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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rofessor Sunny Sep 13. 2021

피아노

시카고 라이프


최근에 아들한테 악기를 하나 가르쳐줘야겠다고 생각해서 지인에게 싼 값에 중고 피아노를 받아왔다. 아들은 일주일에 한 번 하는 피아노 레슨을 딱 6번 받고는 못하겠다면서 포기했다. 결국 집에서 피아노가 비중만 차지하는 애물단지가 됐다. 


나도 어릴 때부터 오랫동안 피아노를 배웠다. 시작은 피아노 학원 안에 있던 유치원을 다니면서부터니까, 중학교에 들어가기 전까지 한 8-9년을 배운 거 같다. 나는 저 애물단지가 된 피아노가 너무 아까워서, 피아노를 친지 이십 년이 훌쩍 넘은 때에 피아노에 다시 앉아봤다. 신기하게 손에 피아노를  “어떻게 누르는지” 감각은 남아있는데, 악보를 읽는 것이 너무 시간이 오래 걸렸다. 그래도 오래간만에 치는 피아노가 재미있어서 한참을 두들기고 놀았다. 


어릴 때는 피아노 학원을 왜 그렇게 가기 싫었는지 모르겠다. 그때는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학교를 마치고 매일매일 학원에 갔어야 했는데, 그 작은 연습실에 갇혀서 똑같은걸 몇 번이나 쳐야 하는 게 고역이라고 느껴졌다. 나는 그 안에서 혼자 노래도 부르고, 다른 노래도 쳤다가, 엎드려 있었다가, 연습 한 번에, 하나의 동그라미를 그려야 하는 룰을 깨고, 동그라미 두 개, 세 개씩 그리곤 했다. 3-4번만 치고 10번 연습을 다했다고 거짓말을 참 거리낌 없이 했다.   


그때 피아노 학원 원장님은 우리 엄마가 다니던 작은 교회에 같이 다니셨던 분이셨는데, 꽤 엄하셨다.  그럼에도 나는 피아노가 너무 싫은 나머지, 꾀를 내었다. 용돈을 모아, 붕대를 샀다. 붕대로 한 손을 칭칭 감고는 학원에 가서, “선생님, 저 손을 다쳐서 일주일 동안 학원 못 와요” 하고 거짓말을 했다. 물론 그 주말에 엄마와 선생님이 교회에서 만나서 다 들통나는 바람에 엄청 혼났지만, 학원을 안 간 며칠이 나는 그렇게 행복할 수가 없었다. 나는 그 정도로 피아노의 모든 게 싫었던 거 같다.  


나는 집에서 학교까지 출퇴근 시간이 굉장히 긴 편이다. 길이 막힐 때는 편도 1시간 반 정도도 기본이다. 너무 무료한 그 시간 동안은, 내가 고른 음악이 아니라 애플뮤직에서 내 취향에 맞게 추천해주는 음악을 듣는다. 그러다 알게 된 가수가 여럿 있는데 ‘멜로망스’라는 가수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다. 그 그룹에는 재즈 피아니스트 멤버가 있는데, 그분의 연주가 멋있어서 나중에 유튜브로 찾아도 봤었다. 그분을 보고 든 첫 궁금증은- 철저하게 내 경험에 비춘-  ‘어린아이가 그 지겨운 연습실 생활을 어떻게 이겨냈을까?’라는 생각이었다. 내가 너무 구시대에 피아노를 배웠나? 물론 그리고는 그분의 재주에 감동을 받았다.  


이 새로 받아온 피아노가 싫지 않다- 처음으로 ‘이 악기가 내는 소리가 이렇게 예쁘구나’라는 생각도 해봤다. 나는 살면서 어릴 때는 굉장히 부담스럽다고 느껴졌던 것들이, 아니면 더 나아가 트라우마였던 것들이, 성장해가면서 아무렇지도 않은 것이 되기도 하고, 나 스스로가 그 자극에 무뎌지기는 경험을 많이 했다. 그것이 ‘시간의 공백’이 주는 부정적인 느낌에 대한 망각인지, 아니면 다 성장한 내가 그것을 잘 해내야 한다는 부담이 없어서인지 모르겠지만, 40년 만에 처음으로 피아노가 진심으로 좋아졌다.  

 




(남편 눈에 보이는 심취한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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