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저지 뉴왁 기차역

어학연수 시절

by Professor Sunny

내가 에세이를 시작하면서 소개글에 ‘한국과 미국을 오가며 기상천외한 일을 많이 겪었다’고 적었던 기억이 있다. 내가 겪은 많은 기상천외한 일들은, 주로 어학연수를 했던 그 6개월 동안 집중적으로 발생했다.


간단한 예를 들어보자면,

· 손에 들고 있던 쿠키를 먹으려고 입으로 가져가는 도중 저 멀리 공중에 날아가던 새의 똥이 내 쿠키 위로 정확히 안착했다거나

· 오래된 기차역에서 비 오는 날 우산 없이 서 있을 때 철로의 녹물이 정수리로 떨어져 한동안 그 주변머리가 다 빠졌다거나

· 남편과 얘기 나누고 있다가 한 발짝 뒷걸음질 쳤을 뿐인데 뒤에 있던 쓰레기통에 내 엉덩이가 끼면서 엉덩이로 쓰레기통 달고 몇 걸음 걸어야 했다거나.


이런 귀여운 사건 말고, 정말 특이한 일은 내가 노숙인 친구(?)를 만들었다는 것이다. 타국에 처음 도착해 이방인으로서 소극적으로 되는 건 당연하겠지만, 나는 특히 다른 사람보다 더 소심했었다. 아직 미국 사람과 함께 있는 게 불편한 시절이었다.


미국 뉴저지 뉴왁 (Newark)이라는 도시에는 기차역이 두 개 있는데 하나는 뉴저지 교통의 허브 ‘뉴왁 펜 스테이션’, 다른 하나는 뉴왁 타운 변두리에 있는 규모가 많이 작은 ‘뉴왁 브로드 스트릿 스테이션’이다. 나는 뉴왁에 있는 뉴저지 주립대학에서 어학연수를 했는데, 내가 더부살이하던 언니 집에서 갈 수 있는 역은 ‘뉴왁 브로드 스트릿 역’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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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 위험하다고 하는 게 무엇인지 체험하고 싶다면 ‘뉴왁’을 가보시라 추천하고 싶다, 특히 뉴왁 변두리에 있는 이 작은 역인 브로드 스트릿 역은 주변이 온통 폐허가 된 건물뿐이다. 특히 유리창들이 다 총알 자국으로 뚫려있고, 아니면 건물들이 철조망으로 예쁘지 않게 보호되고 있다. 그걸 견디고 조금 걸어가다 보면 노숙자 임시 쉼터가 있다. 학교로 가려면 이 노숙자 쉼터를 꼭 지나가야 했었는데, 하루는 내가 뭣 모르고, 한 여자 노숙인에게 1불을 주었던 게 인연이 되었는지, 그 여인은 그다음 날부터 아예 내가 내리는 기차역 앞에 서서 내가 기차에서 내리기만을 기다렸다. 냄새가 정말로 많이 나는 이불을 칭칭 두르고 나만 보면 당연히 돈을 달라고 손을 내밀었다. 돈을 받으면 미련 없이 쉼터 앞으로 돌아갔다.


그러던 어느 날 내가 아침부터 배탈이 났는지, 기차에서 내내 배가 너무 아팠었다. 내리자마자 만난 그 노숙인 친구는 얼른 돈을 받으려 손을 내밀려다가 내 안색이 너무 안 좋았던지, “Are you ok?” “Are you hurt or sick?”하면서 무지하게 걱정을 하기 시작했다. 나는 배가 아픈 그 와중에도 그녀의 친절이 참 좋았는데, 미국 초짜로서 느낀 감상평이라 하면- ‘이 나라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남의 아픔에 공감하고 남을 들여다보는 문화가 있구나’였다. 물론 일반화의 오류가 있겠지만, 이 노숙인 친구와의 일로 인해서 미국과 미국 사람에 대한 느낌이 많이 바뀐 건 사실이다.


그날은 내가 배가 너무 아파서 얼른 서둘러서 학교로 갔는데, 다음날에도 못다 마친 대화가 아쉬웠는지, 그녀는 기차역 앞에서 나를 기다리며 서있었다. “Are you ok?” “ You looked pale- 너 어제 진짜 창백했어” 하면서 걱정하는 그 모습에 나는 그날 그녀에게 평소보다 큰 금액인 10불을 주었다. 내 딴에는 마음의 표현이었다. 그녀는 그 돈을 얼른 받아 주머니에 넣고는, 계속해서 그녀의 할 말을 했다. “너 임신했어? 아니면 그냥 배탈이야?” 하면서 질문을 쏟아 내는데… 그 순간 내가 들었던 생각을 정리해보자면 이렇다. 내가 태어나고 26년 후에 미국에 가서, 들어보지도 못한 ‘뉴왁’이라는 지역에 떨어져서, 미국인 노숙자와 이런 얘기를 나눌 거라고 예상은 해 봤을까. 한꺼번에 들이닥친 이 노숙인 친구와의 인연은 정말… '생경함’이란 느낌이 무엇인지를 한 수 배우게 된 경험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미국 사람과 그렇게 긴 대화를 나눠 본 것도 생전 처음이고, 그런 데다가 이 관계는 정말 이상했다- 친구라고 하기도 뭐한.


나는 그렇게 근 3주를 그녀에게 붙잡혀 그녀의 질문 세례를 받고, 강제로 영어 스피킹 연습을 하고, 또 착실하게 돈도 냈다. 그 친구는 어느 날부터 어떤 예고도 없이 나타나지 않았는데, 나는 지금도 종종 그녀가 풍겼던 평범하지 않은 아우라가 떠오르며, 그 친구가 잘 살고 있을까 하는 생각도 종종 하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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