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건이 붙는 이타심

by 주엉쓰

저는 이타적인 것에 조건을 달지 않습니다.

만약 그렇게 해야 한다면,

차라리 이기적으로 사는 게 낫다고 생각합니다.


“나는 왜 남과 나눠야 해? 내 몫은 내가 가지겠다.”

이렇게 말하는 사람보다,

“내가 너에게 베풀었으니,

너도 최소한 이렇게 해야 한다.”

이렇게 말하는 사람이 훨씬 더 이기적입니다.


이타적인 베풂은 본래 어떤 조건도 없어야 합니다.

베푸는 건 나의 선택이지,

상대에게 빚을 지우는 행위가 아닙니다.

그 순간 그것은 더 이상 선이 아니라, 거래가 됩니다.




이타심은 의도에서 출발하지만,

이기심은 결과를 계산합니다.

이타적인 행동은 ‘당신이 고마워하든 말든’

이미 끝난 행위지만,

이기적인 행동은 ‘상대의 반응’을 통해

자신을 확인합니다.

그래서 많은 관계가 무너지는 이유는,

이기적인 마음이

이타적인 얼굴을 하고 다니기 때문입니다.


누군가를 도우면서도 마음속에서는

“그래도 최소한 고맙다는 말은 하겠지.”

“내가 이렇게 해줬으니 나중엔 나도 도와주겠지.”

하고 기대하는 순간,

그것은 더 이상 순수한 이타심이 아닙니다.

그건 ‘감정의 투자’이자 ‘도덕적 거래’입니다.




물론 나는 압니다.

인간에게 완벽한 무의도의 선행은

거의 불가능하다는 걸.

누군가를 돕는 행위에는 언제나

‘나의 만족’, ‘나의 존재감’, ‘나의 의미’가 스며듭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요한 건,

그 감정을 상대에게 조건으로 전가하지 않는 것입니다.


내가 도와준 사람에게 ‘감사’를 강요하지 않고,

내가 베푼 일에 ‘보상’을 요구하지 않으며,

그냥 그 순간의 마음으로 머물게 하는 것.

그게 내가 믿는 진짜 이타심입니다.




이상주의적이라 말할 수도 있겠지요.

세상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고,

“주고받음이 있어야 관계가 지속된다”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맞는 말입니다.


하지만 그것은 ‘균형의 문제’이지

‘조건의 문제’는 아닙니다.

균형은 자연스레 형성되는 것이고,

조건은 의도적으로 만들어내는 것입니다.


조건이 붙는 순간, 관계는 순수성을 잃습니다.

‘도와준 사람’은 우월해지고,

‘도움받은 사람’은 빚을 진 사람처럼 느끼게 됩니다.

이타심이란 이름으로 행해지는 수많은 이기심은

이렇게 관계의 위계를 만들어냅니다.




물론, 받는 사람의 입장에서도

모든 이타심이 선의로 느껴지지는 않습니다.

진정한 호의조차 의심하게 만드는 건,

이전에 겪은 ‘조건적 이타심’ 때문입니다.


한때 누군가에게 도움을 받았지만,

그 도움 끝에 들려온 말이

“내가 그렇게 해줬는데, 넌 왜 그렇게밖에 못 해?”

였던 기억은 평생 잊히지 않습니다.

그 기억은 이후의 모든 선의를 불신하게 만듭니다.


그래서 진짜 이타심이 존재하더라도,

그것을 받아들이는 사람의 경험과 기억이

그 마음을 ‘또 다른 이기심’으로

해석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




이타심은 결국 ‘주는 자’와 ‘받는 자’

사이의 신뢰에 달려 있습니다.

의도가 아무리 순수해도,

받는 이가 그것을 상처로 느낀다면

그건 더 이상 선이 될 수 없습니다.


그래서 나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이타심의 핵심은 ‘행동’이 아니라 ‘태도’다.

조건을 걸지 않는 태도,

보상을 기대하지 않는 태도,

그리고 상대가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이든

결과를 통제하지 않으려는 태도.


그 태도만이 이기심의 경계를 넘어서

진짜 인간적인 선함으로 이어질 수 있다.




우리는 종종 이렇게 말합니다.

“이타적으로 살아야 해.”

그러나 나는 조금 다르게 말하고 싶습니다.


“이타적으로 살되, 그 이타심에 조건을 달지 말라.”


그 조건이야말로,

이타심의 얼굴을 한 가장 교묘한 이기심이기 때문이다.


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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