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Professor Sunny Sep 08. 2021

GRE시험 준비

유학생활 이야기

미국 내에서 대학을 나오지 않고, 나처럼 외국인이 미국 대학원 진학을 원하는 경우에는 GRE와 TOFLE시험 점수를 내야 한다. 이 두 시험은 정말 성질이 다른 영어 테스트다. 나는 GRE 학원은 압구정 박정어학원 몇 달, 토플은 신촌 박정어학원과 신촌 파고다 어학원 (이 부분이 정확히는 기억 안 나지만) 한 달을 다녔다. 

 

학원에도 굉장히 색깔이 다른 선생님들이 많았는데, 그분들 중에서도 미국 유학하신 분들은 미국 유학 중 재미난 이야기, ‘시험’을 치는 데에 능통하신 분들은 시험 치는 잘 기술,  그리고 본인의 부모가 짐이라고 했던 어떤 선생님은 그 부모에 대한 험담을 하는 시간을 갖는 분도 계셨다. 두리번대기를 워낙 좋아하는 나는, 학원에서도 시험공부 자체보다, 선생님들의 다른 스타일들을 보는 게 신기했다. 또 학원에서 나와 같은 목적으로 공부를 하는 친구(?)들에게도 찐한 동질감이 들고 좋았다.  


GRE 공부 시절은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나는 부분이 많다. GRE는 크게 두 분야; 영어와 수학시험을 봐야 한다. 영단어의 조합 (반대말, 의미 파악, 비슷한 말 위주로 짝 맞추기)과 던져진 주제에 영작하기, 그리고 한국의 중 3 수준이라고 말하는 수학시험을 준비해서 시험을 치른다. 


그때는 한국에서 이 시험을 많이들 베끼고, 후기를 공유하고 그런 게 많아서 페널티 받았다고 했나… 뭐 어떤 이유에서 한국에서 컴퓨터로 보는 시험을 못 보고, 일본으로 GRE 시험 투어를 갔다. 일본 투어 가는 재미난 이야기는 나중을 위해 아껴놔야지.

 

여튼, 이 GRE 영단어는, 이 어학원들 뒷골목에 인쇄소에서 ‘한국 GRE’라고 하는 판권이 없는, 이전의 GRE 시험에 나왔던 단어 조합들을 모아놓은  꽤 두꺼운 책을 사서 공부할 수 있다. 이 책의 폰트 크기는 정말 말도 안 되게 작은데, 단어들의 뜻과 시험에 나왔던 그런 조합들이 알파벳순으로 정리되어있다. 이거 만든 사람, 정말 대단하긴 하다.  

나는 그것을 받아 들고, 학원 수업을 한 달여 정도 듣다가, 수업만 들어서는 절대 안 늘겠다는 ‘쓸데없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학원을 잘 다니면, 그 달 말쯤 도는 시험 후기들이 완성되는데, 선생님들은 그 후기를 잘 정리해서 공유해준다. 그것만 잘 외워도 사실, 보통은 미국 대학에 입학할 수 있는 정도의 최소 점수는 나온다고 들었다.  


GRE 공부를 시작할 즈음 나는 어린이집을 정리하고 백수였는데, 나는 너무나 무식하게도 그 책을 들고 나의 방으로 들어가 거의 한 달 반을 칩거했다. 나는 방 밖으로 나가지도, 밥을 잘 먹지도, 자지도 않았다.  한국 GRE 책을 처음부터 끝까지 통째로 외우기 시작했다. 수학 문제도 틈틈이 풀었다. 후에 나는 이 어마어마한 오타쿠 짓에 두 가지 의미를 부여했는데 (1) 인생을 통틀어 가장 집중했던 시간이었고, (2) 인생을 통틀어 가장 쓸데없는 일에 에너지를 쏟아붓고 건강을 잃게 해 준 사건으로 정의한다. 


건강을 잃은 일화를 이야기하자면, 나는 한국 GRE를 통째로 외워버린 이 사건으로 인해 각막을 잃었다. 잠도 자지 않고 먹지도 않고, 해를 보지 않았던 근 두 달은 안구건조증에 이어, 탈각막을 만들어냈고, 결국 나는 한쪽 눈이 갑자기 보이지 않는 어처구니없는 시간이 오자, 한 눈을 감고 운전을 하여 안과병원으로 달려가게 된다.  


그 의사 선생님도 그런 일은 흔하지 않았는지, 막 인터넷을 찾아서 공부를 하시다가 밑에 달랑거리는 각막을 위로 끌어올려 전기로 지지는 긴급수술을 해주셨다. 그 수술 이후 신기하게도 눈이 다시 보였다. 나는 한 며칠을 그쪽 눈에 안대를 하고 살았는데, 그 수술 직후에도 한쪽 눈을 가린 채 당당히 혼자서 운전을 해서 집으로 돌아왔다. 나는 그 수술 직후에는 그 경험이 너무 어처구니가 없으면서도 나 스스로가 무언가를 열심히 해서 얻은 훈장이구나 하고 뿌듯해했다.


하! 그렇지만 사람에게 눈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간과했다. 수술에서 회복되어가면서 눈의 표면이 울퉁불퉁해졌다. 눈을 떴다 감았다 할 때마다 눈알에 모래알이 들어있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이 부작용은 내가 평생 짊어질 멍에가 되었는데, 15년 즈음 지나 돌아보니 ‘돌아이 짓은 함부로 할 게 아니다’라는 결론만 남는다.  


여튼 그렇게 나는 이 GRE 시험을 무지 잘 봤다. 쓸데없는 오기를 너무 부렸다. 본디 이런 시험이란 커트라인 점수만 맞으면 되는데.. 아무리 점수가 높아 봤자 인데, 왜 그렇게 잘하고 싶었는지. 나는 대학원에 바로 진학하지 않고, 어학연수부터 하는 계획이었지만, 그래도 나는 GRE 점수를 월등히 만들어놓고 미국으로 출국할 수 있었다.  

이전 10화 유학을 결정하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