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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rofessor Sunny Sep 11. 2021

잘 아는 부부에 대한 관찰

어린 시절 이야기

어제에 이어 부부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이번에는 내 이야기가 아니라 내가 바라본 우리 언니 부부의 이야기다.


우리 언니는 만 24살에 결혼을 했다. 그녀는 인생을 매우 한결같이, 모두가 예상할 수 없는 예상치 밖에서 살았다. 적어도 내가 볼 때는 그렇다. 흔히 말하는 4차원이었다. 공부도 잘했고, 울기도 잘했고, 화도 잘 냈고, 세 자매 중 리더십도 발휘했고, 그리고 이제는 목사님이 되었다. 정말 열정이 끝이 없는 사람이다.


그러던 언니가 신학대학원에 진학하자마자, 최 씨 남자 친구를 집으로 데려왔다. 그는 언니와 4살 차이가 났는데, 나와 동생은 그를 아저씨라 부르고 잘 따랐다. 둘은 유학을 준비하고 빠른 속도로 결혼했는데, 나는 남들과는 많이 다른 우리 언니를 잘 알았기 때문에, 형부가 앞으로의 삶을 과연 잘 버틸 수 있을까, 사실 속으로 굉장히 걱정했다.


나의 언니를 묘사해보자면, 그녀는 시범적인 것을 참 좋아하고 실제로 직접 시도한다. 예를 들어, 결혼식장에 혼자 당당한 입장을 하기 (그것도 거의 20년 전에). 또 남들의 시선 따위는 집어치우라는 듯, 너무나 트렌드가 지난 옷을 손에 집히는 대로 입고 다닌다거나- 예를 들면 멜빵 청바지.  엄마는 ‘언니가 학교를 다니는 동안 분명 왕따를 당했을 텐데, 그녀는 왕따를 당한 지 조차 몰랐을 거다’라고 나중에 말했다. 그렇게 특색이 있는 그녀였다.


어느 한날은, 엄마가 웬일로 중국음식을 시키셨다. 나랑 언니는 짬뽕, 동생은 짜장면. 

‘와! 이런 잔칫날이라니!

막 먹으려고 하는데 어디선가 갑자기 흐느끼는 소리가 났다. 고개를 옆으로 돌리니 언니가 눈물을 주룩주룩 흘리면서, 짬뽕을 계속 입에 욱여넣고 있는 게 아닌가. 아! 왠지 더 이상 짬뽕을 못 먹을 거 같은 불길한 조짐이 들기 시작했다. 역시나 맞았다. 나와 동생은 엄마와 언니의 전쟁에 눈치만 보다가 흔히 찾아오지 않는 기회인 배달 음식을 눈앞에서 날렸다. 

언니는 고등학생이었고, 그날이 여름 방학 후 처음 보는 모의고사였다고 했다. 여름 방학 동안 다들 고액 과외며 학원을 다니는 동안, 그녀만 아무것도 하지 못했고, 그 결과 성적의 폭이 크게 오르지 못한 것이 너무 분했던 것이다. 엄마는 나름 언니 눈치를 본다고 우리 모두에게 짜장면을 시켜줬던 거 같던데… 천재적인 머리를 가지고, 지원을 못 받는 한계를 느낀 10대의 언니도 서러웠겠지. 하지만 내 아까운 짬뽕. 우리 세 자매 모두 아직도 이 사건을 생생하게 기억한다. 


형부는 그에 반해, 차분하고 감정의 반경 폭이 크지 않은 사람이다. 사람 좋고, 적당히 농담을 즐기고, 선한 사람이라고 평가할 수 있겠다. 


이런 두 사람이 결혼을 했다. 언니와 형부가 결혼을 하고 미국으로 건너간 새에 두 처제가 번갈아 가며 신혼집에 거주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형부한테 너무 미안한 일이다. 어쨌든, 나는 운이 안 좋게도(?), 두 사람이 결혼을 하고 성격을 맞춰가는 ‘결혼 초기’에 그 집에 세 들어 있었다.  우리 모두 가난한 유학생이었기에, 방이 하나인 학교 아파트에서 셋이 살아야 했다. 나는 날이면 날마다 그들이 사이좋았다가도 갑자기 티격태격했다가 하는 모습을 의무적으로 직관해야 했다.


돈이 없는 유학시절은 웃기고도 슬픈, 평생의 이야깃거리를 많이 만들어 줬다. 미국의 던킨도너츠는 시간을 정해놓고, 그 시간 안에는 어떤 사이즈의 커피를 사도, 1불 혹은 2불 하는 식의 마케팅을 한다. 돈이 없으나 커피를 마시고 싶었던 그 커플은, 던킨으로 가서 제일 큰 사이즈 아이스커피를 하나만 주문했다. 안타깝게도 던킨의 아이스커피는 반 이상이 얼음이다. 형부가 ‘한 입만 먹을게’ 하고 쭉~ 빨기 시작했다. 그런데 커피가 다 사라졌다. 나는 암담함에 눈을 감았다.


그러고 나서 10년 후쯤 내가 결혼을 했다. 그 부부의 싸움은 아주 귀여운 수준의 싸움이었구나 하고 느끼는 시기마저도 이미 지나갔다. 시간이 지나니 이런 얘기를 하면서 웃는다. 조율이 끝난 인간관계는 얼마나 편안한 것인가.


(남편... 아재개그 그림에 맛들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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