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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그럴 수밖에 없었습니까

꼬마야 미안하구나

by 정현숙

-전편에 이어서


아이에 대한 가사조사 및 심리검사를 실시하겠다는 판사의 말에, 아빠는 아들에게 생모의 존재 내지 현재 상황에 대하여 알게 하는 것을 완강히 거부하였다.

그도 그럴 것이 그 참혹한 일이 일어났을 때는 아이는 고작 6살이었다.

그 아이는 이제 겨우 8살이 되었다.

아빠에게 그 불안감을 충분히 이해하고 있으며 아이에게는 어떠한 사실도 알리지 않는 형태로 조사 및 검사를 실시하겠다고 간곡히 설득했다.

긴 설득의 시간 끝에 아빠는 마침내 동의하였다.

아이에게 엄마의 존재나 엄마가 자신을 만나고 싶어 한다는 내용을 알리지 않은 채 '코로나 19로 인해 학교에 가지 못하고 있는 아이들의 생활실태 조사'라는 명목으로 가사조사를 실시하였다.



드디어 가사조사 및 심리검사 결과가 회보되었다.

우선 아이는 현재 가정에 잘 적응했고, 주된 양육자인 계모와의 애착 관계도 안정적으로 형성되어 있었으며 아이의 발육상태도 양호했다. 또 외관상 아토피 증상이 관찰되지 않으며 일상생활, 가족 이야기 등에 대해 거부감 없이 진술하는 등 적절한 보살핌을 받고 있었다.

학대의 징후는 전혀 보이지 않았다.


다음으로 가사조사에 의하면, 아들은 계모를 ‘엄마’라고 호칭하고 있기는 하나 ‘다른 엄마(생모)’의 존재를 인식하고 있고, 다른 주제의 이야기를 할 때에는 거부감 없이 자기표현을 하였으나 ‘다른 엄마’에 관한 이야기를 할 때에는 그렇지 않은 모습이 관찰되었다.

그리고 심리검사에 따르면, 아이는 “현 가족과 관계에서의 안정성을 가장 우선시 여기고 있으며 현재 가족의 일원으로 3명이 잘 지내고자 하는 욕구가 큰 상태”였다. 문장완성검사에서 아이는 "내가 가장 걱정하는 것은 가족이 하늘나라로 가는 것이다"라고 기재했다. 아이는 “불안감과 우울감을 가지고 있으며 이러한 특성들이 강박적인 방식으로 나타내고 있었다.

생모의 범죄내용을 알지 못한 임상심리전문가는 아이의 불안감의 요인으로 '친엄마가 없다는 것'을 들며 친모인 엄마가 자신을 찾고 있다는 것을 설명하는 것이 그 불안을 감소시킬 수 있다고 기재하며 보고서는 마무리되었다.



가능하면 대면하고 싶지않은 시간, 또다시 판사의 시간이다. 슬프고 아프다.

가끔씩은 시지프스의 형벌을 받는 것이 아닌가 싶을만큼 고통스럽다.

피하고 싶으나 피할 수 없는.

반드시 판단을 해야만 하는 억겁 같은 시간들.


아이는 생모와 분리되었을 당시 만 6세였고, 그 이전 약 1년 동안 계부 내지 죽은 아이 함께 생활했었다.

엄마의 구속으로 경찰서에서 보호받다가 아빠에게 인도되었고 당시 엄마의 범죄가 언론에 대대적으로 보도되었던 점 등을 고려해 보면, 아이는 사실을 어느 정도 알고 있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이런 상황에서 아빠를 포함한 주변 모든 어른들이 마치 아무런 일이 없었던 것처럼 행동하는 것, 나아가 아이에게서 생모의 존재를 완전히 지워버리려고 하고 그럼으로써 아이로 하여금 생모가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행동하게 하는 것은 아이에게 잠재해 있을지 모를 내면의 문제를 더 어렵게 만드는 요인이 될 수 있다.

평생을 손톱밑에 박힌 보이지 않는 가시처럼 아이의 인생을 아프게 할터이다.


그러나 아이의 나이, 현 가정에 귀속 정도, 생모의 범죄내용 등에 비추어 볼 때 아이에게 바로 생모의 존재 및 교도소 수감 중인 사실을 알리는 것은 아이에게 큰 충격을 줄 것이 명백하다. 아이가 어렴풋이 알고 있다고 하더라도 그 충격이 덜하지는 않을 것이다.

한편, 아이에게 이를 영원히 숨기는 것은 가능하지도 않을 뿐 아니라 바람직하지도 않다. 비록 그것이 아무리 받아들이기 어려운 참혹한 것이라 하더라도 소위 ‘뿌리’를 알고자 하는 욕구는 한 인간으로서 존재의 근간을 이루는 것이기 때문이다.


아이에게 적당한 시기에 적당한 방법으로 엄마의 존재 및 현재 상황, 자신과 엄마가 분리되게 된 이유 등을 알 수 있게 하여 주는 것이 타당하다.


그렇다면 언제, 어떻게 말인가?


아이는 집에서 반복적으로 저질러진 어른들의 악한 짓거리들을 목격하였거나 알고 있었을 개연성이 크다. 자기와 비슷한 또래의 아이가 참혹하게 학대당하는 상황은 아이에게도 극심한 공포감을 주었을 것이다.

아이는 죽은 아이에게 가해졌던 것과 같은 학대가 자신에게 가해졌을 때 생모가 자신을 보호해 줄 것인지, 나아가 보호해 줄 능력이 있는지에 대하여 확신하지 못한 채 불안감을 가졌을 가능성이 크고, 이는 심리검사에서 나타난 불안감의 근원이 되었을 것이다.


생모는 아들이 엄마의 범죄와 교도소 수감 중인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큰 충격을 받을 수 있다는 점과 자신의 관여가 아들 현 가정의 안정성을 해칠 수 있다는 점을 이해하여야만 한다. 그리고 아들에 관한 면접교섭권 행사를 자제하면서 아들이 받을 충격과 아빠 및 계모의 우려를 최소화할 수 있는 다른 적당한 방법으로 접근함이 마땅하다.



법원은 숙고 끝에 이를 절충한 화해권고결정을 하였다.


결정사항

1. 엄마와 아빠는 엄마의 출소 전 적당한 시기에 엄마가 아들을 1회 대면 면접교섭 할 수 있도록 협의하기로 한다.
만일 협의가 이루어지지 않을 경우 아빠가 2023. 7. 1.부터 같은 해 12. 31. 사이에 아들을 대동하고 엄마를 1회 면회하기로 한다.
이를 위해 아빠는 이 결정이 확정된 이후 적당한 시기에, 적당한 방법을 사용하여, 점진적으로 아들에게 엄마의 상황에 대해 알려 주기로 한다.

2. 아빠는 엄마에게 2020. 9. 30. 까지 최근 촬영된 아들의 사진을 5장 이상 보내주기로 한다.
이후 엄마가 교도소에서 출소하기 전까지 매년 3회에 걸쳐 아들의 사진을 3장 이상 보내주기로 한다(1월부터 4월까지 촬영한 것은 4월 30일까지, 5월부터 8월까지 촬영한 것은 8월 31일까지, 9월부터 12월까지 촬영한 것은 12월 31일까지 보내는 것으로 한다)
엄마는 위와 같은 조치가 면접교섭에 갈음하여 실시되는 것임을 이해하고, 위와 같은 조치가 이행되는 동안에는 아빠에게 추가로 면접교섭 청구를 하지 않기로 하며, 아빠에게 조금이라도 양육비를 지급하기 위하여 노력하기로 한다.

엄마와 아빠, 아들, 그리고 아들을 양육하는 계모를 위한 최선이었다.

아들의 면접교섭을 강력하게 거부했던 아빠는 아들의 심리검사 결과를 들은 후 가슴 아파하면서 마음을 돌이켜 위 화해권고결정에 이의를 하지 않았다.

그러나 생모는 끝까지 이기적이었다.

그저 자신이 아들과 교류하는 것은 자신의 교화와 사회복귀 의지를 강화시키고 아이의 정체성 확립에 긍정적 결과를 가져온다는 점을 들어 무조건 면접교섭이 하루빨리 허용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법원의 화해권고결정에 이의를 제기하였다.


결국 이 사건은 법원의 무수한 노력이 무색하게 면접교섭청구를 기각하는 것으로 마무리될 수밖에 없었다.

아이는 당장 엄마를 만나서는 절대 안되기 때문이다.

엄마는 법원과 아빠, 그리고 아들의 마음을 끝끝내 외면했다.


원점으로 돌아간 엄마와 아들과 아빠, 그리고 새엄마.

가족이 하늘나라로 가는 것을 제일 걱정하는 8살 꼬맹이에게 자신이 어떤 짓을 저질렀는지 알지 못한 채 본인의 의사만을 관철시키려는 그 엄마가 원망스럽다.


타인, 그것도 아들의 인생을 배려한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전혀 그 의미를 알지 못하는 엄마는 도대체 어떤 인생을 살아온 것인가.

어떤 인생을 살아갈 것인가.

아들에게 어떤 엄마이기를 원하는가.

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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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