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의 자격 3

온전한 사랑

by 정현숙

남편은 말했다.


저도 억울합니다. 정말로요.

다른 남자와 외도하다 남편에게 발각되어 어쩔 줄 모르던 유부녀를 사랑해서 제가 구제해 준 거라고요.

아내가 전남편과 협의이혼하면서 자녀들은 전남편이 키우기로 했는데, 9살이던 딸이 날마다 엄마를 그리워하며 운다는 이야기를 듣고 친양자로 입양해서 친딸로 키우겠다고 결심까지 한 사람이 저라구요.


그러나 그의 친양자 입양신청은 "불허"되었다.

남자에게는 절도, 강도치상, 특수강간 등의 전과가 이미 있었다.

아내는 결혼 전부터 이런 사실을 알고 있있지만 딸의 친양자 입양신청에서 '서로의 상처를 보듬기로 한 이 상 캐묻기 싫어서 자세하게 물어보지는 않았습니다. 그렇지만 현재 열심히 생활하는 모습과 됨됨이를 보았을 때 백프로 신뢰할 수 있습니다'라고 진술하며 친양자 입양 허가를 요청하는 탄원서를 제출하였다.

십수 년 전 법원에서는 이미 그의 불길함을 예감하고 법적으로 친딸이 되는 것을 불허했다.



친양자 입양은 막을 수 있었으나 그의 패악한 범죄는 막을 수 없었다.

인간이라면 차마 저지를 수 없을 극악한 짓거리.

15살 의붓딸이 남학생과 썸을 타고 있다는 말을 듣고 화가 나 가위를 들고 위협하며 속옷까지 다 벗게 한 후 얼굴을 때린 것이 첫 시작이었다.

그것은 미약한 서막에 불과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엄마는 자신의 딸이 남자에게 강간, 유사강간을 당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러나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고 오히려 딸에게 아빠가 부른다 한 번만 도와달라며 피고와의 성관계를 종용하기도 하였다.


아내는 첫 결혼에서 외도를 하여 이 남자를 만났고 이 남자와 살면서도 다시 외도를 하여 그 일을 첫째 딸에게 들켰다. 엄마의 비밀을 지켜준 딸은 그 일로 더욱 치욕스러운 일을 당할 수밖에 없었다.

모녀가 자신을 속인 것을 안 남자는 모녀를 둘 다 한꺼번불러들여 옷을 벗겼다.



엄마와 떨어져 고아원에서 산지 2년이 넘어가는 막내에게는 늘 그립고 보고픈 엄마였다.

심리검사를 하며 실시된 <아동용 문장완성검사>에서 아이의 슬픈 사랑이 한도를 초과하여 담겨있었다.


우리 엄마는... 착하고 예쁘다.
내가 좀 더 어렸다면... 엄마를 더 보고 싶어 했을 것이다.
내가 제일 걱정하는 것은... 엄마의 건강이다.
나에게 가장 좋았던 일은... 엄마, 언니와 노는 것이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사람은... 엄마와 언니이다.
내가 가장 싫어하는 사람은... 아빠이다.
우리 아빠는... 무섭다.
내가 가지고 있는 것 중에서 제일 아끼는 것은... 엄마와 같이 만든 인형이다.
나는 때때로... 엄마, 언니 생각을 자주 한다.
우리 엄마 아빠는... 이혼했으면 좋겠다.
내 소원이 마음대로 이루어진다면, 첫째 소원은 엄마 언니와 행복하게 살기
내가 만일 먼 외딴곳에 혼자 살게 된다면... 엄마, 언니... 와 제일 같이 살고 싶다.



마지막 재판날이다.

그가 출석하여 동일한 진술을 한다.

아이는 엄마가 키우면 안 된다고. 고아원에서 자라게 해야 한다고.

이혼하면 또 다른 남자 만날게 뻔하다고.


재판하는 내내 꾹 참았던 말을 마침내 내뱉어 버리고 말았다.


"피고,

지금 본인이 걱정하는 것은 본인이 의붓딸에게 한 행동을 당신 딸이 당할까 봐 걱정하는 겁니까?"


"네? 네네... 뭐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원고가 정신 차리고 다시는 피고 같은 남자를 만나지 않으면 되겠네요."


"네? 아네 네... 그렇죠뭐..."


그렇게 재판이 마무리되었다.

마음속에만 꼭꼭 담아두었던 말을 뱉어내고는 속이 시원할 줄 알았는데, 웬걸. 그날밤 좀처럼 잠이 오지 않아 오랜 시간을 뒤척였다.

이 부조화스러운 감정상태는 뭐지?

마침내 그 말을 입밖으로 내뱉음으로서 왠지 놈과 동등한 수준의 사람으로 전락해 버린 듯한 자괴감이었을까.

끝까지 여러모로 나를 이렇게 힘들게 하는구나 싶었다.


이제 판결을 해야 한다.

나쁜 엄마, 나쁜 아빠.


엄마와 언니를 그리워하는 딸...

엄마를 용서하였고 이제 엄마와 함께 동생을 잘 돌보겠다는 언니...


엄마가 많이 안정되었고 자녀를 양육함에 큰 문제가 없다고 조사보고서가 올라왔다.

그러나 보고서 저 구석의 한 문장-여전히 자신이 여성으로서 매력 있고 이성에게 사랑받을 수 있다고 여긴다-이 누군가 나의 폐포를 움켜잡은 듯 숨 막히게 했다.

일반적인 여성이라면 아주 긍정적인 평가를 받을 반응일 테지만 이 엄마에게는 간담이 서늘케 하는 말이다.


나는 어떤 결단을 하여야 하나...

이 여자는 이런 순전한 자녀의 사랑을 받을 자격이 있는 어미인가...

그런데 잘못은 엄마가 했는데, 왜 어린 딸이 엄마를 보지 못하는 벌을 받게 된 것일까. 긴긴 시간을...


오랜 숙고 끝에 아이의 벌을 멈추는 것으로 결단하였다.

아이는 아무 잘못이 없으므로.

아직 일어나지 않은 미래의 걱정으로 아이가 마땅히 누려야 할 현재의 행복을 박탈할 수 없다.


마지막 재판날 엄마에게 마음을 담아 신신당부했다.

두 번 다시 딸에게 똑같은 잘못을 반복하지 않기를 말이다.

다시는 남자를 만나지 않고 큰딸과 함께 둘째를 잘 키우겠다고 다짐하는 엄마의 두 눈을 바라보며 눈으로 속삭였다.


당신의 결핍을 아무 남자에게서 채우려고 하지 마세요.

당신의 아픔을 나쁜 남자를 통해 위로받으려고 하지 마세요.

당신이 자신의 전부인 당신의 딸을 꼭 지켜주세요.

당신의 아름다움을 온 눈에 담고서 당신을 바라보는 딸을 기억해 주세요..

당신에게 다시 부여된 엄마의 자격은 아이를 낳았기 때문에 당연히 주어진 것이 아니라, 아이가 당신을 엄마로 부르기를 너무나 간절히 원하기 때문에 다시 부여된 것임을 잊지마세요.


엄마로서, 아니 인간으로서 마땅히 살아가야 할 삶을 살아내는 그녀가 되기를 기도하며 주문을 선고한다.



원고와 피고는 이혼한다.
사건본인의 친권자 및 양육자로 원고를 지정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