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히 벌어지는 일들에 대하여
이직에 대한 고민이 한참이던 때였습니다. 지금 다니는 회사를 그만두고 전혀 다른 분야의 일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였습니다.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고 공감해주는 일을 좋아하다 보니 상담 공부를 해볼까도 고민을 해봤습니다. 그렇게 고민을 점차 현실화시켜나가고 진지하게 생각하자 회사에 대한 마음도 조금씩 떠나가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회사에서는 장기 해외 출장이라는 업무를 제게 맡겼습니다.
예전의 저였다면 회사에서도 숙식 모두 제공해주고 그냥 옷만 챙겨서 해외에 간다고? 아니, 이보다 좋을 수가 있나 싶었겠지만 하루라도 빨리 그만두어야 하는데 이 시기에 해외라니, 그것도 놀러 가는 게 아니라 일하러 가는 해외라니. 달갑지 않았고 출국일이 다가올수록 한 숨이 늘어갔습니다.
그렇게 해외에 도착했고 제게 주어진 업무를 하루 이틀 해나가고 있었습니다. 이미 마음이 떠버린 회사였지만 그래도 제게 주어진 일에 대해선 책임감을 갖고 마무리하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그 주임님을 만난 건 해외에 온 지 3일 차 되던 날이었습니다. 해외 출장 온 이 장소에서 모두가 방역 수칙은커녕 마스크조차 제대로 쓰고 다니지 않는 이 해외에서 꿋꿋하게 마스크를 쓰고 핸드폰 스트랩을 목에 건 채로 두리번거리는 사람 하나를 발견했습니다. 아무리 봐도 한국인처럼 보이는 저 사람은 어딘가 공경에 빠진 것처럼 보였습니다.
한국에서 오셨냐며 인사라도 걸고 도와줄 것이 있는지 물어보고 싶었으나 먼저 부탁하지 않은 도움은 주지 않는 것이 내 모토이기에 참고 넘어갔습니다.
그렇게 출장 장소에서의 업무를 다 마치고 한참의 시간이 흘러 더위라도 잠시 피할 겸 근처 카페에 들어가 더위를 식히고 있을 때였습니다. 그 순간 저는 건너편 테이블에 앉아있는 한 사람을 보고 입가에 미소를 짓게됩니다. 볼 사람은 어떻게든 보게 되는구나, 하고 생각했습니다. 먼저 말을 걸어온 건 건너편에 앉아계시던 아까 그 분이었습니다.
"한국에서 오셨죠?"
"네, 마스크를 제가 너무 열심히 쓰고 다녔죠? 티가 나나 보네요"
가벼운 인사를 주고받다가 서로 어쩌다 이곳까지 오게 되었는지도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놀랍게도 그분은 저와 같은 분야의 업무를 하고 계셨었고 출장 차 이곳에 왔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회사에서 그분께 주어진 업무가 있었는데 어떻게 해가야 할지 막막해하던 중이라는 것이었습니다.
"혹시 제가 좀 볼 수 있을까요?
같은 분야의 종사자였고 많이 해보고 경험해본 업무였기에 어떻게 하면 괜찮은 결과물을 낼 수 있을지 알 수 있었습니다. 그분께 이렇게 한번 해보는 것은 어떨까요? 라며 나의 아이디어를 제안했고 꽤나 만족해하는 표정을 짓더니 이윽고 당황한 표정으로 되물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이 일에 대해서 알고 계세요?"
"그러게요"
그러게 말입니다. 이 출장을 오기 전까지만 해도 누군가를 돕고 내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 일을 그만두려 했는데 저도 모르게 예상하지 못했던 이 출장에서 내가 해왔던 업무로 누군가를 돕게 될 줄은 몰랐네요. 그래서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됩니다. 누군가를 돕는 다는 것은 꼭 그 사람과 1:1로 앉아서 전혀 모르는 분야와 환경이지만 최대한 열린 마음으로 들어주고 공감해주는 것이 전부는 아니라는 것을. 아무리 하기 싫고 떠나고 싶은 일이었다 할지라도 내가 겪은 경험이 누군가에게는 도움이 되는 순간들이었다는 것을, 그러니 내 하루의 그 어떤 순간도 남는 것 없이 흘러가는 시간이 아니라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