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Professor Sunny Sep 08. 2021

유학을 결정하다

유학생활 이야기

삶에서 중요한 결정이 어떤 큰 결심 없이도 이루어지곤 한다. 


나는 그 당시 한국에서 어린이집 교사로 2년째 일하고 있었다.  직업에 큰 불만은 없었다.  6세 반의 20명의 아이들을 담당하고 있었는데, 유독 몇몇 아이들과 연대가 좋았다. 동료 선생님들과도 또래 친구처럼 금방 친해져서 퇴근 후에도 저녁도 같이 먹고, 심지어 휴가도 같이 가기도 하고 꽤나 정겹고 따듯한 작업환경이었다.  

 

언니는 일찍이 결혼을 하고 형부와 미국으로 갔는데,  언니의 유학은 그냥 ‘언니가 유학을 갔다’라고 인식만 했었지, 크게 그게 무슨 의미일지, 유학생활이 어떨지에 대한 생각을 해본 적도, 어떤 관심도 없었다. 그맘때쯤 나는… 아마도 다른 데에 정신이 팔려 있었던 거 같다. 그래… 잘생긴 첫사랑과의 연애에 만남과 헤어짐을 반복하며, 열정적인 싸움 끝에 파국으로 치닫고 있었다.  그 젊고 자신감이 넘치던 시절의 나는 그 사람에게 꽤나 못되게 대했다. 최선을 다해서 그 사람과 나의 관계를 계속적으로 서로의 바닥을 보는 상황으로 몰아갔다. 내 기억에 그 해 겨울이 굉장히 추웠는데, 내 추움이 단지 날씨에서만 오는 것은 아니었던 듯싶다. 


그 겨울 즈음 오래간만 언니와의 전화를 했다. 언니는 지나가는 말로 “ 나 여기 언제까지 있을지도 모르는데, 내가 나와 있을 때 너도 한번 나와 보는 게 어때?”라고 얘기했고, 나는 그걸 당연히 유학 오라는  의미로 받아들였다. 참 순진했던 건지, 뭘 몰랐던 건지, 언니가 미국 생활을 하고 있는 그대로 ‘유학’만이 미국에 가는 당연한 길인 것으로 아무렇지 않게 생각했나 보다.  


사실 유학이라는 것을 거창하게 생각하지는 않았다. 그것은 주변에 유학을 해서 어떻게 되었다..라는 사람을 본 적이 없었던 것뿐 아니라, 언니도 아직 유학 초창기라 뭔가를 이뤄냈다고 하기에는 무리가 있어서였던 거 같다. 유학이라는 것이 힘들 것이다라는 생각은 뭐 당연히 있었지만, 그냥 공부를 하면 되는 건가 보다 하고 좀 가볍게 받아들였던 듯하다.  아마 나는 인생의 방향의 변화에 유학이 크게 작용하지 않을 거라고 가볍게 생각했고, 당연하게도 유학이 끝나도, 다시 돌아와서 어린이집에 다니는 일상으로 복귀할 거라 믿었다. 그렇게 ‘아! 이런 긴 고민 끝 유학을 결정했다’가 아닌, 그냥 전화 대화 한통에 물 흐르듯, ‘그냥 한번 가보지’ 이런 모양새의 결정이었다. 


그렇게 유학으로 당장의 진로가 바뀌었고, 나는 유학을 가기 위해 뭐가 필요한지를 생각해보았다. 첫 단계는 당연히 영어시험 준비 토플과 GRE.  어린이집을 다니면서 처음으로 토플 주말 반에 등록했는데. 나는 주말에 버스를 타고 오래간만에 시내로 나가는 느낌으로, 원피스 풀장착하고 룰루랄라 나갔다. 공부에 대한 부담은 전혀 1%도 없이. 


처음에는 일산에서 아침 8시 출근-저녁 7시 퇴근하는 루트의 삶을 살다가, ‘무려 ‘주말’에 신촌을 나간다니!!!’ 하는 흥미로운 자세로 다녔다.  물론 처음 접해보는 토플 공부는 충격적으로 어려웠었다. 그런데 그 충격이  너무나도 쉽게 완화되었던 것은, 비록 그것이 시험공부지만 새로운 세계의 공부를 한다는 그 자체로, 나 스스로를 이전에 몰랐던 다른 아름다운 세상에 불현듯 던져 놓은 것 같아, 참으로 큰 refreshing이 되었다. 또, 수업이 끝나 오후 5시쯤 어둑해지기 시작하는 신촌의 노상에서 혼자 떡볶이랑 어묵을 사 먹으며 지나다니는 사람 구경을 하는 것은 너무나 재미있었다. 그러고 보면, 나는 참 별 생각은 없이 살며, 혼자놀이의 만렙쯤은 쉽게 달성한 인간이 아닌가 싶다. 


내가 그 당시의 나의 상태를 제대로 기억할 수는 없지만, 그즈음 한 가지 기억이 나는 나의 모습이 있다. 나는 보통 8시 이전에 출근을 해서 8시 정각 출발하는 노란 봉고를 타고 아이들을 데리러 차량 운행을 떠났다. 기사님의 대각선 뒤, 차문 바로 앞의 거꾸로 가는 시트에 앉아서, 밖을 쳐다보며 다니다 내가 어느 순간, 일산 바닥을 돌고 도는 일산의 다람쥐처럼 느껴졌다. 정발산역 앞에는 그 당시 오픈한 지 그리 오래되지 않은 롯데백화점이 있었는데, 어느 한 날은 10시 차량 운행을 떠났다가 아이들을 잔뜩 싣고 돌아오는 노란 봉고 안에서, 백화점의 개점시간에 맞춰 들어가는 중년 여성을 보고는 그 자유로움에 감탄을 했다. ‘아 나도 평일 이 시간에 백화점에 한번 들어가 보고 싶다, 무슨 느낌일까’라고 속으로 생각했던 기억이 난다. 교사로서의 일이 재밌고의 여부를 떠나 아마도 그때의 나는 그냥 똑같은 일상에 재미를 못 느끼고 있었나 보다. 그러니 그렇게 삶의 변화에 대한 큰 결정이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들여졌겠지 싶다.

이전 09화 좋은 사람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