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을 떠보니 내가 떨어지고 있었다.
속도는 너무 빠른데 시간은 도리어 천천히 흘렀다.
바람이 스치며 몸을 감싸는 동안,
나는 이 낯선 추락을 관찰하듯 받아들였다.
두려움보다 이상하게 고요가 먼저 찾아왔다.
그 고요 속에서 시선을 아래로 돌리니
베란다에서 빨래를 널고 있는 어머니가 보였다.
하루를 정리하려는 손의 움직임이 물결처럼 흔들렸다.
조금 더 아래에서는 취업 준비를 하다 닳은
종이 위에 이력서를 붙잡고,
머리를 감싸 쥔 누군가의 방이 잠깐 스쳤다.
지쳐 보였지만 멈춰 있지는 않았다.
어느 삶도 멈춘 적은 없다는
사실을 나는 그 짧은 순간에 보았다.
낙하는 계속되었다.
이제는 머리를 가리며
비명을 지르고 달아나는 사람들의 모습이 보였다.
누구도 설명해 줄 수 없는
공포를 안고 뛰어가는 발걸음이
내 곁을 흐릿한 잔상처럼 지나갔다.
그 너머 놀이터에서는
미끄럼틀 아래 혼자 앉아
부모를 기다리고 있는 아이가 보였다.
어쩐지 오래 기다려온
사람처럼 몸이 작게 웅크려 있었다.
그 앞 벤치에는
정장을 입고 앉아 있는 아버지가 있었는데
그 역시 누군가를 기다리는 사람의 표정이었다.
어른과 아이의 시간이,
기다림의 모양만 다를 뿐 같은 자리에 머물러 있었다.
바닥은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다.
그러나 떨어지는 동안 나는 생각했다.
이 짧고 낯선 추락 속에서도
이토록 많은 삶들이 흘러가고 있다는 것을 왜 나는 미처 보지 못했을까.
모두가 버티는 자리에 있었는데
나만 힘들다며 투정을 부리고 있었구나,
그런 깨달음이 아주 느리게,
그러나 분명하게 마음속으로 스며들었다.
이제 곧 닿을 것 같았다.
그것이 무엇이든, 어디든.
그리고 나는 아주 조용히 떨어졌다.
휘몰아치는 소리도, 비명도 없이
그저 한 점의 물이 땅에 닿는 소리처럼.
퐁당-
그제야 알았다.
내가 본 세상은 낙하의 끝이 아니라,
어쩌면 또 다른 순환의 시작일지도 모른다는 것을.
사람도, 마음도, 빗방울도.
모두 한 번씩은 떨어져야 비로소 스며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