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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rofessor Sunny Sep 08. 2021

GRE시험 준비

유학생활 이야기

미국 내에서 대학을 나오지 않고, 나처럼 외국인이 미국 대학원 진학을 원하는 경우에는 GRE와 TOFLE시험 점수를 내야 한다. 이 두 시험은 정말 성질이 다른 영어 테스트다. 나는 GRE 학원은 압구정 박정어학원 몇 달, 토플은 신촌 박정어학원과 신촌 파고다 어학원 (이 부분이 정확히는 기억 안 나지만) 한 달을 다녔다. 

 

학원에도 굉장히 색깔이 다른 선생님들이 많았는데, 그분들 중에서도 미국 유학하신 분들은 미국 유학 중 재미난 이야기, ‘시험’을 치는 데에 능통하신 분들은 시험 치는 잘 기술,  그리고 본인의 부모가 짐이라고 했던 어떤 선생님은 그 부모에 대한 험담을 하는 시간을 갖는 분도 계셨다. 두리번대기를 워낙 좋아하는 나는, 학원에서도 시험공부 자체보다, 선생님들의 다른 스타일들을 보는 게 신기했다. 또 학원에서 나와 같은 목적으로 공부를 하는 친구(?)들에게도 찐한 동질감이 들고 좋았다.  


GRE 공부 시절은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나는 부분이 많다. GRE는 크게 두 분야; 영어와 수학시험을 봐야 한다. 영단어의 조합 (반대말, 의미 파악, 비슷한 말 위주로 짝 맞추기)과 던져진 주제에 영작하기, 그리고 한국의 중 3 수준이라고 말하는 수학시험을 준비해서 시험을 치른다. 


그때는 한국에서 이 시험을 많이들 베끼고, 후기를 공유하고 그런 게 많아서 페널티 받았다고 했나… 뭐 어떤 이유에서 한국에서 컴퓨터로 보는 시험을 못 보고, 일본으로 GRE 시험 투어를 갔다. 일본 투어 가는 재미난 이야기는 나중을 위해 아껴놔야지.

 

여튼, 이 GRE 영단어는, 이 어학원들 뒷골목에 인쇄소에서 ‘한국 GRE’라고 하는 판권이 없는, 이전의 GRE 시험에 나왔던 단어 조합들을 모아놓은  꽤 두꺼운 책을 사서 공부할 수 있다. 이 책의 폰트 크기는 정말 말도 안 되게 작은데, 단어들의 뜻과 시험에 나왔던 그런 조합들이 알파벳순으로 정리되어있다. 이거 만든 사람, 정말 대단하긴 하다.  

나는 그것을 받아 들고, 학원 수업을 한 달여 정도 듣다가, 수업만 들어서는 절대 안 늘겠다는 ‘쓸데없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학원을 잘 다니면, 그 달 말쯤 도는 시험 후기들이 완성되는데, 선생님들은 그 후기를 잘 정리해서 공유해준다. 그것만 잘 외워도 사실, 보통은 미국 대학에 입학할 수 있는 정도의 최소 점수는 나온다고 들었다.  


GRE 공부를 시작할 즈음 나는 어린이집을 정리하고 백수였는데, 나는 너무나 무식하게도 그 책을 들고 나의 방으로 들어가 거의 한 달 반을 칩거했다. 나는 방 밖으로 나가지도, 밥을 잘 먹지도, 자지도 않았다.  한국 GRE 책을 처음부터 끝까지 통째로 외우기 시작했다. 수학 문제도 틈틈이 풀었다. 후에 나는 이 어마어마한 오타쿠 짓에 두 가지 의미를 부여했는데 (1) 인생을 통틀어 가장 집중했던 시간이었고, (2) 인생을 통틀어 가장 쓸데없는 일에 에너지를 쏟아붓고 건강을 잃게 해 준 사건으로 정의한다. 


건강을 잃은 일화를 이야기하자면, 나는 한국 GRE를 통째로 외워버린 이 사건으로 인해 각막을 잃었다. 잠도 자지 않고 먹지도 않고, 해를 보지 않았던 근 두 달은 안구건조증에 이어, 탈각막을 만들어냈고, 결국 나는 한쪽 눈이 갑자기 보이지 않는 어처구니없는 시간이 오자, 한 눈을 감고 운전을 하여 안과병원으로 달려가게 된다.  


그 의사 선생님도 그런 일은 흔하지 않았는지, 막 인터넷을 찾아서 공부를 하시다가 밑에 달랑거리는 각막을 위로 끌어올려 전기로 지지는 긴급수술을 해주셨다. 그 수술 이후 신기하게도 눈이 다시 보였다. 나는 한 며칠을 그쪽 눈에 안대를 하고 살았는데, 그 수술 직후에도 한쪽 눈을 가린 채 당당히 혼자서 운전을 해서 집으로 돌아왔다. 나는 그 수술 직후에는 그 경험이 너무 어처구니가 없으면서도 나 스스로가 무언가를 열심히 해서 얻은 훈장이구나 하고 뿌듯해했다.


하! 그렇지만 사람에게 눈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간과했다. 수술에서 회복되어가면서 눈의 표면이 울퉁불퉁해졌다. 눈을 떴다 감았다 할 때마다 눈알에 모래알이 들어있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이 부작용은 내가 평생 짊어질 멍에가 되었는데, 15년 즈음 지나 돌아보니 ‘돌아이 짓은 함부로 할 게 아니다’라는 결론만 남는다.  


여튼 그렇게 나는 이 GRE 시험을 무지 잘 봤다. 쓸데없는 오기를 너무 부렸다. 본디 이런 시험이란 커트라인 점수만 맞으면 되는데.. 아무리 점수가 높아 봤자 인데, 왜 그렇게 잘하고 싶었는지. 나는 대학원에 바로 진학하지 않고, 어학연수부터 하는 계획이었지만, 그래도 나는 GRE 점수를 월등히 만들어놓고 미국으로 출국할 수 있었다.  

Professor Sunny 소속 미국주립대학교 직업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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