는 음악회를 올렸다. 하루키의 소설 여섯 작품을 중심으로 그의 작품에 등장하는 음악과 함께. 나는 <태엽 감는 새 연대기>를 가장 좋아한다. 그 이유는 진정한 장편이라는 느낌이 들어서인데 두 권으로 되어 있는 <해변의 카프카>와는 다르다. 사실은 읽기가 힘들었다. 마음이 힘들었다는 게 맞을 것 같다. 그때의 나에겐 '우물'이 버거웠고 얼마간 아슬아슬한 외줄 타기를 했다. 음악회 때문에 바쁘게 읽어내야 했음에도 대책 없이 흔들렸다. 3년이 지난 지금, 조금은 알겠다. '인간 하루키'에 대해서.
하야오와 나눈 대담을 담은 <하루키, 하야오를 만나러 가다>. <태엽 감는 새 연대기>를 쓸 당시 글이 자신을 앞질러간 것이라 한다. 하루키의 작품을 떠올려보면 플롯을 정해놓고 출발한다는 게 오히려 어색하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결말에 대한 확신이 있다. 자기 확신에서 탄생한 결말들은 꾸준한 달리기와 글쓰기에서 나오는 구력과 아포리아 관계를 가진다. <1973년의 핀볼>에 등장하는 쌍둥이 자매 같은 친구들이 괜찮은 이름을 부여받아 작품으로 탄생한 느낌이랄까. 이 책이 출판된지는 한참이 지났으니 지금은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다.
<태엽 감는 새 연대기>하면 슈만의 <예언하는 새>가 빠질 수 없지.
슈만의 심상은 '커미트먼트'일까, '디태치먼트'일까.
백건우, Schumann: Waldszenen, Op. 82 - 7. Vogel als Proph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