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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람난아씨 Nov 09. 2024

굳은 다짐의 밤

 읽을거리와 일거리를 혼동하지 말자

매일 아침 출근 준비를 하면서 가방을 정리한다. 어제 퇴근 무렵 집에서 조금 더 보려고 클리어 파일에 꽂아둔 서류의 모서리가 구겨져 있었다. 읽지도 않은 종이 더미를 꺼내 드는데 언젠가 퇴근길에 후배들과 들른 맥줏집 영수증이 따라나왔다. 계산서에 인쇄된 '노가리' 라는 단어가 재밌어서 나중에 다시 보려고 지갑에 넣었다. 


오늘도 웬만해서는 읽지도 않을 자료들을 모아 토트백에 억지로 구겨 넣고 사무실을 나왔다. 이쯤되면 고질병이다. 바깥은 태풍의 영향권에 들어 깜깜했고 비바람이 거셌다. 우산이 뒤집히고 사방에서 내리꽂히는 빗줄기로 인해 젖은 머리카락이 얼굴에 들러붙었다. 가방이 젖고 바지가 젖고 웨지 힐도 젖었다. 


오랜만에 온몸으로 비를 맞으며 집으로 돌아왔다. 마른 수건을 머리에 두르고 빗물에 젖어 맞붙은 종이를 한 장씩 떼어 내 물기를 닦았다. 이제 다시는 일거리를 집에 들고 오지 말자. 읽을거리와 일거리를 혼동하지 말자. 폭우가 쏟아지는 한여름 밤 칠링한 화이트 와인을 마시며 굳은 다짐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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