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른다는 걸 물어보는 용기와 끝까지 버텨보겠다는 마음

by 주엉쓰

모르는 걸 물어보는 걸

두려워하던 시절이 있었다.


질문을 하는 순간,

내 부족함이 그대로 노출될 것 같아서.

‘저 사람은 저런 것도 모르나 보다’라는

시선을 견디기 힘들 것 같아서.


그래서 그때의 나는

엉뚱한 자존심을 지키느라

정작 배울 수 있는 기회를

여럿 놓쳤다.




글을 쓰겠다고 마음먹었을 때,

나는 처음으로 그 자존심을 조금 내려놓았다.


스레드에서 글을 오래 써온 한 분께

용기를 내서 DM을 보냈다.


“안녕하세요. 혹시 제가 쓴 글

몇 개만 보내드려도 괜찮을까요?”


보내고 나서 한참을 후회했다.

‘괜히 보냈나,

내 글이 너무 유치해 보이면 어쩌지.’

“아… 이걸 왜 보냈냐 진짜…”

이런 생각이 끝없이 밀려왔다.


그런데 돌아온 답장은

생각보다 훨씬 따뜻했다.


“물론이죠. 보내주세요.”


그리고 그 뒤에

내가 그때까지 한 번도 들어보지 못했던

직설적인 지적들이

조용하고 단단한 어조로 이어졌다.



특히 기억에 남는 말이 하나 있다.


“쉼표가 너무 많아요.”


나는 그 말을 듣는 순간,

머리를 한 대 맞은 것 같았다.


내 글을 다시 읽어 보니

정말로 쉼표가

숨 쉬듯이, 아니 숨 넘어가듯이

중간중간에 턱턱 걸려 있었다.


마음속으로는

“이게 리듬이지”라고 생각했지만,

조금만 거리를 두고 보면

그건 리듬이 아니라

불안에 가까웠다.


문장을 끝까지 밀어붙이지 못하고

중간에 계속 숨을 고르는 느낌.

확신이 없으니,

쉼표로 계속 도망치는 것 같았다.


그날 이후로 나는

글을 쓸 때 가장 먼저

쉼표부터 의식하게 되었다.


이 문장이 정말 쉼표가 필요한 문장인지,

아니면 그냥

말을 잇지 못해서

잠시 멈춰 선 건 아닌지.


어쩌면 “모른다고 말하는 일”도

그와 비슷한 것 같다.


우리는 모르는 걸 인정하지 못해서

애매한 쉼표를 찍고,

애매한 미소를 지으며

애매한 대답으로

상황만 얼버무린다.




요즘 사람들은

조금만 안 되겠다 싶으면

너무 빨리 포기해 버린다는 생각을 자주 한다.


대충 해 보고,

반응이 없으면

“아, 이건 아닌가 보다” 하고 내려놓는다.


조금 힘들면,

“이 정도면 많이 버틴 거지” 하고 스스로를 달랜다.


그럴 때마다

나는 이상하게도

조금 뒤로 물러난 느낌을 받는다.


모두가 “그만하자”라고 말할 때도,

나는 끝까지 “조금만 더 해보자”라고 말하는 편이라서.


그렇다고 해서

내가 특별히 끈기가 강한 사람은 아니다.

다만,

끝까지 버텨 본 경험이

나를 여기까지 데려왔다고 믿는 편이다.




어느 날,

일은 안 하고 돈은 없고

불평과 불만만 많은 친구 하나를 만났다.


대화를 나누다 보니

그는 요즘 세상이

얼마나 불공평한지에 대해

긴 탄식을 늘어놓았다.


“너무 힘들고 지쳤어.

난 언제까지 고생해야 해.

쭉 일만 해 왔어.

하루 10시간씩, 쉬는 날도 없이.

이 정도면 이제 좀 쉬어도 되는 거 아냐?”


그 말만 들으면

정말 너무 고생한 사람처럼 느껴진다.

그래서 나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얼마나 일했어?”


“2년 정도.”


거기에서 대화가 멈췄다.


나는 그를 비난하고 싶지 않았다.

다만,

“이제 좀 쉬어도 되지 않냐”라고 말하기에는

그가 아직

스스로의 가능성을

너무 서둘러 접으려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못하는 것에

이유를 찾자고 마음먹는 순간,

끝도 없이 변명을 찾아낼 수 있다.


환경 탓, 부모 탓, 운 탓,

동료 탓, 연인 탓, 사회 탓.


실패한 것에

설명을 달기 시작하면

어느새 그것은

“원인 분석”이 아니라

“자기 합리화”가 된다.


못하는 게 아니라,

안 하고 있는 건지.

상황 때문에 실패한 게 아니라,

그 상황에 대처하지 못한

‘나’ 때문에 실패한 건 아닌지.


불편하지만,

한 번쯤은

이렇게 질문을 던져볼 필요가 있다.




나는 이제야 조금 알 것 같다.


삶에서 진짜 중요한 건

“실패하지 않는 법”이 아니라

“실패했을 때 얼마나 빨리

다시 일어나는가”라는 걸.


그리고 그 속도가

곧 그 사람의 힘이라는 걸.


물론 우리 모두는

때때로 쉬어야 한다.

쉬지 않고 달리기만 하다가는

금세 번아웃이 올 수밖에 없다.


하지만 “잠시 쉬는 것”과

“아예 포기하는 것”은 다르다.


쉬어야 할 때 제대로 쉬고,

다시 나아가야 할 때

조금은 민망할 정도로

성실하게 나아가는 것.


나는 그게 결국

“버텨내는 힘”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이야기를 하면

또 어떤 사람은 이렇게 말한다.


“그래도 세상은

결국 운 좋은 사람이 이기는 거 아니냐고.”


맞다.

운이 모든 걸 갈라놓는 순간이 분명히 있다.

하지만 운을 탓하는 동안

우리는

운이 올지도 모르는 지점을 향해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한다.


긍정적인 마음을 가지라는 말이

너무 식상하고

가끔은 폭력적으로 느껴질 때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작은 긍정이

큰 변화를 만든다는 말을

어느 정도는 믿는다.


단지,

그 긍정이

“아무 근거 없는 자기 최면”이 아니라

“그래도 오늘 이만큼은 해냈다”라는

작고 구체적인 성취에서

시작될 때에 한해서다.




배움을 멈추지 않는다는 건

책상에 앉아

공부만 한다는 뜻이 아니다.


모르는 걸 모른다고 말하는 용기,

부족한 걸 인정하고

도움을 요청하는 용기,

포기하고 싶어지는 순간

“조금만 더 해볼까?” 하고

다시 한번만 붙잡아 보는 용기.


이 세 가지가

내가 생각하는 ‘배움의 태도’다.


그리고 이 태도는

나이가 많다고 해서

저절로 생겨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나이가 들수록

더 굳어지고,

더 자존심이 세지고,

“이 정도면 됐지”라는 생각에

쉽게 안주하게 된다.




나는 아직

뭔가 이룬 사람이 아니다.

그저 간신히,

내 삶을 포기하지 않고

버텨보겠다고 마음먹은

평범한 사람 중 하나일 뿐이다.


그래도 언젠가

지금의 나를 돌아봤을 때,


“그래도 그때

모른다고 말할 줄은 알았구나.”

“그래도 그때

한 번 더 해보겠다고

스스로를 설득할 줄은 알았구나.”


이 정도의 말을

내가 나에게

조용히 건네줄 수 있으면 좋겠다.


그 정도면,

꽤 잘 버틴 삶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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