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숙한 곳에서 주는 안정감
이사를 하는 날이다. 그래서인지 아침에 눈을 떴을 때부터 오늘 하루 힘들걸 생각하니 쉽게 일어나 지지 않았다. 평소 같았으면 눈 뜨고 5분을 넘기지 않았을 텐데 오늘만큼은 15분이 지나도 쉽게 일어나 지지 않았다. 셋 세고 일어나는 거야라고 스스로에게 말하며 겨우겨우 일어났을 때 현관에서 초인종 소리가 들려왔다. 이삿짐센터 직원들이었다. 이미 수백 번은 해본일이라는 것처럼 자연스레 신발을 신고 들어오셔서는 물건들을 담아갈 박스를 조립하셨다.
3시간 정도에 걸쳐 큰 짐들을 빼고 작은 짐들을 담고 있을 때 이삿짐센터 직원분께서 이건 이참에 버리시는 게 어떨까요, 라며 조언을 주기도 하셨다. 바로 그럽시다라고 결정을 쉽게 내리지 못했다. 결국 버리게 될 걸 알지만 그럽 시다가 아닌 그럴까요라고 되물었다. 몇몇 큰 짐들을 버리고 나니까 생각보다 옮기는 짐의 양이 많이 줄었다. 버리려고 문밖에 내놓은 물건들을 바라보고 정말 앞으로 쓸 일이 없을까 하고 생각하며 멍하니 바라보았다.
Yves: 리틀 퍼커 이사는 잘 돼가니?
Yves였다. 얼마 전 오늘이 이사 가는 날이라고 알려주었는데 그걸 기억하고 와준 모양이다.
나: 기억하고 있었네요.
Yves: 당연하지. 이 나이쯤 되면 기억해야 할 일정들이 몇 없거든.
나: 아무래도 혼자 사니까 짐이 그렇게 많지 않아요. 3시간 정도 옮겼더니 대부분 옮긴 거 같네요.
Yves: 응? 짐이 그렇게 많지 않다니 그게 무슨 말이냐? 밖에 내놓은 짐들만 보고 나는 네 가족들 다 와서 사는 줄 알았다. 혼자 사는데 짐이 뭐 이렇게 많은 거야?
나: 안 그래도 그런 잔소리는 방금 듣고 오는 길이에요. 밖에 내놓은 짐들은 다 버리는 거예요. 그런데 쓰지는 않지만 꽤 오랫동안 제 집에 있었더니 버리는 게 쉽지 않네요. 다 언젠가 쓸 거 같고 없으면 허전할 거 같고 그래요.
Yves: 그렇지. 사람이나 물건이나 같이 오래 있었던 시간을 생각하면 떠나보내는 게 쉽지 않지
나: 맞아요. 혹시 괜찮으면 이사 가는 집 구경 가실래요? 걸어서 30분 정도 거리예요.
이삿짐 직원들 모두 잠시 일을 멈추고 점심시간을 가지는 동안 Yves와 함께 이사 가는 집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아침에 일어날 때까지만 해도 오늘 하루가 참 걱정되었는데 어느새 시간이 흘러 짐 정리가 대략 마무리되어가는 걸 보니 어서 새로운 집에서의 시간도 빠르게 흘러 적응해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Yves: 표정이 썩 즐거워 보이지는 않는구나 리틀 퍼커?
나: 그러게요. 새로운 집에 가는 건데 왠지 공허한 마음이 드네요.
Yves: 리틀 퍼커, 내가 지금까지 이사를 몇 번 했는지 아니?
나: 한 10번 정도?
Yves: 내가 대략 네 나이쯤 되었을 때 이미 10번 이사했을 거다. 사실 지금까지 이사를 몇 번이나 했는지는 잘 기억이 나지 않는구나. 그만큼 너무나 많은 이사가 있었지. 첫 이사가 4학년 때였고 두 번째 이사가 5학년 때였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나니 벌써 5번의 이사를 마친 뒤였어. 이사를 할수록 조금씩 고향에서 멀어지더니 어느새 퀘벡에서 멀리 떨어진 이곳까지 이사를 왔구나. 리틀 퍼커 너도 이곳저곳 많이 돌아다니지 않았던가, 이번 이사는 마음이 어떠니?
나: 사실 좀 불안해요. 그냥 계속 떨리네요. 어딘가로 또 옮긴다고 하니 불안하고, 익숙했던 물건들을 대부분 버리고 나니 왠지 공허한 느낌도 들어요.
소리 없이 씩 웃으며 무슨 마음인지 안다는 듯 Yves가 나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Yves: 내가 운동을 해야겠다고 마음먹은 건 세 번째 이사를 마치고 난 후였단다. 학교에서 친구들에게 운동선수가 되면 지낼 수 있는 숙소가 제공되고 많은 돈을 벌 수 있는 기회가 있다는 얘기를 들어서였지. 지금은 리틀 퍼커 네가 내 감자칩과 맥주에 돈 낭비한다고 잔소리를 하지만 말이다. 그때 나는 너무 가난해서 내가 배고픈데도 불구하고 하나 남은 빵을 동생에게 양보해줘야 하는 그런 상황 속에서 지냈단다. 나보다 어리고 동생이니까 양보했지만 냅다 받아먹은 동생이 얼마나 얄밉던지. 뻑뻑하던 그 빵에 마치 버터라도 바른 것처럼 노란빛이 돌며 아주 맛있어 보였단다. 아버지는 계속해서 직장을 옮겨 다니셨고 아버지 직장에서 가까운 곳에 지내야 했기에 이직을 하실 때마다 우리는 이사를 가야 했단다. 이사를 가도 항상 어두운 골목에 위치한 허름한 집에서 지냈기 때문에 술 취한 건달들이 술 좀 달라며 문을 두드리곤 했는데 그게 얼마나 무섭던지. 그래서 집을 나왔단다. 어느 곳이라도 좋으니 조용하고 안정적인 곳 어느 한 곳에 오래 머물러 있고 싶었다. 계속 옮겨 다니고 모르는 건달들의 위협을 받는 불안한 환경이 아닌 안정적일 수 있는 곳 말이야. 하지만 운동을 시작하고 숙소가 배정되었지만 숙소에 들어갔다고 해서 쭉 한 곳에만 있을 수 있었던 건 아니야. 실력이 부족하니 훈련장 이곳저곳을 거쳐갔고 그럴 때마다 숙소도 계속 이동됐지. 그런데 그렇게 매번 숙소를 이동할 때마다 내게 위안이 되었던 게 뭔지 아니?
나: 옮겨 다닐 때마다 함께 했던 물건들이었군요.
Yves: 그래 너라면 맞출 것 같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내 주변 환경은 항상 바뀌어왔고 나 역시 계속 불안했다 보니 내 책상, 내 방의 환경만이라도 계속 익숙한 것으로 유지하고 싶었던 것 같다. 늘 보던 물건들을 보면 이 새로운 장소도 조금은 내게 익숙하고 쉽게 적응할 수 있을 것만 같았지.
나: 저도 비슷한 이유일 거 같아요. 이렇게 낯선 곳을 걸을 때면 이곳에서 주는 설렘과 반가움도 있지만 적어도 내가 먹고 자고 사는 공간은 늘 안정적이고 익숙한 곳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요.
Yves: 그래 그러니 너무 그걸 극복하려고 일부러 물건들을 버리거나 할 필요는 없단다. 네 마음이 충분히 안정을 느끼고 정착을 하면 그때는 어렵지 않게 할 수 있으니 말이다. 지금은 네 마음 편한 것을 하려무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