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어떻게 좋아하는 건지 모르겠어요.
우리 집에서 Yves의 집까지는 걸어서 대략 1시간 정도가 걸린다. 숲으로 가득한 자연에서 걷는 1시간은 많은 생각을 하기에 너무나 안성맞춤이다. 이어폰을 끼고 노래를 들으며 1시간 동안 여유롭게 생각에 잠기기로 했다. 무슨 고민부터 생각해볼까 생각하자마자 정말 많은 생각들이 서로 앞다퉈 나오려는 듯 한꺼번에 쏟아져 나와서 한순간에 내 머릿속엔 정리되지 않은 생각들로 가득했다. 아무래도 오늘 아침의 일을 먼저 떠올리는 게 좋겠다. 아침을 먹으려고 냉장고를 열자 냉장고에는 딱 2개의 계란만이 남아있었다. 아침으로 먹으면 딱 적당한 양이겠다 싶었지만, 이제 곧 부모님도 일어날 테고 고등학생이라 공부하느라 바쁜 동생도 곧 아침을 먹을터였다. 다들 어젯밤 바빠서 오늘 늦게 일어나는 걸 텐데 나보단 그들이 먹는 게 낫겠다 싶었다. 그리고는 대충 시리얼로 아침을 때웠다. 유당불내증이 있어서 우유를 잘 먹지 않지만 마땅히 아침으로 먹을만한 게 없어서 대충 먹지 뭐 하는 마음으로 먹었다. 혼자 방에서 시리얼을 먹고 있는 내 모습을 보자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나한테 돈 쓰는 걸 굉장히 아까워할뿐더러 나보다는 늘 남 걱정을 먼저 해주고 있구나,라고 말이다. 사고 싶은 게 많고 내가 벌어서 내가 모은 돈이 지만 나한테 그 돈을 투자하려니 아까운 마음이 항상 들었다. 옷을 사려고 야심 차게 백화점에 들어가도 아니야 비슷한 디자인 있어, 검은색은 너무 많아, 나한테 안 어울릴 거야 등의 다양한 이유를 대면서 결국 빈손으로 나와버리는 경우가 허다했다. 이제는 너무나 흔하게 쓰여서 SNS상의 유행어처럼 자리 잡은 단어, 바로 자존감. 나는 그게 낮은 걸까, 하고 생각했다. 내가 나를 좋아한다는 건 무슨 느낌 일까. 내가 소중하고 내가 잘되길 바라는 마음을 갖는 것은 어떤 마음일까, 하는 궁금증이 들었다. 그리고 이런 궁금증이 커져갈 무렵 어느새 Yves의 집에 도착해있었다.
조용히 집의 문을 열고 들어가 지하실로 내려갔다. 내가 오는 걸 알고 있을 테니 아마 여기서 기다리고 있겠지, 하고 생각했다. 지하실로 내려가자 그곳에 Yves가 있긴 있었다. 다만 소파에 앉아 감자칩을 손에 들고 잠들어있었지만 말이다.
나: Yves 일어나요. 나왔어요.
Yves: 오 리틀 퍼커. 왜 부르는 거야
나: 왜 부르긴요 오늘 보기로 했잖아요. 그보다 저 궁금한 거 있어요.
Yves: 호흡 소리를 들어보니 마음속에 뭐가 잔뜩 있는 모양이야 벌써부터 피곤한걸
나: Yves는 Yves가 좋아요?
이건 또 무슨 소리인가라는 표정으로 90세 퀘벡 노인은 나를 올려다보았다.
Yves: 갑자기 찾아와서 그게 무슨 갑작스러운 질문이냐. 요즘 네가 탐구하고 있는 주제인가 보지? 학교 과제라도 되는 거냐?
나: 어서요 Yves. 자기 자신이 좋나요? 그리고 전 대학생이 아니라 직장인이라고요.
눈을 초롱초롱하게 뜬 채로 Yves 맞은편 의자에 걸터앉아 그를 빤히 쳐다보았다.
Yves: 오 세상에. 아주 큰일이야. 이 녀석 어디서 이런 이상한 질문을 가져온 거야
나: Yves 손에 든 감자칩이랑 저 테이블에 있는 맥주 말이에요. 마트에서 다 합하면 약 2만 원 정도 해요. Yves는 그걸 그냥 아무 생각 없이 사 먹겠지만 저는 저 2만 원을 저한테 쓰는 것도 굉장히 아까워서 살까 말까 한참을 고민해요. 심지어 한참을 고민해도 결국 안 사는 경우가 대부분이에요. 그 돈 모아서 차라리 옷을 사거나 하고 말지,라고 타협하지만 결국 나중 돼서는 그 옷 사는 것도 돈 아까워서 스스로에게 쓰지 않아요. 그뿐인가요? 심지어 집에 있는 계란을 제가 먹는 것도 아까워서 아직 자고 있는 부모님께 그걸 양보했어요. 저도 나름 먹고 싶었는데 말이죠. 전 저한테 돈 쓰고 먹이는 게 아깝나 봐요. 제가 제 자신을 별로 소중히 여기고 있지 않거나 저와의 관계가 별로 안 좋아서겠죠? 그래서 궁금해요. Yves는 이렇게 아무 생각 없이 감자칩도 맥주도 실컷 사는 걸로 보아 자기 자신이 좋은가 보죠?
Yves: 인종차별하려는 건 아니지만 혹시 요즘 한국인들은 다 이런 생각을 하며 사니?
나: 다른 한국인들은 잘 모르겠어요. 제가 유별난 거 같아요.
Yves: 자 우선 이 감자칩. 내 지갑엔 5만 원이 있었어. 감자칩과 맥주를 사도 아직 3만 원이나 남았다고. 돈을 다 쓴 것도 아니고 아직 돈이 남았으니 문제 될 건 없잖아? 그냥 감자칩이 먹고 싶어서 감자칩을 산거야. 내가 나를 좋아하는 거랑은 아무 상관이 없어.
나: 그러네요. 제가 너무 멀리 간 걸까요
Yves: 내가 나를 좋아하냐고? 뭐 나쁘지 않아. 내가 아는 건 리틀 퍼커 네가 너 자신이 싫은 데는 그런 이유가 분명 있다는 거야. 이유 없는 마음은 없는 거지. 네가 너에게 그렇게 아끼고 참고 박한 데는 분명 그 만한 이유가 너의 과거에 있었을 거라는 거지. 사실 지난주에 네가 가고 나면 네가 한 말은 생각 안 날 거야라고 말했지만 네가 가고 나서도 조금 생각을 해봤어. 무슨 감정인지 모르겠고 생각이 많다는 건 어쩌면 네 안에 네가 너무 많아서 아닐까 싶다.
나: 그게 무슨 말인가요? 제안에 제가 많다라는 건
Yves: 외로워서 사람들과 함께하고 싶고 같이 있고 싶은 너도 있고, 마치 부모처럼 너를 다그치고 혼내고 컨트롤하려고 하는 너도 있는 거지. 그러니 어떤 게 너의 생각인지 쉽게 생각하지 못하는 거 아닐까? 그렇다면 오늘처럼 너에게 아끼고 절약하고 양보하라고 강요하는 너 하나가 있다는 거지? 또 아침에 어떤 마음이 들었니?
나: 이렇게 양보하고 타인을 위해주느라 고생한 저에게 누군가 위로해주었으면 하는 마음도 들었어요. 고생했다, 애썼다 등의 말을 듣고 싶은 마음이랄까요.
Yves: 그럼 아끼고 절약하고 양보하라고 강요하는 너와 위로받고 싶고 사랑받고 싶은 네가 있다는 얘기군. 그야말로 부모와 아이가 네 안에 살고 있는 거구나.
나: 제 안의 부모는 왜 이렇게 저한테 못된 걸까요?
Yves: 항상 하는 이야기지. 그런 이유가 있었을 거라고. 내가 살아보니 모든 사람의 성격은 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라는 이유로 설명되더라고. 세상에 나쁜 사람으로 태어나는 사람이 어디 있겠니. 네 안의 부모도 그럴 수밖에 없었을 거야. 너에게 아끼고 절약하고 참아달라고 강하게 요구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말이야.
나: 그럴 수밖에 없었다, 라는 말이죠.
Yves: 그래 그렇게 바라보면 꽤나 타인의 태도와 성격에 조금은 관대해지는 것 같아. 저 사람은 저런 성격이 될 수밖에 없었구나, 하고 말이야.
나: 제 부모도 저에게 이렇게 할 수밖에 없었군요.
Yves: 그렇게 네 안의 부모에게 관대해지면 그들의 태도에 대한 이유가 보이지 않을까? 리틀 퍼커 너의 실제 부모님을 생각하면 어떤 생각이 먼저 드니?
나: 유약하고 금방이라도 무너질 것 같은 그런 마음이 들어요.
Yves: 왜 그런 것 같니?
나: 제가 기억하는 부모님은 늘 아프고 경제적으로 넉넉하지 않아서 건강하지 않은 몸을 이끌고 늘 일하느라 바쁘셨어요. 제가 중학교에 다닐 때만 해도 집안 사정도 넉넉하지 못해서 한 번도 친구들을 제 집에 초대해본 적도 없어요. 왠지 모르게 저의 집과 부모님이 부끄러웠거든요. 그래서 부모님을 생각하면 늘 기침하고 한 숨을 내쉬며 지친 몸을 이끌고 일하러 나가시는 그런 뒷모습이 떠올라요.
Yves: 참 무서웠겠구나 리틀 퍼커
나: 어떻게 아셨어요? 제가 무서워했는지?
Yves: 어릴 때 부모의 존재란 세상의 전부 같은 존재지. 그런데 그런 부모가 늘 아프고 바쁘다면 어린 리틀 퍼커의 생존이 걸린 문제일 테니 늘 불안하고 어쩔 줄 몰랐을 게야. 그러니 오늘은 부모님이 무슨 감정일까 몸은 어떠실까 늘 살피고 귀기울였을테고. 그러니 네안의 부모는 네가 네 집과 부모에게 방해되지 않게 하기 위해 만들어낸 모습이 아닐까 싶다. 부족한 형편이고 힘들어하는 부모님에게 피해 끼치고 싶지 않아서 말이지.
나: 맞아요. 정확해요. 얘기를 들어보니 왜 오늘 계란 2개를 부모님에게 양보했는지도 조금 알 것 같아요. 예전이나 지금이나 저는 늘 부모님이 걱정되거든요. 아프진 않을까 하시는 일은 잘 될까 하고 말이에요. 속상하고 어리광 부리고 싶어도 부모님에게 걱정 끼치고 싶지 않아요.
Yves: 오 리틀 퍼커. 당연히 내가 부모님 걱정하지 말라고 해도 멈추기는 힘들 테지? 그렇지만 말이야. 우리 집 강아지 조나도 집 밖에 풀어두면 혼자 나름 먹을걸 찾아먹을 거야. 저 날아다니는 새들도 추워 죽거나 잡아먹힌다면 모를까 적어도 굶어 죽지는 않을 테고. 너무 우스운 말이지만 너희 부모님도 결국 계속 살아가실 거다. 네가 걱정하든 하지 않든 말이야. 다만 이거 하나는 명심해야겠어. 부모의 마음과 너의 마음은 분명 분리될 필요가 있어 보인다. 너무 그들의 마음을 너의 마음처럼 생각하고 공감하려 하지 마. 너에게 필요한 게 있다면 그때는 너에게 얘기를 할 거다. 그 말을 들어주면 돼. 그전에 미리 뭐가 필요할까 무슨 마음일까 지레짐작할 필요 없다는 거지. 즉 네 안의 부모를 말하는 거야 리틀 퍼커. 부모님을 위해 만든 네 안의 부모 말이야.
나: 그럼 제 안의 부모는 이제 어떻게 해야 할까요? 제 안의 부모는 사라지지 않을 거예요. 계속해서 제 안의 아이를 압박하지 않을까요?
Yves: 물론 그렇겠지. 아주 오랫동안 박혀온 생각이니 쉽게 사라지지는 않을 거야. 하지만 한국에 아는 게 반이다, 라는 속담도 있잖니. 네 안의 부모는 네 부모를 위해 만든 하나의 생각일 뿐이라는 것을 알았잖니.
나: 그렇네요.
Yves: 그래도 빈 손으로 돌아가기는 아쉬우니 네가 했던 질문에 대한 답을 하나 줄게 리틀 퍼커. 아까 전 나한테 나는 나 자신을 사랑하느냐고 물어봤었지? 그 질문을 우리 대화중에 잠시 생각해봤다. 음... 생각을 해봤지만 사실 나도 잘 모르겠다 리틀 퍼커. 왜 어려운 질문을 해서 계속 생각나게 하는 거야.
나: 굉장히 멋진 대답이 나올 줄 알았는데 조금은 실망이네요!
Yves: 대신 보여줄 게 있다 리틀 퍼커.
Yves는 서랍장에서 복싱 글러브 밴드를 하나 가져와 내게 건네주었다.
Yves: 너의 질문을 곰곰이 생각해봤을 때 굳이 떠오르는 대답이랄까.
나: 이게 뭐죠?
Yves: 글러브 밴드야. 복싱 글러브를 끼기 전 너의 손을 보호하려고 손에 묶는 거야.
나: 이게 어떻게 나는 나를 사랑하냐, 라는 질문의 대답이 되는 거죠? 아! 알았어요. 내 손이 다칠까 봐 내 손을 보호해주려는 거죠?
Yves: 그래 그럴 수도 있지. 그런데 밴드를 잘 만져봐. 밴드 치고 굉장히 부드러울 거다.
나: 맞아요 굉장히 부드러워요.
Yves: 흔하게 구할 수 있는 밴드보다 재질이 훨씬 좋은 거야. 아주 부드럽지. 손에 감을 때부터 감는 맛이 다르단 말이다.
Yves는 자신의 손에 밴드를 감고 그 위에 글러브를 끼며 내 얼굴 앞으로 주먹을 가져다 댔다.
Yves: 어떠냐! 밴드가 보이니?
나: 안 보여요.
Yves: 그래 이 밴드는 아무리 좋아도 이렇게 글러브를 끼면 안 보여. 감촉도 재질도 내 만족을 위해서 인 거지. 어디 가서 자랑할 수도 보일 수도 없어. 정말 나를 위한 거야. 리틀 퍼커 너도 어디 가서 자랑하거나 뽐내는 용도가 아닌 너 혼자 사용하고 쓸 수 있는 좋은 물건 하나를 사보는 건 어때? 오로지 너만을 위한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