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 자신의 마음에 대한 존중이 부족한 나에게

마음을 읽는데 서툴었던 그들에게

by 탄고

동생은 어머니가 퍼준 밥그릇의 밥을 밥통에 조금 덜고선 다시 자리에 앉았다. 많이 주지도 않았는데 왜 그것밖에 못 먹니,라고 어머니가 동생에게 물었다. 젓가락으로 밥을 깨작깨작 입에 넣으며 그냥 별로 소화도 안되고 입맛도 없어, 라며 답했다. 누가 봐도 무슨 일이 있는 눈치였고 그런 동생을 보며 학교에서 무슨 일이 있던 걸까 아니면 부모님이랑 무슨 일이 있던 걸까, 하고 나는 혼자 고민에 잠겨있었다.ㄷ 분명한 건 동생은 동생 자신도 무엇을 원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자신의 마음을 누군가 알아주고 이해해주길 바라지 않을까, 하고 확신했다. 점심을 늦게 먹어서 혹은 다이어트 중이라서,라고 적당히 둘러댈 수도 있었지만 저렇게 걱정되게끔 말을 한다는 것은 분명 무엇인가로부터 힘든 자신의 속마음을 알아달라는 투정이자 신호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동생의 힘든 기운은 주방에 한가득 퍼져갔고 어머니도 나도 동생의 눈치를 살피며 조심스럽게 식사를 이어갔다. 그리고 5분도 채 지나지 않았을 때, 어머니가 한 숨을 길게 내쉬며 정형외과를 가야 하나 신경외과를 가야 하나,라고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발이 불편하다는 듯 발바닥을 주무르셨다. 불과 몇 분 전까지만 해도 이 식사 자리의 갑은 동생이었다. 자신의 기분이 지금 힘들다는 것을 제일 먼저 내색했고 알아달라는 신호를 보냈으니 말이다. 그러니 누군가는 동생에게 무슨 일이 있는지 물어보거나 아니면 따뜻한 태도를 보였어야 했던 것이다. 하지만 오히려 이번엔 어머니가 자신의 힘듦을 토로하며 한 숨이라는 비언어적인 감정과 함께 언어적 태도까지 취하시며 전세를 뒤바꿔놓으셨다. 가벼운 일도 아니고 어딘가 아프다니. 이제 이 식탁의 주인공은 어머니가 되었다.


"이제 고3인데 이제 열심히 해야지, 남들 위해서 하는 거 아니잖아? 너 잘되라고 하는 거지. 그러니까 엄마 생각해서라도 열심히 해줄 수 있지?" 동생을 바라보며 나긋나긋하게 어머니가 말했다.


어머니가 방금 한 말을 곱씹어보며 의아함을 감출 수 없었다. 말에 모순이 너무 많았기 때문이었다. 적어도 난 그렇게 생각했다. 분명 나긋나긋하고 부드럽게 말을 했지만 저건 분명 협박처럼 들렸기 때문이다. 내가 조금 예민하게 받아들인 걸까? 듣는 동생은 그렇게 생각 안 했을 수도 있었을까? 그리고 분명 공부는 널 위해서 하는 거야,라고 말했지만 엄마 위해서 해줄 수 있지? 는 무엇이란 말인가. 그럼 도대체 저건 누굴 위해서 해야 하는 거라고 말하고 있는 것인가. 몸이 아프다며 한 숨을 내쉰 건 저 말을 하기 위한 서론과도 같은 거였던 건가. 정리해보면 어머니는 지금 자신이 너를 위해 아픔을 참아가며 일하고 신경 써주고 있으니 너는 그걸 생각해서라도 열심히 공부해야만 해,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 물론 나름의 고충과 아픔까지 참아가며 아들을 생각해주시는 그 사랑을 과연 무엇과 비교할 수 있으랴.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저 말을 들은 동생의 기분이 어떨지 짐작도 되지 않았다. 심지어 지금 동생은 어떤 일로부터 마음이 몹시 힘든 상태란 말이다. 왜 여기서 동생의 마음을 읽으려는 노력은 취하지 않고 자신의 걱정과 힘듦만을 생각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물론 어머니도 동생의 신호를 눈치채고 나름 조심스러운 태도를 취했다. 그건 동생의 기분을 느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윽고 자신의 힘듦과 마음이 찾아왔고 그것에 훅 젖어들었다. 나도 언젠가 지금의 동생 입장에서 어머니의 저런 태도를 받아왔기에 지금 동생의 마음이 어떨지 너무나 잘 이해가 갔다. 물론 우리는 모두 자신의 상황이 제일 힘들고 자신의 마음이 가장 아픈 거야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조금이라도 우리가 우리의 기분을 표현할 수 있는 기회를 주고, 눈치 보느라 차마 다 내색하지 못했던 비언어적 마음에 대해 조금이라도 더 관심을 가져주고 그 마음을 존중해주었다면 지금처럼 혼자 감정을 삭히고 속앓이 하는 일은 없었을 텐데 말이다.


이처럼 상당수의 많은 사람들이 어린 시절 다양한 이유로 자신의 마음을 알아달라는 호소와 사랑과 관심을 갈구하는 비언어적 태도가 온전히 수용받지 못한 경험을 했다. 그렇기에 이제 자신의 마음이 누군가에게 다 공감받지 못할 거야, 라는 태도가 고정관념처럼 머리에 꽉 박여있는 채 사람과 적절한 거리를 두고 주변 사람들에게부터 왜 나는 너를 잘 알지 못한다는 기분이 들까 와 같은 말을 들으며 주변 사람과의 관계에서 혼란스러워한다. 그러다가 문득 자신에 대해 많이 궁금해주고 알아주고 나라는 사람에 대해 나보다 더 잘 이해하는듯한 사람이 등장하게 되면 동화 속 공주가 기다려온 왕자를 만난 것처럼 나의 마음은 스르르 열려 버리는 것을 경험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의 나라는 결과물은 절대 잘못되지 않았고, 나쁜 것이 아니며 너무나 당연한 결과라는 것을 잊지 않았으면 한다. 나는 지금 내가 사랑받고 싶은 건지 잘 모르겠어, 라는 의문이 들 수도 내가 뭘 원하는지 잘 모르겠어, 라는 생각이 든다면 이 또한 너무나 당연하다. 지금의 내가 사랑받고자 하는 것이 아닌 사랑받지 못했던 나의 과거와 그런 마음을 모른 채 자신의 마음을 더 강요해온 부모에 대한 원망이 뒤섞여있는 복잡한 마음일 테니까. 그러니 내가 이해받고자 하는 마음 그리고 사랑받아야 한다는 마음은 잠시 뒤로 미뤄두고 이제는 누구의 딸로서 아들로서 살아가는 것이 아닌 나로서 내 삶을 내가 응원하며 내가 책임지며 내가 주도해가며 부모에게 떨어져 나온 독립된 주체로서 살아가는 자세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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