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기말 학점을 대학 시스템에 입력해야 하는 데드라인이다. 우리 학교의 시스템은 한 클래스에 학생이 백 명이든 열 명이든지 상관없이 학생 한 명 한 명의 이름 옆에 점수를 써야 한다. 백 명의 학생이 전부 A를 받았더라도 백 번의 A를 입력해야 하는 시스템이다.
이 학교에서 첫 학기를 끝내며 점수를 입력할 때부터 뭐 이렇게 비효율적인 세팅이 있나 생각했었다. 선생님이 되고자 공부하는 교육대학 학생들은 어떤 수업에서건 B 이하의 점수를 받으면 나중에 교사자격증을 받는 주정부 시험을 치를 수 없기 때문에 학생들 모두 점수에 예민하고, 그래서 보통은 거의 A 학점을 받고 학기를 마친다. 대부분의 미국 대학은 상대 평가로 학점을 주지 않기 때문에 한 클래스에서 백 명의 모든 학생이 본인의 성과에 따라 A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출처: 학교 홈페이지
이번 학기에 가르친 두 수업을 통틀어 70여 명의 학생을 만났다. 아침에 앉아서 점수를 학생당 하나씩 입력하는데 한 시간이 넘게 걸렸다. 나는 올해도 책상에 앉아 ‘여전히 이 시스템은 비효율적이네’라는 생각을 했지만, 거기에 더해 이번 학기는 유독 나를 정신적으로 바쁘게 한 친구들이 많아서 그런지 한 명 한 명 이름을 보면서 느낌이 남달랐다. 마음이 무겁기도, 기쁘기도 했다. 그래서 그 한 시간 동안 깊은 생각에 빠져있다가 나왔다.
코로나에 걸렸다가 회복된 학생, 두 명의 임산부와 학기 중 출산, 나에게 ‘외국인인 네가 뭘 알아’ 자세로 일관한 학생, 학기 중 멕시코에 있는 삼촌이 실종됐다며 갑자기 멕시코로 떠나 연락이 두절된 학생, 코로나 때문에 우울증이 심해 학업을 이어갈 수 있을지 모르겠다는 학생, 수업에 계속 안 나오더니 어제서야 자신이 큰 교통사고를 당해 중환자실에 두 달간 있었다고 연락하는 학생, 첫 수업 날 자신은 Young and Rich가 되고 싶은데 이젠 틀렸다며 그래서 인생이 슬프다고 말한 학생- 가지각색의 학생을 만났다.
이렇게 만나는 사람들의 정서상태, 나를 대하는 자세와 행동의 스펙트럼이 광범위해지면 나는 그것에 적절한 대응 방법을 찾아야 하는 책임자로서, 내 정신상태까지 잘 챙겨보기란 여간 힘든 게 아니다.
그래도 점수를 입력하자마자 두 학생에게 바로 이메일이 왔다. 이번 학기 고마웠다고. 이제부터 겨울 방학이다. 겨울 방학은 약 한 달간 동안 주어진다. 방학은 내가 논문들을 집중해서 쓸 수 있는 시간이다. 일 년 중 가장 생산적인 시간으로 들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