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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약가 Aug 21. 2023

사랑 이야기

'외삼촌 돌아가셨다' 오랫동안 거리를 두고 지내던 부모님에게로부터 연락이 온 것은 차장님과 함께 전주로 내려가는 출장길에서였다. 3년 만에 온 문자였다. 어머니의 오빠이자 내 외삼촌이 돌아가셨다는 연락이었다. 나를 태우고 고속도로를 달리는 차장님께 뭐라고 말씀을 드려야 할까 순간 당황스러웠다. 


차장님 잠시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집안 어른들 중 유일하게 외삼촌과 외숙모에게만은 아무런 악감정이 없었다. 그들은 내가 하는 말을 유일하게 들어주는 분들이셨다. 가족들은 늘 내 발목을 잡는다고 생각했다. 아무런 악감정이 없는 외삼촌에게조차 이번만큼은 미웠다. 고인이 무슨 죄가 있겠냐만은 왜 하필 이렇게 바쁜 시기에 돌아가셨을까 하는 생각이 먼저 올라왔다. 외숙모에게 받은 장례식장 주소에 도착했을 때는 새벽 2시 무렵이었다. 이미 한바탕 눈물바다가 지나갔는지 모두의 눈은 부어있었다. 부모님과 동생에게 어색한 인사를 드렸다. 


먼 길 왔다. 빈소에 들어서는 내게 상주석에 서 계신 아버지가 말씀하셨다. 

곧 다시 가봐야 해요. 출장 가던 길이었거든요. 내가 답했다.


어느 회사가 장례식장 오겠다는데 그걸 안 보내주니? 회사 연락처 줘봐라 연락해 보게 어머니가 말했다. 

중요한 일이고 저 아니면 마땅히 할 수 있는 사람이 없어서요.

네 아빠 없었을 때 너 키워주고 돌봐준 사람이 삼촌이었던 기억 하니? 아니다. 됐다. 일 다 봤으니 그냥 가라.


죄책감과 미안함이 들었다. 그리고 그것이 어머니께서 내가 느끼길 바라는 감정이기도 했다. 가족들과 오랜만에 모인 이 자리에서 철저히 고립된 느낌이었다. 가족들 모두가 모인 그 사이에서 나는 불청객이 된 기분이었다. 기독교식 장례절차를 따랐기에 삼촌 영정사진 앞에서 목례를 했다. 2년만에 뵙는데, 이렇게 뵙게 되네요. 그곳에 가게 되면 어지럽게 엉켜있는 이 마음이 한결 좀 편해질 수 있나요? 하고 삼촌에게 속으로 물었다. 


외삼촌은 가족들에게 감정 표현이 별로 없으셨었다. 가족들 앞에서 삐지거나 화내는 일도 없었다. 그냥 매일 같은 일상을 묵묵히 지켜가던 가장이셨다. 다니시던 직장에서 40년을 재직하셨었다. 직장에서도 큰 문제없이 무난하게 제 역할을 잘 해내던 좋은 직원이었으리라. 빈소를 찾아와 흘린 삼촌의 후배와 상사들의 눈물이 그것을 말해주고 있었다. 


외숙모가 나를 아무도 없는 조용한 테이블로 데려오셨다. 몇 안 되는 반찬과 컵라면을 내어오셨다.

우리도 방금 막 들어와서 아직 먹을게 많이 없어. 이제 또 먼 길 갈 텐데 이거라도 먹고 가렴. 

숙모를 마주 보고 앉아 컵라면이 익기를 기다리며 숙모의 얼굴을 살폈다. 안색을 보아하니 슬픈 기색은 있지만 많이 힘들어보이진 않았다. 너무 정신없기 때문일까 아직은 견딜만하다는 표정이었다. 


숙모는 내 어깨너머로 외삼촌의 영정사진을 바라보며 말했다. 

숙모 아빠도 참 조용하고 무뚝뚝하셨다? 괜히 칭찬 좀 들어보겠다고 아빠가 출근할 때면 학교에서 그린 그림들 꺼내 들고 자랑하는데 한 번을 예쁘다, 잘했다 하시는 법이 없었어. 저녁에 다 같이 저녁 먹을 때도 다 드시고는 먼저 방으로 들어가 버리시고. 엄마가 가끔 쓸쓸해 보였었어. 나랑 언니는 그 어린 나이에도 우리는 저런 고지식한 사람이랑 결혼하지 말자 하고 다짐했었어. 그런데 어쩌다 보니 아빠랑 똑 닮은 사람이랑 결혼해서 이렇게 오래오래 살다가 보내드리네.


어쩌다 삼촌이랑 만나셨어요?


나도 그 생각을 참 많이 해봤었는데 말이야. 언니랑 엄마는 아빠를 답답해하며 혀를 끌끌 찼는데, 나는 왠지 아빠가 외로워 보였어. 아빠도 무뚝뚝하고 싶어서 저러는 게 아니라 어떻게 감정표현을 해야 할지 모르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어느 날 든 거야. 어떻게 우리한테 다가와야 하는지 모르는 게 아닐까? 싶었던 거지. 그래서 아빠가 별 반응을 안 해주셔도 많이 다가가고 그랬어. 먼저 말도 걸고, 먼저 어디 가자고 졸라 보기도 하고. 

직장에서 너희 삼촌 처음 만났을 때, 다들 삼촌을 많이 어려워했었어. 일은 참 잘하는데 사람이 너무 반응도 없고 농담도 안 하고 그러니까. 그런데 왠지 너희 삼촌도 어쩌면 주변 사람들에게 어떻게 다가가야 할지 모르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 거야. 아빠를 대하며 배운 게 있다 보니 저런 사람에게 익숙해진 거지. 참 저런 사람 만나지 말아야지 말아야지 하다가도 그 익숙함이라는 게 무서운거야. 


후회는 안 하셨었어요?


후회는 어느 사람을 만났어도 한 번쯤은 하지 않았었을까? 그냥 매일 같이 삼촌을 바라보면서 저 사람도 참 답답하겠다 싶었어. 그러다 계속 보다 보니 저 사람이 행복했으면 좋겠다. 내가 그걸 도울 수 있었으면 좋겠다 하고 생각했었어. 그런 거 보면 나는 아빠도 저 이도 참 많이 사랑했었던 거 같아. 


그게 숙모가 생각하는 사랑인가요?


응 그렇지않을까? 그냥 저 사람이 행복했으면 좋겠다, 하고 바래주는 거. 그게 나를 통해서 이루어지면 더할 나위 없어 좋은 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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