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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여 Jul 31. 2024

엄마와 운동화

내가 살던 고향 면 소재지에 있는 짜장면집 아들인 친구가 뽀얀 운동화를 신고 학교에 왔다. 여태 검정고무신만 신고 십리 비포장길을 걸어 등교했던 소년은 자신이 그것을 신은 느낌을 상상해 보았다. 운동화를 신을 수 있게 된다면 더 이상 바랄 게 없었다. 


고등학교 다니게 된 큰 아들을 뒷바라지하느라 전주에 나가 생경한 도시를 헤매며 보험을 팔던 엄마는 주말을 이용해 간혹 집에 돌아와 농삿일을 챙겼다. 소년은 엄마가 돌아오기를 기다려 운동화를 사달라 떼를 썼다. 집안 형편에는 아무 관심이 없었다. 다음에도, 또 다음에도 떼를 썼다. 엄마는 그때마다 다음에 사오겠노라 약속만 남긴 채 서둘러 농삿일을 마무리하고 황급히 전주로 떠났다.


그러던 어느 날 오랜 만에 막차를 타고 집에 돌아온 엄마가 드디어 운동화를 꺼내 놓았다. 소년은 날아갈 듯 기뻤다. 처음 신어 본 운동화의 촉감과 편안함은 소년의 상상을 뛰어넘었다. 소년은 잘 때도 수업시간에도 운동화만 생각했고 그때마다 절로 웃음이 나왔다.


토요일 오후가 되면 소년은 냇가에 나가 비포장 통학 길에 더러워진 운동화를 빨았다. 다 써 못쓰게 된 칫솔에 비누를 묻혀 문지르면 운동화는 다시 새 것이 되었다. 매주 새 운동화를 선물 받기 위해 토요일이면 어김없이 운동화를 빨았다. 


엄마는 소년을 사랑했지만 소년은 새 신발을 사랑했다. 어느새 나도 부모가 되었다. 부모와 자식의 사랑은 원래 이런가 보다.




* 나이 탓도 있겠지만 어린 자식은 감각에 갇혀 욕망하며 산다. 자연의 이치다. 철이 들려면 세월이 필요한 건 당연한 얘기다. 소년의 욕망을 채워 주시던 어머니는 얼마나 힘들었을까? 어머니는 이제 팔순 중반을 넘었고 치매까지 앓고 계신다. 나는 20대 초반에 집을 떠나 효도 한 번 못해 드리고, 여전히 후회의 탄식만 내뱉고 있다. 현실을 핑계로 어머니를 위한 조금의 무언가도 내어 놓지 못하는 삶이 못내 원망스럽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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