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외로 우리는 잘 모른다.

by 주엉쓰

의외로 우리는 잘 모른다.

정말로, 생각보다 훨씬 더.


사람들은 늘 자기 자신을 가장 잘 안다고 착각한다.

내가 무슨 말을 했는지, 왜 그런 표정을 지었는지,

어떤 선택을 할 때 어떤 마음이었는지.

그 모든 것이 내 안에서 시작됐으니,

내가 제일 정확하게 설명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착각.


그런데 살아보면, 꼭 그렇지만은 않다.

나는 나를 가장 가까이에서 관찰하면서도

정작 내 마음의 끝자락은

나도 모르게 놓쳐버릴 때가 많다.


그리고 더 의외인 건,

내가 나를 잘 모르는 것보다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보고 있었는지’를

내가 더 모른다는 사실이다.




어떤 날은 이런 상상을 한다.


나는 누군가의 첫 사랑일 수도 있다.

그 사람의 기억 속에는

아직도 내가 어설프게 웃던 표정이,

대답을 망설이던 그 순간이,

손끝이 스치던 그 짧은 장면이

그대로 박혀 있을지도 모른다.


나는 누군가가 품었던 일 수도 있다.

“저 사람처럼 되고 싶다.”

“저 사람처럼 살아보고 싶다.”

“저 사람처럼 흔들리지 않고 말할 수 있으면 좋겠다.”

그런 종류의 꿈.

나에게는 아무것도 아닌 하루의 태도가

누군가에게는 삶의 방향처럼 느껴질 수도 있다.


그리고 분명한 건,

나는 누군가의 끝 사랑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이다.


끝 사랑이라는 말은 참 묘하다.

끝 사랑은 더 강렬하거나 더 화려한 사랑이 아니라,

그 사람이 마침내

‘더 이상 흔들리고 싶지 않다’고 생각한 끝에

조용히 도착한 사랑일 수도 있다.


“이제는 이 사람이면 되겠다.”

“이제는 이 사람이 아니면 안 되겠다.”

그런 확신의 자리.

그런데 우리는 그 확신이

누구의 마음속에서

언제 만들어졌는지

대부분 모른다.




나는 내가 느끼지 못했을 뿐이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내가 지나친 친절이

누군가에게는 생명의 밧줄이었을 수도 있고,

내가 무심코 던진 말 한마디가

누군가의 밤을 지켜줬을 수도 있다.


반대로도 마찬가지다.

내가 아무렇지 않게 지나친 순간이

누군가에게는 오랜 상처가 되었을 수도 있다.

그래서 우리는

자기 삶을 너무 쉽게 판단하면 안 된다.


“내가 별거 아닌데.”

“나는 특별한 게 없는데.”

“나는 누구에게나 그저 그런 사람인데.”


이 말들은 대체로,

내가 내 시선으로만 나를 볼 때 생긴다.

하지만 사람은

‘내가 나를 보는 방식’만으로

완성되는 존재가 아니다.


누군가가 나를 기억하는 방식,

누군가가 나를 떠올리는 순간의 감정,

누군가가 내 이름을 말할 때 생기는 표정,

그 모든 것들이

나라는 사람을 조금씩 더 만들어낸다.




그래서 나는 요즘

의심을 줄이기로 했다.


사람을 의심하지 말자는 뜻이 아니다.

세상은 분명 조심해야 하고,

경계해야 하고,

선의를 악의로 포장하는 사람도 있으니까.


내가 말하는 의심은

조금 다른 종류의 의심이다.


“내가 과연 사랑받을 만한 사람인가?”

“내가 누군가에게 의미가 있긴 한가?”

“내 존재가 이 세상에서 사라져도

아무도 모르는 거 아닌가?”


이런 종류의 의심.

사람을 괴롭히는 건

대부분 이런 의심이다.


특히 밤에,

조용해질수록,

상황이 잘 풀리지 않을수록,

그 의심은 더 선명해진다.


이상하게도

우리는 남을 향해선 쉽게 말한다.

“너는 충분히 괜찮아.”

“너는 소중해.”

“너는 존재만으로도 의미가 있어.”


그런데 자기 자신에게는

그 말을 못 한다.




나는 요즘 스스로에게

하나의 문장을 연습한다.


“나는 내가 느끼지 못했을 뿐이다.”


내가 사랑받지 못한 게 아니라,

내가 사랑을 ‘증명’받는 방식이

내가 기대한 방식이 아니었을 뿐이다.


내가 누군가에게 의미가 없었던 게 아니라,

그 의미가

내 눈앞에서 박수로 울리지 않았을 뿐이다.


그러니까 의심하지 말자.

특히 자기 자신을.

특히 내 존재를.


세상이 나를 환대하지 않는 날이 있어도,

내가 나를 환대하는 일을

멈추지 말자.




당신은 이 세상에

존재해 마땅한 소중한 사람이다.


이 말이

가끔은 너무 흔한 문장처럼 들릴까 봐

조금 부끄럽기도 하다.

하지만 흔한 문장이라 해서

틀린 문장은 아니다.


우리는

누군가가 내게 해준 한 문장을

평생 붙잡고 살아갈 때가 있다.

그게 흔한 말이든,

평범한 말이든,

그 순간의 진심이었으면 충분하다.


그러니까,

오늘은 내가 당신에게

그 문장을 하나 건네고 싶다.


당신은 이 세상에

존재해 마땅한 소중한 사람이다.


그리고 당신이 그걸

아직 체감하지 못했다면,

그건 당신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그저 아직

당신에게 들려줄 사람들의 목소리가

다 모이지 않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의외로 우리는 잘 모른다.

그러니, 의심하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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