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을 표현하라고 하면
사람들은 대부분
아름답고, 행복하고, 완벽한 모습을 그린다.
기념일의 꽃다발,
좋은 레스토랑,
다정한 손길,
서로를 바라보는 반짝이는 눈빛.
사랑은 그런 장면들로
설명하기 쉽다.
그리고 그런 장면들은
모두가 이해하기 쉽다.
그런데 내게 사랑을 그리라고 한다면
나는 아마
‘추악한 인간의 면’을 먼저 떠올릴 것 같다.
사람이 가진 가장 밑바닥.
사랑을 갈구하는 마음.
외로움.
불안.
질투.
확인받고 싶은 욕망.
그런 것들.
사람들은 사랑을
‘완벽한 상태에서 완성되는 것’처럼 말한다.
하지만 현실의 사랑은
대체로
불완전한 상태에서 시작된다.
마음이 결핍된 채로,
불안이 남아 있는 채로,
상처가 아물지 않은 채로,
서로를 만난다.
그리고 그때부터
사랑은
두 사람의 가장 좋은 면뿐 아니라
가장 못난 면까지
천천히 꺼내기 시작한다.
연인 앞에서 우리는
가장 사랑스러운 모습을 보여주지만,
결국엔
가장 최악의 모습도 함께 드러낸다.
사랑이 무서운 이유는
그 “최악의 모습”을
상대가 보게 된다는 사실 때문일 것이다.
내가 질투하는 모습,
내가 삐뚤어지는 모습,
내가 유치해지는 순간,
내가 감정을 조절하지 못하는 날,
내가 약해져서 기대버리는 시간.
사랑은
그런 모습들을 숨기지 못하게 만든다.
완벽한 사람은 없다.
그리고 사랑은
완벽해지라고 요구하지 않는다.
오히려
완벽하지 않은 나를
그대로 꺼내 놓게 만든다.
사람의 좋은 면을 사랑하는 건 누구나 쉽다.
다정한 사람을 좋아하는 건 쉽고,
성실한 사람을 존경하는 건 쉽고,
예쁜 말을 하는 사람에게 끌리는 것도 쉽다.
하지만 사랑이
진짜 사랑이 되기 시작하는 지점은
보통 그 이후다.
서로의 결점을 있는 그대로 바라봐 주는 것.
서로의 못난 부분을
“그래도 괜찮다”고 말해주는 것.
그게 내가 생각하는 사랑이다.
여기서 중요한 건
“결점을 받아준다”는 말이
“모든 걸 참는다”는 뜻이 아니라는 점이다.
사랑은
폭력과 무례를 용서하는 것이 아니다.
사랑은
상대를 망치는 행동까지 품어주는 게 아니다.
내가 말하는 결점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가질 수밖에 없는
그늘 같은 것들이다.
서툰 표현,
불안의 흔들림,
가끔 튀어나오는 이기심,
마음이 무너져 내리는 날의 침묵.
그런 것들이
사람에게는 있다.
사랑은
그런 인간적인 결함들을
“인간으로서” 이해하려는 시도다.
나는 가끔 이런 생각을 한다.
사랑은
서로의 결점을 ‘고쳐주려는 마음’이 아니라
‘함께 살아내려는 마음’에서 시작된다고.
사람들은 연애를 하며
상대를 바꾸려고 한다.
“왜 이렇게 말해?”
“왜 이렇게 행동해?”
“왜 이런 생각을 해?”
그 질문들이 쌓이면
상대는 점점
자기 자신을 숨기게 된다.
그리고 사랑은
서로가 숨긴 것들 때문에
조용히 식어간다.
사랑은
상대를 바꾸는 기술이 아니라,
상대를 있는 그대로 보려는 태도에 가깝다.
어쩌면 사랑이란
‘나의 추악함’을
처음으로 들켜도 되는 관계일지도 모른다.
세상에서는
모두가 예쁘게 살려고 애쓴다.
사회에서는,
친구 관계에서는,
일터에서는,
늘 적당히 괜찮은 사람처럼 보여야 한다.
그런데 사랑 앞에서는
그게 잘 안 된다.
그래서 사랑은
아름답기만 한 감정이 아니라
무너짐까지 포함한 감정이다.
그러니 내가 사랑을 그리라고 한다면
나는 완벽한 모습보다
불완전한 장면들을 더 많이 떠올릴 것 같다.
밤늦게 말다툼하고
혼자 돌아오는 길에
후회로 가득 찬 발걸음.
괜히 자존심 세우고
“됐어”라고 말해버린 뒤
침대에서 혼자 이불을 쥐어뜯는 순간.
상대가 문을 닫고 나가자마자
“사실 나는…”이라고
말하지 못했던 문장들이
목구멍에 걸리는 시간.
사랑은 그 장면들을 지나며
조금씩 단단해지는 것이라고 믿는다.
사람의 좋은 면을 사랑하는 건 쉽다.
하지만 서로의 결점을 있는 그대로 바라봐 주는 것,
그게 내가 생각하는 사랑이다.
그리고 그런 사랑은
아름답기만 하진 않을 것이다.
대신,
현실적이고,
좀 추하고,
때로는 지저분하고,
그럼에도
끝까지 사람을 사람으로 남게 하는
가장 인간적인 감정일 것이다.
나는 그런 사랑을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