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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rofessor Sunny Oct 09. 2021

로드트립 하수의 미시간 여행

트레벌시티와 톨치레이크-Traverse City & Torch Lake

미국 내에서도 코비드가 심해지면서 사람이 붐비는 관광지보다는 조용하고 자연풍경을 즐길 수 있는 지역들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코비드에 갇혀 보낸 지난 1년과 더웠던 이번 여름이 그냥 가는 게 아쉬웠던 우리는, 8월 중순쯤 친하게 지내오던 동네 친구 식구들과 날짜를 맞춰 미시간주에 있는 큰 호숫가의 도시를 찾았다. 나와 남편은 그동안 여행에 큰 인연이 없어서, 이런 좋은 곳에서도 즐기는 법을 아직 배우지 못한 여행의 하수다. 이럴 때는 주변의 여행의 고수들에게 붙어서 한 수 배워볼 수 있겠다. 행동치료 분야에서도 늘 강조되는 내용 중 하나는, 새로운 행동을 배우는 가장 좋은 방법은 좋은 모델을 ‘모방’ 하는 것이라 했다. 사진도 잘 찍고, 여행도 즐겁게 즐길 줄 아는 이 친구와 나는 우리의 아이들을 놀게 해 준다는 명목으로 종종 함께 만나 점심을 먹곤 했는데, 어느 날 문득 이 친구는 나에게 함께 여행을 가보지 않겠냐고 제안했고, 나는 덥석 물었다.



이런 로드트립은 정말 우리 부부에게 낯설다. 우리는 도대체 뭐부터 준비해야 하는지를 몰라, 대강 가장 중요할 것 같아 보이는 순서대로 ‘내부 세차’, ‘비상식량 구매’에 열을 올렸다. 1박 2일인데 너무 오버인가 싶었지만, 반쯤 이사 가는 느낌으로 짐을 쌌다. 시카고에서 우리가 도착하기로 한 장소인 Sleeping Bear Dunes(모래 사구)까지는 5시간 반 정도가 걸린다. 여기에 친구 부부보다 먼저 도착한 우리는 호수를 볼 수 있는 입구가 아닌, 정말 모래 사구 한가운데로 들어서서 당황했다. 나는 태어나서 이런 큰 모래 언덕은 처음 봤다. 장관이 아닐 수 없는데, 온통 뙤약볕인 데다 걸어도 걸어도 끝이 없는 모래이다. 남편은 5분쯤 걷자 덥다며 윗옷을 벗어던졌고, 나는 모르는 사람처럼 그에서 한 발짝 떨어지고 싶었다. 하지만 그는 자유인이 되길 바랐다.


다행인 건, 우리가 도착한 그 사구의 앞에 작은 호수가 있다. 우리는 모래 언덕을 포기하고 입구로 돌아와 그 호수에 발을 담갔다. 물이 엄청 맑고 수심이 낮아서 물길로 한참을 걸어 들어가도 아이의 허리밖에 물이 차지 않는다. 호수라 그런지 살짝 민물의 비린내가 나기도 하지만, 이렇게 맑은 물에서 놀 기회가 많지 않은 아이들은 마냥 신이 났다. 모래도 참 결이 곱다. 별 놀 것도 없는데 물 안에서 아이들은 몇 시간을 논다.


배가 고픈 어른들이 먼저 저녁을 먹자 제안했고, 아이들은 가기 싫은 발걸음을 떼야했다.  우리는 바로 Traverse city로 40분 정도를 이동했다. 아이들 모두 차 안에서 곯아떨어졌다. 우리는 밥을 먹고, 호텔에 체크인을 했는데, 호숫가로 유명한 관광지인 ‘트레벌 시티’의 호텔들은 보통 호텔 바로 앞에 모래사장과 호수가 아름답게 펼쳐져 있다. 호수에서 아까와 같은 놀이를 또 이어갔다. 그런데 이곳은 특이하게 동물의 왕국이다. 새, 갈매기, 오리, 너 나 할 것 없이, 사람을 무서워하지도 않고 같이 물놀이를 한다. 이곳은 특히나 더 수심이 낮고 수온이 따듯했다. 아이들은 해가 어둑어둑해져서 더 이상 놀 수 없을 때까지 놀았다. 바닥에는 작은 조개와 고둥(?)이 있어서 아이들은 그걸 주워보겠다고 잘 보이지도 않는 그 밤 시간에 호수 바닥에 코를 박고 걸었다.


8월 중순이면 어느 곳이든 다 성수기인지라 우리도 이 호텔에 꽤 돈을 썼다. 그래도 위치며, 놀 것들이며 전반적으로 마음에 쏙 들었다. 문제는 다음날 아침 조식이었다. 우리 부부, 친구 부부는 생전 처음, 어디서 듣도 보도 못한 신선한 조식 차림에 웃음이 터졌다. 코비드로 인하여 각 방으로 그 전날 각자가 주문한 조식이 배달되었는데, ‘1988 응답하라’ 드라마에서 어디쯤엔 가에 나왔을 법한 ‘캔 오렌지 주스’와 ‘냉동 빵’이 호텔 방문 앞 문고리에 걸려 있었다.


이때, 가져간 비상식량이 제 가치를 해주었다. 아침부터 컵라면과 간이 전기밥솥에 한 밥, 과일들까지 알차게 소비하고, 우리는 대망의 Torch Lake로 한 시간여 정도를 다시 달렸다. 트레벌 시티는 이름부터가 이미 여행지인데 반해, 톨치 레이크라는 곳은 사실 이 여행을 계획하면서 처음으로 알게 된 도시다. 미시간 출신인 남편 회사 동료분이 ‘미시간은 톨치 레이크’라고 강추를 해주셨다고 해서 미시간 간 김에 둘러보자 하는 느낌으로 가볍게 출발했다.


이 도시에 대해 아는 정보가 많이 없이 떠난 우리 두 가정은, 결론적으로 이 톨치 레이크에 완전 반했다. 여행에서 돌아오는 길 우리 넷은, ‘내년에도 여기 또 오자’라고 만장일치로 합의에 도달했으니, 그 도시에 대해 여행자가 느낀 가치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겠다. 도착해서는 어디서 놀아야 할지 감이 오지 않아서, 이리저리 차로 이동하면서 입구를 찾았다. 그 정도로 이 여행지에 대한 정보가 없었다. 더욱이 우리를 헷갈리게 만든 것은 아주 허름한 어느 지점에 ‘public access’이라고 적힌 이정표였는데, 그 이정표는 너무나 작았고, 그 장소 자체도 너무 협소해서 차를 세우고 들어가면서도 우리는 정말 이곳이 맞나 하며 꽤나 실망을 했다. 호수의 입구부터 너무 좁고 (한 10미터도 되지 않았다) 다른 여행자라고는 연세가 지긋하게 드신 한 부부와 그들의 다 성장한 자녀가 끝이었다. 거기까지 달려간 우리는 그래도 포기하고 돌아올 수 없었던 지라, 그냥 물로 들어갔다. 와~ 세상에. 그런데 여기가 정말 숨겨진 보석이었다. 사람이 한 명도 없기에 물은 깨끗하고, 걸어도 걸어도 끝이 없이 낮고 잔잔한 수심, 발에 치이는 큰 고둥들. 아이들뿐 아니라 어른들 모두 또 여기서 고둥 잡기에 혈안이 되어서 열심히 잡아 보았다.


나중에 든 생각인데, 과장을 조금 보태, 아담과 하와의 에덴동산 느낌이 살짝 났다고 할까. 자연이 깨끗하게, 사람의 손 닿지 않은 형태로 존재했고, 우리가 그 그림 같은 정적인 장면으로 걸어 들어간 착각이 들었다. 시간과 세월이 가늠이 안 되는 그 이국적이면서도, 그림책 어디선가 한번 봤을 거 같은 장면에, 우리를 배치해 보았다. 처음에는 어색했던 우리는 여기가 내 집인가 할 정도로 잘 놀다가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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