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과일 중에서도 복숭아를 참 좋아한다. 복숭아가 좋은 점에 대해 생각해보면, 우선 그 특유의 향이 좋고, 과즙이 줄줄 흐르는 그 ‘풍부함’이 좋다.
내가 복숭아를 좋아하기 시작한 날을 정확히 기억한다.
내가 어릴 때는 용달차로 다니는 과일장사, 채소장사, 두부장사 이런 것들이 많았다. 우리 동네에 자주 오던 아저씨는 파란 용달에 온갖 채소며, 과일, 두부 포함 해산물도 가져와서 팔았다.
아빠가 올해 복숭아 농사를 아주 잘 지었다며 보내준 사진!
복숭아가 나오던 시즌에는, 그 용달에도 백도 (White Peach)가 있었는데 그 하나의 가격이 (약 30년쯤 전임에도 불구) 무려 3천 원 정도였다. 다른 싸고 맛있는 과일도 많은데, 이 복숭아 하나를 굳이 3천 원이나 주고 사 먹을 이유가 별로 없다.
나의 두 자매가 집에 없고 나 혼자만 집에 있던 어느 날, 용달차가 우리 동네에 들어섰고, 엄마는 나를 데리고 나가서 아저씨에게 백도 하나를 손으로 콕 집으며 얼마냐고 물었다. 아저씨는 3천 원이라고 했고, 엄마는 잠시 고민하더니, 나를 보고는 ‘너 복숭아 좋아하지- 언니 동생 모르게 하나 사줄 테니까 너만 먹어’ 하고 나를 ‘특별한’ 자녀로 대해주었다. 언니 동생도 이렇게 나는 모르는 본인만 특별해지는 시간이 종종 있었을 거라 생각한다.
나는 그 이전에는 내가 복숭아를 좋아하는지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자그마치 3천 원에 달하는 그 빅사이즈의 복숭아를 받아서 먹는데, 어린 나는 그걸 다 먹어야 한다는 책임감에 꽤 부담이 되었다. 나는 엄마가 나를 생각해준 그 순간이 고마워서, 최대한 밝은 표정으로 엄마에게 ‘나는 복숭아를 참~ 좋아해’ 하는 표정을 먹는 내내 지었다.
그러다 보니, 진짜 복숭아가 좋아졌다. 이제는 복숭아가 비싸지도 않고, 그냥 흔한 과일 중 하나인데, 워낙 사람 손만 닿아도 잘 뭉그러지는 예민한 과일이다 보니, 아직도 그 도도한 느낌이 좋다. 복숭아를 먹던 날 수많은 날 중의 어느 하루는 그 향기만 맡아도 괜스레 내가 특별하게 느껴지고, 그러다가 엄마가 생각나고, 한국의 가족이 그리워지는 찰나의 순간이 찾아온다.
"도너츠 복숭아'라는 종인데, 언니가 유학시절에 자주 먹었던 것 같다. 그러고 보니 언니도 복숭아를 좋아하는 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