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시끄러운 고독』
누군가가 쓴 책들이었다.
누군가가 교정을 보고, 읽고, 삽화를 넣고,
잇달아 인쇄에 들어가 제본되어 나온 책들일 것이다.
누군가가 가독성이 없다는 결정을 내리고, 검열하고,
쓰레기장으로 보낸 책들이었다.
그렇게 책들은 트럭에 실려 이곳에 왔을 것이다.
p.94
얼마 전 이사를 했다. 이사를 하지 않았으면 그대로 두었을 많은 것들이 중고마켓을 통해 나눔 처리되거나 폐기처분 되었다. 우연히 알게 된 중고 거래는 많은 생각들을 하게 해 준 일이었다. 내겐 필요하지 않은 것들이지만 어떤 이에겐 꼭 필요한 것들이 있었고, ‘설마 이런 것까지’ 싶은 것도 어떤 이에겐 간절하게 찾던 것일 수 있었다. 자원을 재활용한다는 차원에서 매우 바람직한 마케팅이라고 생각했다.
의외의 거래 종목이 책이었다고 한다면 매우 개인적인 판단일지도 모르겠다. 배움에 목말랐던 듯, 책 수집이 배움의 징표인 듯, 쌓이고 쌓인 책이 어마어마했다. 한 권 한 권 내게 소중하지 않은 책이 없었지만 너무 오래된 학습 교재나 소장 가치가 없는 소모성 서적들은 폐기처분하기로 했다. 오래되긴 했으나 공부방 하던 때의 쓸 만한 동화책과 그래도 누군가는 필요해 할 만한 책들은 중고마켓에 올렸다. 소중한 것에 값을 매긴다는 것이 마음 아팠다.
너무 오래 되어 버릴까 했던 전기밥솥은 5분 만에 새 주인이 나타났는데 도서는 일주일이 지나도 선택 받지 못하고 있었다. 결국 이삿날이 임박해져 ‘무료 나눔’으로 전환하고서야 동화책이 새 주인을 만나서 갔고, 일반도서는 폐기물 쓰레기와 함께 버려졌다.
어떤 책은 나와 함께 새 집으로 옮겨졌고, 어떤 책은 새 주인에게 넘어갔으며, 또 어떤 책은 폐기 처리된 것이다. 그 기준은 오로지 내게 있었다. 그렇게 누군가가 쓴 책들이 누군가의 교정을 받고, 누군가에 의해 인쇄가 되어 내 손에 오게 되었다가, 나에게 의해 읽혀지고, 나에게 의해 밑줄도 그어지고, 나의 사고와 지식들에 영향을 주고, 나에게 의해 버려졌다.
『너무 시끄러운 고독』의 주인공 한탸는 삼십오 년간 지하실에서 책과 폐지를 처리하는 일을 해 온 압축공이다. ‘너무 시끄러운’ 현실과 환경을 초월하는 한탸의 ‘고독’의 수준이 나를 반성케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