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개』 를 다시 읽는 한 가지 가능성

by 주엉쓰

여자의 마음속에 남아 있는 남자에 대하여


우리는 이상(李箱)의 「날개」를

대개 남자의 이야기로 읽어왔다.

무기력한 근대적 자아, 식민지적 소외,

혹은 자본에 종속된 남성 주체의 붕괴로 말이다.

그러나 이 남자는 과연 현실에 존재하는 인물일까.


어쩌면 「날개」에 등장하는 남자는,

유곽에 있는 여자가 마음속에 품고 있는

사랑하는 남자를 표현한 존재는 아닐까,

라는 생각에서 이 글은 출발한다.


이상은 육신을 팔며 연명하는 삶 속에서도

그녀의 마음속에는

여전히 사랑이 남아 있을 수 있지 않을까를,

그 사랑은 과연 어떤 형태로

존재하게 될지를 묻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1. 잠과 정장, 그리고 멈춰버린 시간


그렇기에 남자는 “낮이고 밤이고” 매일 잠만 잔다.

그리고 코르덴 검은 정장 한 벌만을 입는다.

그 정장은 잠옷을 대신하기도 한다.


이 삶에는 낮과 밤의 구분이 없고,

일상과 휴식의 경계 또한 존재하지 않는다.

이는 살아 있는 인간의 시간이 아니라,

이미 과거에 머물러 있는 감정의 시간처럼 보인다.


남자는 아내 외에는 그 누구와도 인사를 나누지 않고,

어디에도 나가지 않으며, 누구와도 놀지 않는다.

그의 세계는 오직 아내의 공간 안에만 존재한다.


2. 화장대, 향, 그리고 기억의 파편


아내의 화장대 위에서 아롱이지는 빛을 바라보는 장면은

찬란했던 어떤 순간을 떠올리는 행위처럼 보인다.


그와 같은 맥락에서 화장품 병 안의 향을 맡는 행위 역시

그때의 향수를 떠올리는 것일 수 있다.

하지만 그 향은 어디서 났는지 확실하지 않다.

이는 분명한 기억이 아니라,

이미 흐릿해진 기억의 파편이기 때문이다.


3. 아내의 방, 햇볕, 그리고 작은 불씨


작품 속에서 햇볕이 들어오는 공간은

오직 아내의 방이다.

아내의 방은 곧 아내의 마음으로 읽힐 수 있다.


그 방에서 돋보기를 이용해 종이에 작은 불을 붙이는 행위는

아내의 마음속에서 아직 꺼지지 않은 불씨를

억지로라도 다시 피우려는 시도로 보인다.


그러나 아내가 돌아오기 전,

남자는 반드시 방으로 돌아가야 한다.

그는 언제나 현실 앞에서 사라져야 하는 존재다.


4. 빈대라는 비유


남자는 말한다.

“나는 모든 것은 괜찮지만,

이 방 안의 빈대는 너무 싫다.”


빈대에 물리면 그는 마구 자신을 긁고,

피가 날 때까지 긁은 후에야 통쾌함을 느낀다.


이 장면은 이렇게 읽힐 수 있다.

남자 자신이야말로 아내의 마음속에 기생하는 빈대 같은 존재는 아닐까.

더 이상 위로나 희망이 아닌,

불쾌함과 죄책감만을 남기는 존재.


피가 날 때까지 긁는 행위는

그 감정을 완전히 제거하고자 하는

자기 파괴의 과정처럼 보인다.


5. 아스피린과 아달린 — 감정의 마취


이후 등장하는 아스피린과 아달린의 이야기는

이 일을 하는 사람들의 현실과 맞닿아 있다.


육체보다 정신이 먼저 무너지는 이들은

아달린을 복용하며 하루하루를 연명한다.

그러나 그 약은 고통을 덜어주는 동시에

남자를 점점 마음속에서 잊히게 만들고,

정신을 더욱 피폐하게 만든다.


이 과정은 남자의 심리 묘사가 아니라,

아내의 감정이 점점 마비되어 가는

상태의 반영일지도 모른다.


6. 돈, 분노, 그리고 마지막 손님


아내가 남자에게 돈을 주는 행위는

마음속에 남아 있는 연민의 표현이다.


그러나 마지막 손님이 있을 때,

남자가 문을 벌컥 열고 들어온 순간은

일을 하던 도중 불쑥 튀어나온

자신의 진짜 마음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아내는 그것을 “분노”로 외면한다.


현실이었다면 손님이 더 분노했을 장면에서,

손님은 오히려 아무 말 없이 여자를 안고 들어간다.

이 장면은 현실의 논리가 아니라

내면의 논리로 구성된 장면처럼 보인다.


남자는 모든 돈을 여자에게 건네고 떠난다.

이는 연민의 최종적인 방출이며,

이미 분노로 되돌려버린 감정을

다시 회수할 수 없음을 의미하는 행위일지도 모른다.


7. 금붕어와 날개


경성역에 도착해 커피를 마시고 싶었지만,

남자에게는 안정을 취할 여유가 남아 있지 않다.


백화점 위에서 내려다본 풍경 속 금붕어들은

값비싼 몸값을 지니고 있지만,

매일 같은 궤도를 돌며

어제의 일을 기억하지 못한 채

같은 행위를 반복한다.


그들은 어쩌면 그곳의 여자들이며,

혹은 그 여자의 현재 모습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마지막에 이르러

“나는 날개가 있었다. 다시 날자꾸나.”라는 말이 나온다.


이 비행은 해방일까.

혹은 완전한 이별일까.


어쩌면 이것은

이제 정말 그녀의 마음속에서

남자가 완전히 떠나버리는 순간이며,

그녀의 마음속 심지가 완전히 꺼졌음을

알리는 선언일지도 모른다.


정리하며


이렇게 읽을 때 「날개」는

남자의 탈출기가 아니라,

여자의 마음속에서 감정이 하나씩 소멸해 가는 과정의 기록이 된다.


남자는 날아오른 것이 아니라,

더 이상 머물 수 없게 되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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