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면서 예상 못했던 사건들이 터지면서 새롭게 배워 자주 쓰게 되는 단어들이 있는데, 우리가 그 단어를 이전에 써오지 않았던 이유는 아마도 (1) 평소에는 사용할 만한 적절한 일상에서의 상황이 없거나, (2) 특정 단어로 특별하게 지칭해야 할 상황이 흔하게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예를 들어, 코비드가 전 세계에 퍼지면서 나는 ‘팬데믹’(Pandemic)이라는 단어를 처음 들어봤다. 팬데믹과 함께 미국에서도 잘 안 쓰는 “Quarantining”(한국말로는 자가격리)라는 영단어를 처음 배우고 계속해서 사용 중이다. 또, 몇 년 전 한국 뉴스를 보다가 ‘비선’(실세)라는 단어를 쓰는 것을 처음 봤다. 아마 한자어의 조합이라서 쓸 일이 없었을 수도 있겠다. 국어 공부를 꽤 했다는, 법학을 전공하고 현재는 공무원인 내 동생은 내가 쓴 에세이에서 ‘기실’이라는 단어를 난생처음 봤다고 했다.
나는 영유아 특수교육을 전공하면서 아이가 어릴 때 생태학적(Ecological Systems Theory)으로 접근하는 것이 얼마나 효과적인지를 봐 왔다. 이 생태학 이론은 이제 꽤 유명하고 오래된 접근법이라, ‘너무 식상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나는 실전에서 이 생태학적 이론만큼 한 아이의 삶과 발달에 중심을 잘 맞춰주는 이론을 찾지 못했다.
어찌 됐던, 이 이론에 의하면 한 아이의 발달에 가장 가까운 사람과 상황, 물체들이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고 (가족, 친구, 이웃, 조부모), 또 아이의 인종, 사용하는 언어, 가정의 문화 같은 눈에 보이지 않는 문화 요인들이 간접적으로 아이의 삶과 발달에 영향을 미치며, 더 나아가 가정의 소득 상태, 주양육자의 교육 수준과 정신 상태, 나라가 가지고 있는 문화나 법 개념, 모든 것들이 아이를 둘러싸고 영향을 미친다고 했다. 이 이론의 마지막 요인이자 화룡점정은 (이 부분이 내가 계속 꽂혀서 생각하고 있는 부분이다), ‘시간의 흐름’이다. 시간은 한 아이의 생태학 범주 안에 있는 이런 문화의 요인들이 이 아이의 발달에 미치는 영향이 지속성을 갖도록 끌어가고, 시간이 흘러서 생겨나고 없어지는 문화 (예를 들면 법의 변화, 문화의 변화, 생성, 퇴화) 들을 아이의 생태학적 범주 포함시켰다가 빼기도 하며 한 사람의 발달에 지속적인 영향을 준다.
(예전 지도교수와 쓴 챕터에서 그림을 가지고 와봤다. 여기서 'Chrono'가 시간의 흐름이다)
우리가 흔히 이야기하는 시간이 언어의 발달에 주는 쉬운 일례는 아마도 아이들의 ‘줄임말’ 일 것이다. 시간이 흘러감에 따라 특정한 시대를 사는 10대 애들이 줄여서 쓰는 그런- 30-40대는 절대 못 알아 들어서 우매한 느낌을 주는- 그들만의 문화의 언어가 생겨나고 없어지고, 언어가 특정한 시간과 합쳐져서 만들어내는 문화의 한 형태가 되겠다. 그럼에도 30-40대 이상의 사람이 그 언어를 모른 채로도 자신들만의 문화 범주 안에서 잘 살 수 있는 이유는, 앞서 말한 대로 그런 10대의 신조어를 30-40대가 평소 생활에서 사용할 필요가 없으며, 10대 문화의 소속감이 크게 필요하지 않기 때문일 수도 있겠다.
시간이 흘러간다는 것은 한 어린이가 성장해서, 어른이 되고, 노화가 진행되는 것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 아주 중요한 문제이다. 시간이 계속 흘러온 역사 속에 우리는 이나라 저나라에서 큰 전쟁을 하는 것을 보았고, 지금은 우리 모두가 같이 팬데믹의 문화 속에 함께 서 있으며, 이 문화 속에서 같이 시간을 보내며 견디고 있다. 나는 다 큰 어른이라 언어 습득이 중요한 나이는 아니지만, 이런 글로벌한 굵직굵직한 (Global events or phenomenon) 사건들의 소비자가 되어서, 꼭 배워야 할 현 문화의 단어들을 잘 습득해서 사용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