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 감정에서 벗어나는 나에게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마음

by 탄고

부재중 전화가 4통이나 와있는 걸 확인한 건 영화가 끝나고 상영관에서 나온 직후였다. 전화를 준 번호로 문자도 와있었다. 공인 중개사에서 온 연락이었다. 이사 가신다는 연락을 받았는데 언제쯤으로 생각하고 계신지에 대한 내용이었다. 이사라니, 이게 무슨 일일까. 우리 집 이사가나? 불과 어제까지만 해도 1년은 더 지낼 계획이라고 했는데 말이다. 어머니에게 문자를 남겼다. 공인중개사에서 이런 연락이 왔는데 이사 갈 계획이었는지, 하고 말이다. 바로 답장이 왔다. 곧 이사 갈 계획인데 혹시 너는 언제쯤 자취할 계획이니, 라는 답변이었다. 방금까지 재밌게 보고 나온 영화임에도 머릿속에서 잊히는 건 오래 걸리지 않았다. 답답한 마음에 거리로 나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마스크를 쓰고 있으니 공기가 차가운지 습한지 따뜻한지 느껴지지도 않았다. 정말 내 삶도 마스크를 쓰고 있나 왜 이렇게 답답하지, 하고 생각했다.


부모님과 함께 해오며 가장 힘들었던 점이 있었다면 먼저는 지나치게 감정적인 부모님을 대하는 일이었다. 계획적이고 차분하며 이성적인 나로서는 감정적이고 격해지는 상황일 땐 너무나 쉽게 충동적인 모습을 보이는 부모님을 그냥 체념하며 지내던 나였다. 어쩌면 그런 충동적이고 감정적인 부모님을 대하다 보니 오히려 더 반대로 살아가려 애쓰게 되었고 지금의 이성적이고 차분한 내가 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두 번째는 위의 이야기처럼 항상 과정은 배제되고 이미 결정된 결과만을 통보받는다는 것이다. 올해까지는 이사 갈 계획이 없다는 이야기를 불과 8시간 전인 어제저녁에 들었다. 그런데 그 사이 무슨 일이 있었기에 부동산과 이야기가 끝나고 나는 이 이야기를 부모님이 아닌 공인중개사에게 듣게 되는 건가.


최근 지금까지 잘 다뤄지지 않았던 법안과 배우들의 훌륭한 연기로 주목받고 있는 넷플릭스 시리즈 '소년 심판' 덕분에 아이와 부모님의 관계의 중요성에 대해 조금씩 인지하게 된 사람들이 있다. 드라마에서도 표현되는 바와 같이 아이들이 가정으로부터 버려지거나 혹은 상황에 의해 궁지에 몰리게 되면 아이는 자신의 생존을 위한 선택을 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이제 가족과 담을 쌓으며 자신만의 세계를 혼자 만들어 가는 아이가 있는 반면 양육자 없이는 혼자 살 수 없다는 판단하에 양육자의 마음과 감정이 상하지 않게 각별히 주의하고 숨죽여 인내하는 아이가 있다. 나의 경우 후자였다. 시시때때로 변하고 몰아쳐오는 가족의 감정 변화와 안정적이지 못한 가정환경이 끊임없이 불안하고 걱정되며 나보다 가족을 더 걱정하게 만드는 유기 불안을 가져다주었지만, 이로 인해 얻을 수 있었던 건 마음의 독립이었다. 이제는 내가 나로서 나의 삶을 분리하여 살아가겠다는 마음. 아직 다 해결하지 못한 과거의 잔재들과 충분히 이해받지 못한 마음의 응얼이들이 있지만 그럼에도 앞으로 나아가겠다는 마음.


본래 우리의 뇌는 끊임없이 자극적인 생각을 우리에게 준다. 걱정하고 불안해하며 고민하게 한다. 부정적인 생각은 뇌에게 그야말로 맛있는 초콜릿과 같으니까. 이보다 더 달콤하고 자극적인 것은 없으니 말이다. 하지만 나를 살아가게 하려면 우리가 먼저 이겨야 할 건 우리의 뇌가 아닐까 싶다. 상황도 가족도 너무나 가까이에서 나를 지치게 하고 뇌에게 좋은 먹잇감을 주지만 그럼에도 지금은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마음'이 필요한 순간이다. 그리고 이때 알았다. 이 태도는 앞으로 많은 일을 할 때에도 도움을 줄 태도라는 것을. 힘들 때 감정적으로 무너질 때 우리는 인생은 어차피 오르막길과 내리막길의 연속이라는 것을 인정하고 끝없는 장애물을 치워가야 한다는 다짐을 한채 조금은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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