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은 늘 시대의 공기를 먼저 받아들이는 공간이었다.
유행도, 세대의 정서도, 사람들의 말투까지도
가장 빠르게 스며들고 가장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세계.
그래서 요즘 게임을 보면, 나는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이건 게임만의 변화가 아닐지도 모른다.”
“사회 전체가 변한 것일 수도 있다.”
물론 예전에도 게임은 늘 논란의 중심에 있었다.
피시방에서 컴퓨터를 강제로 꺼버린 기자의 사건처럼,
누가 봐도 명백히 잘못된 행동들은 언제나 존재했다.
하지만 그런 극단적인 사례는 어디에나 있다.
내가 말하고 싶은 건 그런 사건이 아니라,
게임을 하며 자연스럽게 배우던 ‘태도’의 변화에 가깝다.
예전에는 이상하리만치 ‘스포츠맨십’ 같은 것이 있었다.
단순 오락이 아니라, 작은 경기장이자 하나의 문화였다.
스타크래프트를 하던 사람도,
워크래프트나 리그 오브 레전드를 하던 사람도,
치열하게 경쟁하고도 마지막엔 항상 이렇게 말했다.
GG. Good Game.
그 한마디 안에는
수고했다는 의미,
오늘 재밌었다는 인정,
네 플레이 괜찮았다는 존중,
그리고 “프레임 밖에서 다시 만나자”는 작별이 있었다.
졌을 때조차 GG를 쓰던 사람들이 있었다.
어쩌면 그 문화가 게임을 단순한 ‘승패’가 아니라
하나의 ‘과정’으로 느끼게 만들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런 태도는
승패에 집착하는 것보다 더 오래 기억되는 법이다.
잘하는 사람을 동경했고,
못하더라도 스스로를 다독이며 돌아서는 힘을 배웠다.
적어도 그 작은 화면 안에서는
사람을 대하는 태도가 존재했다.
요즘 게임을 하면 가장 먼저 느껴지는 건
사람들이 서로에게 던지는
말의 무게가 가볍다는 것이다.
GG는 더 이상 “고생했다”가 아니다.
그저 “끝났네?” 혹은 “수고 많네 ㅋㅋ” 정도의
조롱 섞인 말로 변했다.
30분 동안 함께 뛰고 싸운 사람에게
마지막에 건네는 말이 “헛수고, GG ㅋㅋ”라면
그건 게임의 문제가 아니라
태도 자체의 문제라고 생각하게 된다.
물론 누군가는 이렇게 말할 것이다.
“그건 그냥 게임이잖아.”
맞다. 게임은 게임이다.
하지만 우리가 게임을 시작하는 나이는
너무도 어리다.
초등학생, 아니 그보다 더 어린 아이들도
이 화면 앞에서 타인을 만난다.
그 안에서 경쟁하고, 협력하고, 갈등을 겪는다.
그리고 아주 어릴 때부터
어떤 말투로 사람을 대하는지
어떤 방식으로 좌절을 해석하는지
그 모든 것을 게임에서 배운다.
그렇다면 정말 ‘그냥 게임’일까?
나는 가끔 그 말이 조금 무책임하게 느껴진다.
얼마 전 PC방에 갔다가
어린 아이들 몇 명이 하는 게임을 지켜볼 일이 있었다.
내가 어릴 때는
동네 형이 게임을 잘하면
그 뒤에 사람들이 줄지어 서서 지켜보던 풍경이 있었다.
감탄하고, 배워가고, 질문하고,
그 안에서 자연스러운 존중이 있었다.
하지만 요즘은 분위기가 전혀 다르다.
아이들끼리 서로에게 던지는 말이
참 잔인할 정도로 가볍다.
“응 저거 아닌데.”
“응 누구 부모님~”
“아 진짜 못한다니까.”
그 말에는 비꼼이 있다.
감탄도, 존중도 없다.
그저 누군가를 깎아내리며
자신이 우위에 있다는 걸
느끼려는 듯한 말투만 남아 있다.
물론 이것이 모든 아이들을 말하는 건 아니다.
하지만 분명히, 예전과는 다른 분위기다.
누군가를 ‘인정’하는 경험보다
‘비웃는’ 문화가 먼저 자리 잡고 있는 느낌.
나는 그것이 단순한 변화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어떤 감정이 무엇을 앞서는가가
그 세대의 정서를 만든다.
이 변화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고 생각한다.
첫 번째는 속도다.
게임은 점점 더 빠르고 짧아지고 있다.
과정보다 결과가 중요해진 사회의 분위기가
게임에도 그대로 스며들었다.
빠르게 이기고, 빠르게 지고,
빠르게 잊혀지는 플레이 속에서
‘과정의 존중’은 자리 잡기 어렵다.
두 번째는 사회 전체의 피곤함이다.
사람들은 하루 종일 어딘가에 지고 산다.
학교에서, 직장에서, 관계 안에서.
그 피로를 어느 정도 풀기 위해 들어온 게임에서조차
비슷한 경쟁 구조를 마주하게 되면
타인에게 건네는 말이 날카로워지는 건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인지도 모른다.
세 번째는 온라인 특유의 가벼움이다.
얼굴을 마주하지 않아도 되니
공격은 쉬워지고 책임은 사라진다.
이 작은 익명성은
사람을 쉽게 잔인하게 만든다.
이 모든 요소가
GG를 조롱의 말로 변화시키는 데 영향을 준 것 같다.
존중이 사라지는 데는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는다.
하지만 존중이 사라지고 난 뒤
사람들이 다시 배려라는 감각을 되찾는 데는
아주 오랜 시간이 걸린다.
게임에서 시작된 태도는
일상에서도 쉽게 이어진다.
다툼이 생겼을 때, 팀워크가 필요한 순간에,
누군가를 이해해야 하는 관계 속에서
우리가 내뱉는 말투는
의외로 게임에서 배운 패턴을 따라가기 쉽다.
그래서 나는 가끔 이런 걱정을 한다.
이런 태도가 당연해지면
우리는 어느 순간
서로에게 ‘한마디 존중’을 건네는 법을
잊게 되는 건 아닐까.
나는 시대가 변하는 걸 막을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리고 지금 세대가 틀렸다고 말하고 싶지도 않다.
그저, 예전 게임에서 자연스럽게 배웠던
그 작은 존중들이
이제는 너무 쉽게 조롱으로 바뀌는 현실이
조금 슬플 뿐이다.
GG가 그저 “수고했다”였던 시절처럼,
서로를 인정하고 돌아설 수 있는 태도가
다시 돌아올 수 있을까?
아니면 그건 단순한 향수일 뿐일까?
정답은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가끔,
그 화면 너머에서 건네던
작은 예의 하나가
사람을 인간답게 만드는 힘이었다고 믿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