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Professor Sunny Sep 15. 2021

좋은 사람

시카고 라이프

며칠 전 맘이 잘 맞는 동네 친구들과 앉아서 커피를 마셨다. 우리는 전부 비슷한 나이로, 비슷한 나이 또래 아이들을 키우는 엄마들이다. 커피를 마시면서 우리는, 각자의 친구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우리는 주변의 좋은 친구들이 배우자처럼 우리의 인생에 동반자가 되어왔음에 공감했다. 그런데 어린 시절의 친구들보다, 성인이 된 후 사회에서 만난 친구에게 조금 더 조심스럽게 대한다. 이것은 당연하게도 각자에게 이미 형성된 사회적 지위와 역할이 행동의 제약을 걸어오기 때문일 것이다. 


이제는 내가 좋은 사람이 되어야 친구도 생기고, 그 관계가 유지가 된다. 우선 나부터도 이 나이 먹어서 좋은 사람을 만나고 싶지, 마음이 맞지 않는 사람에게 내 시간을 쓰고 싶지는 않다.  


사람의 퀄리티와 상관없이 그나마 쉽게 친구관계를 맺을 수 있었던 어린 시절에는, 친구가 꽤 많았다. 어린 시절 언젠가는 친구 관계가 본인 세상의 전부인 시기가 분명히 있다. 친구 형성과 사회성 발달 분야에서 유명한 어느 학자 (Reifel)는, 보통의 사람이 만 10세쯤에 처해진 사회 환경 안에서 자신들의 룰을 만들고 지키며 ‘친구관계(Friendship)’에 대한 개념을 확실히 습득한다고 했다. 어린아이가 친구에 집중하는 이 시기는 그 아이가 사회적 인간이 되기 위한 필수 연습 과정인 것이다. 


그 많았던 어린 시절의 친구들은 성인이 되고 사회에 나가서, 본인의 일과 삶에 집중하는 동안, 꽤 거리가 멀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에게는 한두 명의 진짜 좋은 친구들이 남았다. 나의 인생의 동반자가 된 이 친구는 내가 만나본 어떤 사람 중에서도 남의 이야기를 집중해서 잘 들어주는 사람이다. 언젠가 그녀는 본인이 다른 사람의 감정을 받아내야 하는 입장이 된 것이 종종 힘들다고 말한 적도 있지만,  꽤 아담한 키에, 마른 그녀는 깡이 좋게도 주위를 잘 돌아보고 끌어안아주는 성품을 가졌다. 


나도 그렇게 그녀에게 ‘끌어안김’을 당했다. 나름 예민하고 뾰족한 성격이었던 내가 그녀의 바운더리 안에서 친구로 머물 수 있었던 것은 돌아보면, 사실 내 노력보다는 그녀의 배려가 컸다고 생각한다. 작년에 코로나가 터지고, 모든 일이 재택으로 바뀌면서 집에서 아이와 둘만 있는 시간이 무료할 때 한국으로 들어갔었다. 2주간의 자가 격리를 마치자마자 나는 그녀를 만났다. 


내 아이의 손을 잡고, 버스를 타고, 그 친구와 만나기로 한 장소에 서있었다. 기다리는 그 시간이 내 나이에는 잘 찾아오지 않는 ‘설렘’을 주었다. 내가 아는 그녀는 굉장히 긍정적인 사람이다. 나를 언제 보아도 첫인사가  ‘어머, 오늘 너무 예쁘다’라고, 이 나이에도 내가 입이 찢어질 만한 칭찬을 해준다. 사실 나도 안다-40살 아줌마가 얼마나 예쁘겠나. 우리 친구는 이런 사회관계에서 정이 많고 베풂이 관대하다. 


우리는 고등학교에 입학한 날 만났다. 나는 사실 이 장면이 기억이 안 나는데, 그녀는 두고두고 나의 첫인상에 대해 얘기해준다. 입학식 날 운동장에서 내가 “여기가 1학년 7반 줄인가요?”하고 그녀에게 말을 걸었단다. 빨간 안경을 끼고 큰 교복 치마를 입은 삐쩍 마른 내가 인상에 남았나 보다. 우리는  17살에 친구가 되어 서로의 흑역사에 많이 등장한다. 순수했던 그녀가 처음으로 남자에게 받은 고백을 눈물과 온몸으로 거절하던 순간에 내가 있었고, 우리가 핑클 노래를 따라 부르면서 진짜 핑클처럼 예뻤던 줄로 착각했던 시간에도 함께 있었다.  


같이 성장하는 동안, 우리는 서로의 가족사에도 연애사에도 꽤 깊이 관여되어 있었다. 성인이 되어가며 우리는 나란히 몇 번의 연애에 실패하고, 나는 유학으로, 그녀는 뒤늦게 대학 편입으로 바쁜 나날을 보냈다.  


그러다 내가 유학을 오고 얼마 되지 않아, 그 친구는 나에게 한 남자의 사진을 보여줬다. 그 사진 속 남자는 곧 친구의 남편이 되었는데, 사랑이 많은 이 친구는 한결같이 핑크빛을 유지하며 남편을 사랑해오고 있다.  사실 나는 그날 그 친구가 남편의 사진을 보여주면서 “이 남자랑 결혼하고 싶어”라고 필터 없는 말을 건넸을 때, 왜인지 굉장히 충격을 받았다. 뭔가 같이 철없는 시절을 살고 있던 그룹에서 ‘나는 이제 어른이 될 거야’ 하고 빠져나가는 느낌이었달까. 하하 


10대 때는 10대처럼 놀고, 20대 때는 20대 다운 대화를 하고, 30 대 때는 인생이 정신없음을 같이 공감하다가 40살이 되었다. 나는 직업적으로 ‘사회성 발달’을 돕는 일을 하면서 끊임없이 사람의 ‘상호관계’에 대한 의미를 물어야 한다. 내가 어린 시절, 올바른 사람에 대한 가치관이 없을 때, 운이 좋게도 좋은 사람을 만나 같이 성장하고, 영향을 주고받고, 오늘의 내가 되어서 다시 이 사람이 진짜 좋은 사람이었구나로 평가할 수 있어서 기쁘다. 주변에 좋은 사람이 있는 것은 그 사람이 나에게 꼭 무엇을 하지 않더라도, 좋은 어떤 에너지를 계속 전해주고 있다는 것에 대한 믿음을 준다. 



남편! 우리 이렇게 못생기지 않았어...


이전 08화 피아노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