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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피 3부작] 희망편_ chapter 1.

말 대신 돼지를 삼켰더니, 맛있다.

by 김대리

희망편_ chapter1. 말 대신 돼지를 삼켰더니, 맛있다.

나는 원래 조용한 애였다.
소심한 거랑 조용한 건 다르다지만, 우리 집에선 둘 다 별 소용 없었다.

왜냐고? 나 빼고 다 시끄러웠거든.

특히 우리 엄마.
성격이 화통하단 소리를 입에 달고 살았는데,
사실은 술통이었다.

엄마는 술을 좋아했고,
술은 사람을 좋아했고,
사람은 우리집을 좋아했다.
균형잡힌 삼각관계였다.

전세로 이사 갔을 땐 좀 달라지나 싶었다.
엄마는 그날 소주잔을 부딪치며 말했다.
“이제 우리도 사람답게 산다~!”

나는 그 말을 들으며 생각했다.
아, 엄마가 그동안 사람이 아닌 술통이었다는 걸 드디어 자백하는구나.

사람이 너무 많았다.
엄마가 부른 손님보다, 손님이 데려온 손님의 기가 더 셌다.
나는 주방에서 술잔보다 많은 소주병을 치우며 생각했다.

소주병 몰래 모아두었다가 내가 팔아먹어야지.
이것마저 아빠한테 빼앗기면 안되니까.

아빠는 조용한 하이에나 같았다.

평소엔 엄마 옆에 앉아서 가만히 술만 드시는 것 같아도, 뭔가 손님들을 꿰뚫어보는 것 같았다.

사귀어두면 돈이 될 사람, 아닌 사람을 잘 알아봤다. 생존본능인 건가.

그래서 그런지,
돈이 될 것 같은 사람들만 모이면
아빠는 그 술자리에서 주인공이 된 듯 즐겼지만
나는 그 모습이 광대같아서 웃느라 정신없었다.

그런 내 모습을 보면 아빠는 더 신나하셨다.

오빠란 놈은 밖에 나가 노느라 집에 들어오질 않았다
천만다행이었다. 집에 있으면 더 골치아프니까.
그래도 애는 착한지, 사고치고 오는 법은 없었다.

어느 날인가,
손님들 초대하기 전에 엄마가 술안주로 기가막힌 돼지고기 김치찜을 손수하셨다.

좀 높은 분인지, 돈이 있는 분인지,
두 분이서 마중까지 나갔다.


이때다!!

나는 돼지고기만 쏙쏙 집어먹었다.
오 야들야들 멈출 수 없는 맛이었다.

평소에 술 좀 그만 마시고,
사람들 좀 그만 데려오란 말을 무시한
엄마 아빠의 업보였다.

내가 이 집의 수호자란 생각이 문득 들었다.

어느정도 다 골라 먹고 방안으로 빨리 들어왔고,
바로 현관문 소리와 왁자지껄한 소리가 들렸다.

그렇게 안주가 나갔는데, 엄마가 작게 놀라더니,
보쌈을 시키셨다.




그렇게,
말 대신 돼지를 삼켰더니, 맛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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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의도는 절망편 이후 희망편을 보시도록 하려고 한권에 번갈아가면서 글을 올리려고 했는데, 헷갈리실 것 같아서 아예 분리합니다.

부족한 글 보러 오시는 분들께
혼선을 드려 대단히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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