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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누 Nov 08. 2022

나의 옆자리

서로 위로 받아야 산다. 

자켓의 카라가 무심하게 중간에서 뒤집어져 있었다. 손을 내밀어 반듯하게 정리를 해주고 싶었다. 고등학생인지 대학생인지 가늠이 되지 않는 여학생이 꽤 나 두꺼운 안경을 쓰고 헝크러진 머리를 무심하게 묶고서 옆에 앉아 있었다. 자리를 잡고 앉으면서 서로를 바라보는 눈길이 어색했다. 교회에 열심인 아버지와 그런 아버지에게 억지로 끌려나온 딸인듯 싶었다. 그렇게 예배 시간 앞자리의 두 사람에게 신경이 쓰이기 시작했다. 목사님의 설교를 들으면서 자꾸 눈길이 앞 자리 부녀에게 닿았다. 

 자식의 도리에 대한 이야기가 설교중에 나오자 카라가 뒤집어진 자켓을 입고 있는 아버지는 딸에게 말했다. 

"알겠지?"

짧고도 강력한 추궁이었다. 딸은 들은 체도 하지 않았다. 머쓱해진 아버지는 다시 목사님의 설교에 집중했다. 딸의 표정이 너무 무심하다 싶던 그때 특이한 행동이 눈에 들어왔다. 옆자리의 딸은 계속해서 자신의 엄지손가락 살갗을 뜯어내고 있었다. 아마도 오래된 버릇인 듯 싶었다. 이미 양손 엄지손가락은 뜯기다 만 피부가 이곳 저곳 어지러이 하얗고 붉은 속살을 드러내고 있었고, 군데 군데 빨갛게 피가 베어나오려 했다. 예배가 진행되는 내내 딸은 자신의 엄지 손가락을 뜯었다. 급기야 손가락 여기 저기서 피가 흘렀다. 그래도 딸은 멈추지 않았다. 아버지는 딸의 손가락에서 흐르는 피를 알지 못했고 딸은 아버지의 자켓 카라가 뒤집어 진것을 알지 못했다. 

 앞만 바라보느랴 옆이 보이지 않은 것일까? 그렇게 두 사람은 서로의 상태를 알아채지 못했다. 무심했고, 차가웠고, 멀었다. 무엇에 신경을 온통 집중하느라 가장 소중한 사람에게 한 줌의 관심을 주지 못하는 것일까? 경주마처럼 앞만 보도록 우리 눈과 마음에 가림막을 한것도 아닌데, 주위를 돌아보는 일이 점점 어려워진다. 세상이 빨리 변하고, 살기가 더 어려워지면서 마음의 생채기가 자꾸 생기고, 다 낫기도 전에 또 다른 상처가 생긴다. 

 우리는 서로를 돌아보면서 살아야 한다. 마음의 상처는 시간이 해결해 주기도 하지만 다른 사람의 따뜻한 마음이 닿을 때 가장 빨리 낫는다. 앞 자리의 아버지와 딸이 서로를 조금만 자세히 바라보았다면, 따뜻한 마음으로 따뜻한 손길로 자켓의 카라를 예쁘게 정리해주고, 딸의 손을 꼭 잡아주었더라면 그 어떤 훌륭한 목사님의 설교를 들었을 때보다 더 행복해지지 않았을까? 

우리의 옆자리에 있는 그 사람을 예쁜 꽃을 보듯 바라봐 주고, 따뜻하게 안아 줄 때 그 때 나의 마음도 어여쁘게 피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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