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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rofessor Sunny Sep 10. 2021

동갑 부부

별 내용이 없지만

글을 쓰기 시작하고, 이제는 하나씩 쓰는 대로 바로바로 업로드를 하고 있다. 글에 나와 있던 상황을 같이 보낸 지인들은 그 같은 기억에 반가워하고, 꼭 내 기억에 같이 있지 않았더라도 나와 같은 시기에 어린시절을 보낸 분들은 본인의 그 때쯤의 삶을 생각해보게 되었다고 말씀해주셨다. 생각을 하고 기억을 되찾는 이런 ‘회상’은 모두에게 꼭 나쁘지만은 않은 정서적인 휴식이 될 거라고 본다. 아직 얼마 쓰진 않았지만, 나조차도 글로 생각을 정리함으로써 많은 위안을 받았다.


웃긴 점은, 어떤 한 사건에 나와 다른 기억을 하는 사람이 있다. 바로 내 배우자이다. 

가장 오랜 시간을 같이 보냈는데, 같은 것을 보았는데, 기억이 다르다. 그것은 종종 유치하게 ‘누가 맞다’의 싸움으로 번진다. 서로 다른 두 사람이 만나서 지지고 볶는 과정이다. 두 사람이 다른 시각을 가지고 한가지 사건을 함께 겪는 동안, 기억과 그 때 느꼈던 감정이 다르게 입력된다.


나는 남편을 미국에 도착하자마자 어학연수 과정에서 만났다. 즉, 남편은 내 미국 생활의 시작점부터 존재한다. 우리는 동갑내기 친구로, 같은 어학연수반에 배치되었다. 그때 우리는 26살. 남편은 한국에서 대학을 휴학하고 진로를 심각하게 고민하던 때였고, 나는 그냥 별 생각없이 언니 따라, 혹시 이번 생에서는 못 가볼까, 미국에 한번 와본 케이스였다. 


우리 부부의 끝나지 않는 논쟁 포인트는, 진짜 시시하고 유치하게도 ‘누가 먼저 좋아했냐’다. 나이가 40살이 되었어도 우리는 이 자존심 싸움에 결론을 못 냈다. 서로 자기는 먼저가 아니라고 철저한 근거를 대는데, 서로 철두철미하다. 그래서 나는 남편을 옆에 앉혀놓고 글로 정리를 하기로 했다.


남편이 말한 내가 좋아진 포인트는 이렇다. 어느 날 어학연수프로그램에 있던 한국 친구들과 오래간만에 한국음식을 먹자고 설렁탕 집에 갔다. 설렁탕을 먹다가 내가 “이 안에 들은 고기는 먹는 거예요? 아니면 안 먹는 거예요?” 라고 물었단다. 남편은 그 질문에 ‘와 이런 신선한 질문을?’ 하고 반했다고. 내가 그걸 물었던 이유는, 그 즈음에 티비에서 물에 오래 삶은 고기는 영양가가 다 빠져서 먹을 필요가 없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나는 ‘그냥’ 지나가는 질문을 한 것을, 남편은 내가 ‘대놓고 꼬신 날’로 받아들였다. 나는 그 날 설렁탕 안에 들어있는 그 고기가 너무 얇고 질겨서 그 식당에 대한 기억이 안좋은데, 남편은 그날 그 식당에서 내가 본인을 꼬셨다고 주장한다.  이 날은 12/21일이다.


나는 12/23일에 남편을 뉴욕 센트럴 파크에서 만나 산책했다. 크리스마스 즈음에 뉴욕은 정말 아름답다. 그 해 9월에 한국에서 날아온 나는 뉴욕에서 처음 맞는 크리스마스가 너무 감동적이었다. 길거리 어디서도 들을 수 있는 캐럴, 미국 느낌의 대형 크리스마스 트리… ‘아! 이런 게 이국적이라는 거구나!’하는 감상평이 온 마음으로 날아 들었다.벅차는 마음으로 옆에 있는 남자를 쳐다봤다. 그도 그 해 3월에 미국에 처음 온 미국 초짜인지라, 나와 똑같은 감동을 받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우리는 그 추위에도 센트럴 파크를 계속 걸으면서 한참 수다를 떨었다. 남편은 수다메이트로 참 유쾌한 사람이다. 나는 그날 이후로 남편이 좋아졌다라고 정의했다.


자, 글로 정리해보았다. 나는 내가 이긴 것 같은데, 남편은 인정 못하겠지?

하하! 

이렇게 시시한 주제를 가지고도, 티키타카 대화하며 일상을 보낸다. 우리는 다른 사람이지만, 같은 경험을 겪고, 혹시 다르게 느끼더라도, 그 다르게 느꼈음을 여전히 재밌어 해 준다. 우리는 동갑내기 친구니까. 



(그때 먹은 썸렁탕 by 남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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