혐오의 시대를 지나며, 우리가 잃어버린 것들에 대하여

by 주엉쓰

요즘은 혐오와 갈등이 너무 익숙해진 시대다.
뉴스를 틀어도, SNS를 켜도, 댓글창을 내려도
누군가가 누군가를 미워하고,
어떤 집단은 또 다른 집단을 향해
끝없이 분노를 쏟아낸다.


“세대 갈등, 젠더 갈등, 지역 갈등.”
갈등의 종류는 점점 세분화되고,
그 속에서 우리는 점점 더 작은 단위로 나뉘어
서로를 공격하는 데 익숙해져 버렸다.


처음엔 이런 분위기가 낯설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당연한 풍경처럼 느껴지기 시작했다.
미디어의 발달, 각박한 삶,
쓸데없이 많아진 비교와 경쟁 속에서
사람들은 자신의 피로와 상처를
다른 이에게 향한 혐오로 바꾸고 있다.




개인의 경험, 환경, 사정은 모두 다르다.
누군가는 부당함을 오래 겪었고,
누군가는 어릴 때부터 트라우마를 안고 있었다.
누군가는 반복되는 현실 앞에서 지쳤고,
누군가는 누군가에게 상처를 깊게 받았을지도 모른다.


그러니 그 감정을
누가 쉽게 단정할 수도 없고,
억지로 말릴 수도 없다.
상처는 설명하기 쉽지 않고,
억울함은 말로 다 닿지 않으니까.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혐오는 결국 어떤 상처에서 비롯된다.
누군가에게 받은 상처,
삶에서 쌓인 좌절감,
설명되지 않는 분노,
홀로 삼켜온 외로움.


그런데 문제는 그 다음이다.


극소수의 누군가가 만든 나쁜 경험을
‘전체’로 일반화하는 순간,
혐오는 폭력으로 변하고
선동은 범죄가 된다.


하나의 사람을 향한 분노가
하나의 집단 전체를 향한 공격으로 바뀌는 데는
생각보다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세대 갈등을 말하지만
결국 누구나 언젠가 나이가 든다.
지금 혐오하는 ‘그들’이
곧 미래의 당신이다.
앞선 세대를 비난하던 사람도
어느 순간 후배 세대에게
이해받기 어려운 사람이 된다.


우리는 모두 시간의 흐름 위에서
앞뒤로 연결되어 있을 뿐이다.
누군가는 앞에서 길을 닦고,
우리는 그 사이를 건너가며,
또 누군가는 우리의 뒷모습을 보며 자란다.


이 단순한 사실을 잊을 때,
세대 갈등은 끝없이 반복된다.




젠더 갈등 역시 마찬가지다.
우리가 사랑하는 부모, 친구, 가족,
그 모든 관계 속에는 남자와 여자가 있다.
우리가 혐오하는 대상이
어딘가에서는 누군가의 소중한 가족이고,
누군가의 평생 동료이고,
누군가에게는 전부일 수도 있다.


사람은 성별 하나로 규정되지 않는다.
그 안에는 성격이 있고, 성장이 있고, 사연이 있다.
그걸 지워버리고 ‘남 vs 여’만 남기는 순간
사람은 사라지고,
편견만 남는다.




지역 갈등 또한 그렇다.
사람은 태어날 지역을 선택하지 못한다.
그저 태어났을 뿐인데,
그 출신지를 이유로 조롱을 받거나
차별을 받는다는 건
참 오래된, 그러나 여전히 반복되는 상처다.


혐오하는 지역 출신의 사람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
내게 도움을 주는 이였을 수도 있다.
그 사람이 만든 물건을 쓰고,
그 사람이 만든 음식으로 배를 채우고,
그 사람이 낸 세금으로 길을 걷는다.


우리는 서로 알지 못한 채
이미 서로의 삶에 많은 영향을 주고받고 있다.




감정은 존중할 수 있다.
사람이니까.
상처받을 수도 있고,
실망할 수도 있고,
분노가 일어날 수도 있다.


하지만 그 감정이
혐오로 번지고,
혐오가 범죄로 이어지는 일만큼은
절대 일어나지 않았으면 한다.


그건 어느 누구에게도
정당화될 수 없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 시대에서 가장 걱정되고 무서운 건
갈등이 일어나고 혐오를 하는 ‘그들’이 아니다.


정말 무서운 건
혐오로 인해 피해를 당하는 사람이
내 가족, 내 친구, 내 연인,
내 지인일 수 있다는 것이다.


그 순간,
나 역시 상처받은 채
더 큰 혐오로 폭력을 되갚으려 할지 모른다.
그렇게 또 하나의 피해와 분노가 만들어지고
혐오는 확산된다.


서로를 미워하는 방식이 아니라
서로를 지키고 싶은 마음에서라도
혐오를 멈춰야 한다.




우리는 모두
누군가의 가족이고,
누군가의 친구이며,
누군가에게는 소중한 사람이다.


어떤 집단에 속하기 전에
우리는 ‘개인’이다.
그 사실을 잊지 않는 것이
혐오의 시대를 지나기 위한
가장 기본적인 최소한의 시작일지 모른다.


그래서 나는 바라본다.
이 시대의 혐오가 멈췄으면 좋겠다.
누구도 상처받지 않고,
누구도 눈물 흘리지 않는 사회는
어쩌면 불가능할지 모르지만,


적어도,
우리는 서로를 향해
더 이상 상처를 던지지 않는 사람이
될 수는 있지 않을까.


그 작은 움직임이
지금의 시대를 조금이라도
덜 아프게 만들 수 있다면.


나는 그 길을 선택하고 싶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괜찮다는 말 뒤에 숨겨둔 마음들에 대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