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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누 Nov 26. 2021

산에 오르는 이유

그품이 늘 그립다. 

엉덩이 하나 내려 놓을 많한 평평한 곳을 찾아 땀에 젖은 몸의 긴장을 풀어본다. 탁트인 전망과 세차게 부는 바람에 세상의 모든 근심이 사라진다. 차가운 김밥 한줄과 따뜻한 물 한잔이 그렇게 맛있고 좋을 수가 없다. 정상에서 바라본 도시는 산의 치맛자락에 쌓여 있는 것만 같았다. 3주 연속으로 혼자서 주말에 산에 오르고 있다. 많아야 일년에 서너번 산에 올랐던 나에게 커다란 변화가 일어났다. 친구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수단의 하나였던 등산이 이제는 그 자체로 즐거움이 되었다. 혼자서 무언가를 하려면 그 자체에서 진정한 재미와 의미를 찾아야만 한다. 나에게 등산은 오랜만에 다시 만나 더 가까워진 친구가 되었다. 


 주말 아침 또는 종종 평일에도 등산 복장을 갖추고 산을 찾는 분들을 만나게 된다. 보통 사람들과 다른 복장이 한눈에 들어왔다. 아침 일찍 산을 가시나 생각했다. 이렇게 추운날에도 산에 가시나 생각했다. 한가하신 분인가 생각했다. 등산은 한번 시작하면 중간에 바로 멈출 수 없는 활동이라 적어도 반나절 이상의 시간이 필요하다. 산을 오르는 내내 숨이 차고 힘이 든다. 그런 산에는 왜 오르는가?


혼자서 산을 오르면서 산의 참 매력에 빠져들고 있다. '산을 찾음'은 '도시를 떠남'과 동의어이다. 회사에서 해야하는 일들, 미래에 대한 생각들, 그런 세상의 근심을 잠시나마 잊는데 산을 오르는 일만한 것이 없다. 산을 오르기 시작하면 나무들을 보게 된다. 푸릇 푸릇, 울긋 불긋, 노랗게 물든 나무, 앙상한 가지만 남은 나무 그런 나무들을 볼 때마다 마음이 비워진다. 코속으로 들어오는 상쾌한 공기와 더불어 나무는 평안을 선물해 준다. 한걸음 한걸음 발을 내딛어 오를때마다 나의 숨에 집중한다. 숨이 점점 차오르고, 온 몸에서 땀이 배어나면 이미 눈앞의 돌 계단 외에는 아무런 생각이 나지 않는다. 그 자체로 평화롭다. 그렇게 오르다 보면 바람에 나뭇잎이 흔들리며 나뭇잎 피리 소리가 들려온다. 그 아래로 흐르는 물소리가 깔리면 온 몸이 다른 세상에 와 있음을 깨닫는다. 


 등산로 초입으로부터 30분에서 한 시간 정도 오르면 대부분 탁트인 능선에 다다를 수 있다. 골짜기에서 느껴보지 못한 세찬 바람이 불지만 아래로 펼쳐지는 풍경이 또 한번 나를 사로잡는다. 


  

                                            < 북한산 백운대에서 바라 본 풍경 >



 산의 허리가 드러나고, 발 아래로 내가 떠나온 도시가 펼쳐진다. 이쯤 되면 또 하나의 소리를 들을 수있다. 산에서만 들을 수 있는 '도시의 소리'다. 도시 내부에서는 들을 수 없는 도시의 소리가 있다는 걸 산에 오르고 알았다. "쏴~~~~아, 우~~~웅" 끊이지 않고 계속해서 들려온다. 그 소리는 귀 기울이지 않으면 느낄 수 없다. 계속해서 같은 소리가 마치 낮은 구름처럼 깔려있다. 미세먼지 가득한 하늘을 소리로 표현한다면 정확히 같은 소리가 날 것 같다. 언제나 저런 소리에 둘러쌓여 있었음을 비로소 깨닫는다.  


 온 몸으로 산과 도시를 느끼며 정상에 오르면 한 참을 그곳에 머문다. 혼자 등산을 가면서 달라진 것이 있다면 '산에 머무는 일'이다. 다른 사람들과 이야기를 하며 지나갔던 곳에서 이제는 한 참을 머문다. 차를 마시고, 간식을 먹고 음악을 듣는다. 산에서 먼 곳을 바라보며 음악을 듣다보면 온 몸에 소름이 돋을 때가 있다. "이렇게 아름다운 세상이라니....참으로 행복한 시간이구나." 지하철에서, 카페에서 듣던 음악이 완전히 다른 얼굴로 다가온다. 그렇게 바람을 맞으며 앉아서 땀이 식기를 기다린다. 마음에 바람과 풍경을 충분히 담은 후 산을 내려온다. 


 산을 내려오는 일은 절정을 지나 감정을 추스리고 다시 도시로 들어가는 과정이 된다. 짧은 여행을 마치고 일상이 기다리는 곳으로 돌아가는 일이다. 산을 내려가는 과정 중에 수 많은 계단을 만나고 돌을 만난다. 어느 돌을 밟을 지 순간 순간 집중한다. 그 과정에서 내려오는 고단함을 잊는다. 내려오는 길의 휴식은 아쉬움을 달래는 시간이다. 곧 다시 산에 올 수 있기를 기대하며 완전한 평지로 발을 내 딛는다. 


 산에 다녀와 집에서 따뜻한 물로 샤워를 하고나면 다시 충전된 내가된다. 다시 일주일을 살아갈 힘을 얻는다. 산은, 자연은 그런 존재였다. 늘 그리워 하면서도 선뜻 다가서지 못했던 그러나 언제나 나를 기다리고 있었던 부모의 품이었다. 말없이 나를 보듬어 주고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그래서 나는 늘 그 품이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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