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리를 둬야 숨 쉴 거 같아요
샌드위치와 파니니가 맛있기로 유명한 브런치 가게 앞 야외 테이블에 앉아서 Yves를 기다리고 있었다. 오늘은 이곳에서 조금 이른 점심을 함께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약속시간보다 15분 정도 일찍 와서 먼저 적당히 자리를 잡고 앉아있기로 했다. 조용하고 한적해서 참 평화롭구나,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한적한 지금의 이 풍경만큼이나 내 핸드폰도 굉장히 조용했다. 얼마 전부터 하나둘씩 주변 사람들과의 연락을 끊어가고 있었다. 모두들 무슨 일 있느냐고 물었지만 자세한 대답은 해주지 않았다. 사실 나도 내가 무슨 마음 때문에 이러는지 모르고 있으니 말이다. 그냥 그 누구와도 대화하고 싶지 않고 아무도 나를 찾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마음만이 있을 뿐이었다.
첫 시작은 여자 친구였다. 서로 어리숙한 외국어로 소통하던 우리였고 같이 대화하며 느끼는 재미에서 시작하다가 함께 있는 시간이 길어지며 발전된 관계였다. 그리고 불과 얼마 전까지 잘 만나서 재밌는 시간을 보내던 여자 친구에게 별안간 더 못 만나겠다는 차가운 통보를 내던졌다. 이게 지금 무슨 상황이지라는 표정으로 어쩔 줄 몰라하는 여자 친구에게 다시 강조했다. 내가 지금은 너를 잘 만날 수 있는 마음 상태가 아니다,라고. 그렇게 갑작스럽고 무거운 이별을 하고 돌아와서는 나를 자책했다. 세상에 수많은 사람들이 있고 그 수많은 사람들 중 나를 이렇게 아껴주고 좋아해 주는 사람을 만났는데 내가 뭐라고 그 사람에게 이런 갑작스러운 이별을 표하면서 상처를 준단 말인가. 이 무슨 배은망덕한 태도인가. 오늘도 즐겁게 시간을 함께 보내려 했다가 예상치 못한 아픔을 안고 되돌아갔을 그녀의 모습이 머릿속에 그려졌다. 아마 아직도 마음 정리가 잘 되지 않아 친구들에게 이 상황을 털어놓거나 어디 인터넷에서 이와 비슷한 상황에 대한 글을 찾아보지 않을까 하고 생각했다.
여자 친구는 시작에 불과했다. 여자 친구와의 이별도 모자라서 친구들마저 밀어냈다. 친구들과 단체 대화방에서 올해 여행지는 어디로 갈지 대화를 나누고 있을 때였다. 각자가 생각하는 괜찮은 여행지를 추천하고 있었고 이 대화를 조용히 보고 있던 나는 그냥 조용히 그 대화방을 나왔다. 그리고 연락처도 대화방도 모두 차단했다. 개별적으로 친구들의 연락이 빗발쳤다. 그냥 몸이 조금 안 좋아서 그런데 좀 쉬다와도 될까,라고 답변하며 대화를 금방 끝마쳤다. 이렇게 한다고 지금의 답답한 마음이 편해지지는 않지만 어째서인지 이렇게 해야 할 것만 같았다.
이렇게 끊어낸 관계들에 대해 생각이 끝나갈 무렵 저 멀리서 Yves가 몰고 다니는 쉐보레 차량이 보였다. 식당 앞 야외 주차장에 차를 댄 Yves가 나를 발견하고 내쪽으로 걸어왔다. 사실 Yves와의 관계도 처음엔 불편했다. 나보다 60살이나 많은 노인을 대하자니, 유교문화의 뿌리를 두고 있는 한국에서 온 나로서는 공손하고 예의 바른 모습으로 챙겨드리면서 조금은 딱딱한 관계가 될 것 같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Yves는 장난과 농담을 좋아했고 늘 아이처럼 해맑은 모습이었고 혼자서 무슨 생각을 하는지 나를 보며 늘 낄낄거리고 웃으셨다. 사실 나를 젊은 청년도 동양인도 아닌 그냥 자신 앞에 있는 사람 하나 정도로 보고 있구나라는 느낌을 받았다. 시계를 보니 정확히 12시였다. 시간관리를 잘 못할 것만 같은 그이지만 한 번도 약속시간을 늦은 적은 없다.
나: Yves.
Yves: 오 제발 리틀 퍼커. 표정이 심상치 않구나. 나는 이 화창한 날씨 아래에서 맥주와 베이컨을 즐기러 온 거야. 제발 이 자리를 무겁게 만들지 마렴.
나: 좋아요. 일단 주문하고 올까요?
멕시코에서 온 젊은 주방장이 운영하는 이 식당은 정말 좋아해서 자주 찾는 식당 중 하나이다. 가격도 저렴해서 출출할 때 점심으로 먹기에 안성맞춤이다. Yves는 샌드위치와 맥주를 나는 콜라와 샌드위치를 주문하고 다시 자리로 와서 앉았다.
Yves: 날씨 정말 좋지 않니? 이런 날씨에 크로스컨트리나 호수에 배를 띄워놓고 낮잠 자면 딱인데 말이다.
나: Yves는 휴일에 보통 뭐하고 시간을 보내나요?
Yves: 나야 뭐 매일매일이 휴일이지. 보통 스포츠 경기를 보거나 말들 손질하고 밥 주면 하루가 금방 가지. 가끔 SNS에 들어가서 재밌는 영상들도 보고 말이야. 요즘 재밌는 영상이 아주 많이 올라오더라고.
나: 친구들은 안 만나세요?
Yves: 글쎄다. 이곳저곳을 이동하며 다니고 내 나이쯤 되면 딱히 남아있는 친구들이 많지 않은 것 같다. 그리고 리틀 퍼커 네가 있잖니. 리틀 퍼커 너는 친구들 안 만나니? 네가 평소에 하는 고민들을 친구들과 나누면 더 잘 이해해줄 수 있을 텐데 말이야.
나: 사실 친구들에게는 제 고민을 잘 얘기 못하겠어요. 제 고민을 얘기하는 것도 부끄럽고 얘기해도 그 친구들이 이해해줄 수 있을까라는 생각도 들어요.
그때 주문한 음식들이 나왔다. 주방장은 샌드위치를 테이블 위에 올려두었고 Yves는 재빠르게 맥주를 집어 들고 크게 들이켰다. 별로 배가 고프지 않았던 나는 콜라를 먼저 따서 한 모금 마셨다.
Yves: 지난번에 내가 얘기했잖니. 툭툭. 굳이 너의 이야기를 다 공감받고 이해받으려고 할 필요 없단다. 그냥 너는 털어놓는 거에 먼저 의미를 두는 거야. 좋은 술과 이야기는 혼자 꽁꽁 숨겨두는 게 아니란다.
나: 사실 이제 털어놓을 수 있는 친구들이 없어요.
Yves: 그게 무슨 말이니? 왕따라도 당하는 거야? 지난번에 가르쳐준 펀치를 써먹을 때가 온 것 같구나!
나: 그게 아니에요. 좋은 친구들이에요. 하지만 제가 다 밀어냈어요. 그들에게 더 이상 연락하지 말라고 했어요. 어째서인지 그냥 시답잖은 대화를 할 때나 같이 밥 먹고 놀 때조차 별로 즐겁지 않고 외롭다는 느낌을 받아요. 왜 같이 있는데도 전 외로운 걸까요? 심지어 이제는 그 외로움이 버거움이 되어서 그들을 다 밀어내야만 속이 편했어요.
Yves: 항상 내가 하는 말이지만 말이다.
나: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을 거라는 거죠. 저는 그럴 수밖에 없었던 거고요.
Yves: 오 리틀 퍼커. 기억하고 있구나.
나: 그래서 지난번에 저한테 얘기해준 말 중에 그게 생각났어요. 부모님과 저와의 관계로 인해 저와 제 자신과의 관계가 만들어지고 이 관계에 따라 저와 제 주변 사람과의 관계가 만들어진다고요. 그럼 어떤 관계에서부터 문제가 되었던 걸까요?
Yves: 리틀 퍼커 네가 들려준 부모님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네 부모님은 너를 기르며 여유가 많이 없으셨던 모양이야. 그래서 네 감정이나 마음을 챙겨주고 물어봐줄 여유도 없었겠지. 그리고 네가 기억하는 부모님은 늘 아프고 힘든 상황에 있는 분이라고 표현했어. 그러니 네 성격상 네 이야기를 잘 안 했을 거야. 네 마음이나 감정은 더 안 했을 테고 어린아이 때의 감정은 대부분 칭얼거림이나 불만이니까 그런 감정들은 부모님께 짐이 될 거라고 생각했겠지.
나: 맞아요. 시종일관 힘들고 지쳐있는 부모님에게 도움이 되면 되었지 짐을 주고 싶지는 않았어요. 그리고 가끔가다 투정이나 짜증을 부릴 때면 안 그러던 애가 왜 이러니, 라며 답답해하기도 하셨던 거 같아요. 그래서 더욱 속 안에 있는 이야기를 잘 표현하지 못했던 거 같아요.
Yves: 그랬겠지. 그러니 네 이야기를 하는 게 편하지 않을뿐더러 네 감정을 얘기한다고 하더라도 수용되지 못할 거라는 생각이 깊이 자리 잡혔을 거야. 그런데 너는 그때 아주 어린아이였잖니? 아프고 힘든 부모님을 볼 때면 그들이 혹시라도 잘못되지 않을까 하는 불안과 걱정이 있었을 테고 그러면 혼자 남겨질 것 같은 불안도 함께 찾아왔을 텐데 말이다.
나: 그런 마음이 있는지는 몰랐는데 듣고 보니 맞는 말 같아요. 지금도 부모님을 챙기는 이유가 혹시라도 그들이 아프거나 더 힘들어져서 내가 혼자 남겨지면 어떡하지 라는 걱정이 있는 것 같아요.
Yves: 어린아이에게 있어 혼자 남겨질 것 같은 불안은 가장 무서운 공포란다. 부모 없이 그 아이가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겠니. 혼자 남겨질 것 같은 불안으로 인해 너는 끊임없이 주변 사람들과 관계를 맺을 때도 그들에게 필요한 걸 해주고 들어주고 맞춰주며 그들이 너를 떠나가지 않도록 너를 필요로 하도록 챙겼을 거야. 그리고 그런 불안한 상황은 계속해서 너를 자극하고 너를 예민하게 만든단다. 그런 예민함도 어린아이였다면 충분히 표출해도 전혀 이상할 게 없지 당연히 어린아이니까 말이다. 하지만 불안과 예민함은 쌓여가고 도리어 너에게 기대와 부담만을 더해주시니 불안과 공포에 더해서 못마땅하고 화나는 마음도 생겨나지 않았을까 싶다.
나: 맞아요. 어릴 적부터 좀처럼 안정되지 못한 환경으로 인해 불안했지만 그런 불안하고 못마땅한 마음을 좀처럼 얘기할 기회를 안 주셨어요.
Yves: 그런 관계는 너무나 쉽게 지칠 수밖에 없단다. 어쩌면 지금까지 관계를 이어온 것만으로도 정말 대단한 일이라고 볼 수 있지. 그리고 부모는 모든 관계의 첫 시작과도 같단다. 네 어머니를 바라보는 태도로 너의 여자 친구들을 바라보고 네 아버지를 바라보는 태도로 친구들을 바라보게 되지.
나: 조금 정리되는 거 같아요. 부모님과의 관계에서 내 감정과 마음이 온전히 수용되지 못할 거라는 고정관념이 생긴 거고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그들을 보며 혼자 남겨지고 싶지 않아 주변을 항상 맞춰주는 제가 되었고 그로 인해 제가 결국 지쳐버렸다는 거죠? 게다가 부모님을 바라보고 대하는 태도에서 이미 신뢰는 잃었고 부정적인 관계로서만 남게 되니 앞으로 이어져가는 모든 관계도 마치 부모님을 바라보듯 부정적인 시선이 계속 가게 되는 거고요.
Yves: 똑똑하구나 리틀 퍼커. 말을 참 조리 있게 잘하는 능력을 가졌어.
나: 그럼 이제 전 어떻게 해야 하죠?
Yves: 오 똑똑하다는 말은 취소다. 굉장히 피곤하게 하는 능력도 함께 가진 거 같구나. 자 이렇게 생각해보자. 너의 부모님이 집에 안 계시다면 리틀 퍼커 너는 저녁을 굶을 거니?
나: 아뇨 혼자 해 먹겠죠
Yves: 그래 너는 이미 이렇게나 자라서 빅 퍼커가 되었단다. 즉 너의 부모님 없이도 혼자 먹고 마시고 살아갈 수 있다는 거야. 어릴 적에야 먹여주고 지낼 곳을 주어야 하는 부모의 존재가 절대적이었겠지만 지금은 아니란 말이다. 그러니 마음에서부터 네 부모와 독립을 이루어야 할 테야. 너는 너고 부모는 부모다. 그리고 너는 혼자 살아갈 능력이 충분히 있다,라고 스스로에게 새겨주어야 해.
나: 좋아요. 혼자서 살아갈 수 있다는 마음. 부모님 없이도 혼자 살아갈 수 있다는 것도 명심할게요. 그럼 친구들과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Yves: 물론 다른 이유가 더 있다면 그건 모르겠지만, 혼자이고 싶지 않다는 마음에 늘 맞춰주고 들어주는 입장이었고 그들에게 상처 주는 말이 될까 봐 너의 속마음을 잘 표현하지 못해서 지쳐버린 거라면 이제는 너의 친구들과 있을 때 혼자여도 괜찮다는 마음이 필요하겠구나. 아마 방금 말한 혼자 살아갈 수 있다는 믿음과 자신감이 충분히 갖춰진다면 이것도 어렵지 않을 거야. 내가 어떤 솔직한 말과 행동을 해서 상대방에게 상처가 되고 이 관계가 조금 틀어진다 하더라도 그 이별이 두렵지 않고 너는 혼자서도 충분히 살아갈 수 있다는 믿음 말이야.
나: 정리가 되는 거 같아요. Yves는 운동코치가 아니라 상담 코치를 해도 굉장히 잘했을 거 같아요.
Yves: 말도 안 되는 소리 마라. 지금 내가 얼마나 피곤한지 너는 모를 거야. 다른 관계들을 대할 때도 이렇게 대하렴. 오늘은 무슨 고민을 얘기해야지. 그런데 이 고민을 잘 안 들어주고 공감 못해주면 어쩌지? 이런 생각은 하지 말고 그냥 같이 시간 보내야지 하는 마음으로 먼저 가는 거야. 그리고 상황과 시간 여유만 된다면 그냥 한번 흘려보는 거지. 누군가와 꼭 함께 있어야 한다는 부담은 가질 필요 없단다. 그냥 이렇게 보내는 거야. 샌드위치와 맥주 이거면 충분하단다. 좀 오글거리는 말이지만 말이다. 행복은 딱 지금의 오후 같은 거다. 네가 행복을 크게 느꼈다고 그게 어디 저장되는 게 아니야. 그냥 이 시간에 잠시 즐기는 오늘의 행복인 거다. 내일의 행복 따위는 미리 저장할 수도 없어. 그러니 지금의 너로서 네 시간을 살아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