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려한 석양이 점차 묵직한 어둠으로
바뀌어가는 순간이었어요.
개는 터덜터덜 외양간으로
돌아가고 있었습니다.
‘어이! 거기! 개!!’
나지막이 돼지가 개를 불렀습니다.
“이야~ 역시 개는 귀가 좋아.
요렇게 찰떡같이 알아듣고 말이야.
내가 특별히 우리 친구한테
부탁할 게 있는데 잠깐만 와 봐."
특별히?
개는 귀를 쫑긋 대며 다가갔습니다.
“저기 말이야, 내가 이건 진짜 너를 믿고
특별히 부탁하는 건데,
너 저기 주인아줌마 집에 가서
당근이랑 감자 좀 몇 개 갖다 줘라.
오늘 저기 말이 사 갖고 오는 거 봤거든.”
“네? 그렇지만 오늘분 모이는 이미 다 드렸는데요…
제가 아무거나 갖고 오면 안 될 것 같은데…”
“아무거나가 아니지!
어차피 그거 내일 나한테 줄 거니까,
모이 갖다 주는 거랑 같은 일이지.
아 왜 그, 나는 꿀꿀이죽으로
그렇게 끓여주는 게 입에 안 맞아.
좀 이렇게 프뤠쉬한 거, 아삭아삭한 거,
그런 거 가끔 먹고 싶거든.
돼지라고 맨날 돼지취급하고 말이야,
야, 계속 이렇게 입맛이 없으면
내가 살이 빠져버린다고.
그럼 그거 아주 서로 곤란해.
너는 책임감이 있는 개니까,
내가 무슨 말하는지 이해하지?”
흐음… 뭔가 조금 찜찜한 느낌이 있기도 했지만
돼지의 말은 꽤나 설득력이 있기도 했어요.
게다가, ‘책임감 있는 개’ 라니.
개는 역시 돼지의 믿음을 저버리고 싶지는 않았거든요.
하지만 어둑어둑한 아줌마네 창고에서
뭔가를 슬쩍 꺼내오는 건 긴장되는 일이었어요.
나쁜 일은 아니야, 마음을 다잡으면서도
왠지 모르게 발소리를 죽이고
조심조심 창고 문을 닫고 돌아서는 길에
개는 들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여보! 여기 있던 당근이랑 감자 못 봤어?
저녁에 쓰려고 챙겨뒀는데, 이거 어디 갔지?”
아아, 쓸데없이 귀는 왜 이렇게 밝아서
온갖 소리를 다 들어버리는 걸까요!
개는 후닥닥 돼지우리로 달려가
당근과 감자를 던져 넣었습니다.
“이야아, 역시 역시, 우리 똑똑이야!!
다음에 또 부탁할게~”
돼지의 칭찬도 듣는 둥 마는 둥,
개는 벌렁거리는 심장을 부여잡고
부리나케 외양간 구석 잠자리로 돌아갔습니다.
“개야, 왜 그러니? 왜 이렇게 우왕좌왕하는 거야?”
젖소 아줌마의 따뜻한 목소리에,
개는 그만 뿌에엥 눈물이 터졌어요.
오늘 하루 이리저리 실수하고, 미움받고,
급기야는 도둑질까지 하게 된 것 같은
서러움이 몰려왔으니까요.
더 잘하고 싶은데, 잘하려고 할수록
자꾸 실수를 하게 돼요.
고양이님은 남들의 칭찬 같은 거
신경도 안 쓴다고 하던데.
전 왜 이렇게 바보 같을까요?
역시 전 개라서 어쩔 수 없는 걸까요?"
개의 이야기를 들은 젖소 아줌마는
따뜻하게 이마를 핥아주었습니다.
”그랬구나, 그랬구나,
잘하고 싶어서 한 일인데 그렇게 됐구나.
그래도 칭찬받고 싶은 마음은 바보가 아니란다.
더 잘하고 싶고, 더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 왜 바보겠니.
그런 마음이 없다면
우리는 늘 제자리걸음일 뿐일 텐데.
네가 농장일을 이렇게 빨리 배운 것도,
모두와 친구가 될 수 있었던 것도,
그런 마음 덕분일 테지.”
하지만 개야,
너를 칭찬할 자격이 없는 칭찬을 조심해야 한단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는데,
동물원에서 춤추는 고래는 늘 행복하진 않거든.
너를 위한 칭찬인지,
너를 길들이기 위한 칭찬인지
잘 판단해야 해.
자격이 있는 칭찬만이,
정말 너를 행복하게 할 수 있단다.
아줌마의 이야기는 조금 어려웠지만,
한 가지 귀에 쏙 들어오는 구절이 있었어요.
자격이 있는 칭찬은 행복해!!
개는 세차게 꼬리를 흔들며
젖소 아줌마의 다리에 머리를 비비며 안겼어요.
”네네! 저는 아줌마한테 칭찬받으면 행복해질 것 같아요!"
젖소 아줌마는 금세 신이 난 개가 귀여워서 무무무무 웃었어요.
그리고는 포근히 개를 안고 말해주었습니다.
“우리 강아지, 스스로를 행복하게 하는 방법을 배워나가다니, 정말 멋지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