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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을 그리워하다 떠난 사람아...

by 정현숙

2019년 5월 25일, 아들을 너무나 그리워하던 36살의 건장한 한 젊은 남자가 아스라이 스러져갔다.

미쳐 허우적대던 서슬 퍼런 칼날에 온몸이 찢겼지만 그는 목청껏 소리치지도, 비명을 지르지도 않았나 보다.


살아보려 피를 쏟아내던 몸을 힘겹게 움직였으나 끝끝내 도저히 살아나갈 방법이 없음을 알게 되었을 것이다.

방 안에서 게임을 하고 있던 6살 난 아들에게 지옥보다 더 참혹한 그 광경을 보일 수 없어 그는 이를 악물고 소리 없이 죽어갔을 것이다.


그의 마지막 바람대로 아들은 끝끝내 그 사실을 알지 못하였다.

엄마가 물감놀이 했다는 말을 곧이곧대로 믿었다.

다행히...


그렇다.

모두가 익히 잘 알고 있는 제주도에서 일어난 고유정의 전남편 살해 및 사체손괴, 은닉 사건이다.

이 사건이 발생할 당시 나는 미국에서 연수중이었다.

처음 언론을 통해 기사를 접하고는 엄청난 충격에 휩싸였던 기억이 선연하다.

살인 전후의 고유정의 행각들이 너무나 엽기적이었기 때문에 모든 언론보도가 그 부분에 집중되었고 나 역시도 이역만리 미국땅에서 밤잠을 설쳐가며 공분했었다.

그리고 무기징역이 선고되고 확정되었다는 기사를 보았다.

이후 기억의 저편으로 넘어갔더랬다. 여느 사건처럼.


그런데 최근에 청주여자교도소 관련 언론보도에서 고유정에 관한 기사를 읽게 되면서 다시 사건에 관심이 생겨서 판결문을 찾아보았다(그녀의 확정판결문은 이미 모두 공개되어 누구나 확인이 가능한 상태이다)


판결문을 읽고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그토록 참혹한 살인사건의 동기가 다름 아닌 면접교섭의 문제였기 때문이다.



그들은 2013년 6월에 결혼하여 2014년 11월 아들을 얻었다.

그러나 곧 부부관계는 파탄났고 2016년 6월부터 별거를 시작했다.

남편이 2016년 11월 고유정을 상대로 폭행, 자해행위 등을 이유로 이혼소송을 제기했고,

고유정도 2017년 3월 남편을 상대로 경제적 무능과 육아 소홀 등을 이유로 반소를 제기하였다.

그 와중에 고유정은 2017년 1월 재혼남녀의 만남을 주선하는 스마트폰 어플을 통해 다른 남자를 만나 교제를 시작했다.


2017년 5월 이혼소송이 조정으로 마무리되었다(재산분할 부분은 기재 생략).

아들에 대한 친권자 및 양육자를 엄마(고유정)로 지정,
아빠는 양육비로 40만 원 매월 지급,
매월 첫째 셋째 토요일 10시부터 오후 6시까지 면접교섭


고유정은 2017년 11월 재혼했다.

아들은 제주도 친정에 맡긴 채 청주에서 재혼남과 생활했다.

아빠는 지속적으로 아들과의 면접교섭을 요구했으나 고유정은 거부했다.

아빠는 어쩔 수 없이 2018년 10월 법원에 면접교섭 이행명령 신청을 했다.

고유정은 3차례에 걸쳐 불출석하다가 과태료처분까지 받게 되자 2019년 5월에서야 법원에 출석하여 시범면접교섭에 관한 협의를 하기에 이르렀다.


그리고 마침내 1차 시범면접교섭일인 2019년 5월 25일.

아빠는 2년 만에 아들을 보러 가는 차 안에서 "성은 강, 이름은 00, 강 씨 집안의 첫째 아들"이라 되뇌며, "후회 없이 사랑했노라 말해요, 행복의 꿈을 꾸겠다 말해요. 00을 꼭 보겠다 말해요"라며 행복에 겨운 노래를 불렀다.


놀이공원에서 아들과 11시 30분부터 15시 10까지 꿈만 같았던 즐거운 시간을 보냈고, 마트에서 아들과 함께 장을 보았으며, 펜션에서 아들과 함께 세상 그 무엇과 비교할 수 없는 맛있는 저녁식사를 하였을 것이다.

전처의 따뜻한 호의라 여기며...


아들은 그날 내내 아빠를 '삼촌'이라고 불렀다.

엄마아빠의 이혼 이후 오랜 기간 동안 친아빠를 만나지 못했던 어린 아들은 엄마(고유정)가 곧 재혼을 하면서 계부를 친부로 알게 되었다.

그는 아들의 정서를 위해 당분간 삼촌이라 부르도록 하자는 고유정의 제안에 흔쾌히 응했을 것이다.

그는 아들을 보는 것만으로도 족했을 것이기에.

적당한 때가 되면 친아빠라는 것을 알려야겠다고 희망찬 계획을 세웠겠지.

아들이 좋아하던 카레를 아들과 눈을 마주치며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미소를 띠며 먹었을 것이다.

그 안에 자신을 무력하게 할 가루가 켜켜이 숨겨져 있는 것을 알지 못한 채.

그리고 그는 그날밤 무참히 살해되었다.


그가 죽기 직전까지 아들의 입에서 나오는 아빠란 소리를 들어보지 못하고 떠나갔다는 그 사실이 또 한 번 가슴을 저릿하게 한다.



고유정은 이혼과정에서 증오의 대상이 된 그에게 평생 아들을 보여주지 않고 엮이지 않도록 하겠다고 결심했었다. 그러나 자신의 결심이 그의 법적대응으로 인해 더 이상 지속될 수 없다는 사실에 주체 못 할 분노를 느꼈다.

주기적으로 면접교섭을 할 경우 계부를 친부로 알고 있는 아들에게 친아빠를 알려야 하는 상황이 생길 것이고 그로 인해 아들을 재혼남의 친자처럼 키우겠다는 자신의 계획이 무너질 수밖에 없다는 강한 위기감을 느꼈을 것이다.

그래서 결국 그를 제거하기로 하였다.

새로 이룬 가정을 완벽하게 하기 위해서 그 장애물을 흔적도 없이 없애버려야 한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인간의 한없는 어리석음에 할 말을 잃게 된다.

컴퓨터에서 Delet키를 누르는 것처럼, 한 생명이 이 지구상에서 그 누구도 의심할 수 없도록 흔적도 없이 소거된다는 것이 가능키나 한 것인가.


인간의 극한 분노감은 이성을 마비시키고, 결국 스스로 인간이기를 거부하게 하는 지경에 이르게 된다.


고유정은 재혼가정에서 자랐다.

그녀에 대해 사이코패스는 아니고 경계성 성격장애로 판단된다는 전문가의 진단을 보았다.

어릴 적 아버지로부터 어려움을 많이 겪었고 그로 인한 경계성 성격장애가 형성되었을 것이라는 내용이었다.

그녀도 재혼가정 속에서 성장하며 미처 풀지 못한 아픔과 치유받지 못한 상처들이 있었음이 분명해 보인다.

부모의 이혼과 재혼, 부모의 역할이 중요한 이유는 이것이다.

바로 세대를 세습하게 된다는 것.

고유정은 세습된 상처의 고리를 더 내면화하고 다지고 다져 더 악한 것으로 내재화시켰다.

그리고는 한 생명을 이 땅에서 무참히 사라지게 했고, 그리함으로 또 어린 한 생명에게 크나큰 상처를 입히게 되었다.


힘든 이혼가정에서 자란 모든 이들이 저렇게 되지 않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 와중에도 그 고통을 잘 극복하고 아름다운 가정을 이루어 잘 살아가는 이들도 있다.

그러나 한편으론 부모의 성숙하지 못했던 이혼으로 가슴 깊이 쓴뿌리가 박혀 평생 치유되지 못하고 아파하며 살아가는 이들도 있다.

부모의 이혼이 부모 자신만의 문제로 끝나는 것이 아님을 모든 부모들이 반드시 자각해야 한다.



고유정은 아들에 대한 친권을 상실했고 삼촌이 아들의 후견인이 되었다.

자신을 홍00으로 알고 외갓집에서 살아가던 아이는 강00으로 불리며 할머니 할아버지, 삼촌과 살아가고 있다.

지금은 왜 이런 상황이 일어나는지 그 아이는 정확하게 알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리 오래 지나지 않아 자신의 아버지에게 어떠한 일이 있었는지, 그러한 일이 어떻게 왜 일어났는지를 알게 될 것이다.

그리고 끝내...

그 누구도 짐작할 수 없는 충격과 고통을 마주하게 될 것이다.


제발... 아무런 죄 없는 그 아이에게 그 질기고 질긴 고통이 대물림되지 않기를...

그 아이의 주변에 그 깊은 상처와 아픔을 끝까지 함께 아파해 줄 이들이 있기를...

설령 그 아이가 참담한 고통에 흔들리고 심각하게 방황하게 될지라도 그 아이를 잡은 손을 놓지 않을 단 한 명의 어른이 꼭 있기를...

그것이 살아있는 자들의 예의이다.


비록 육신은 갈갈이 찢겨 이 땅에서 찾아볼 수 없었지만,

'후회 없이 사랑했노라, 행복의 꿈을 꾸겠다' 말했던 그 아비의 혼불은 영영히 아들의 주변을 맴돌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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