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이후, 며칠 동안
나는 방 안의 공기처럼 조용했다.
냉장고 문을 열지 않았고,
창문은 닫힌 채였다.
시간은 그냥 흘렀다.
계속 누워 있었다.
밥을 먹지 않아도 배가 고프지 않았다.
머리가 지끈거려도 아프지 않았다.
그냥… 무였고, 무에 가까웠다.
문득, 목이 마른 듯해
정수기 앞으로 다시 걸어갔다.
쪼르르…
쪼르르…
“필터 교체가 필요합니다.”
이번엔,
그 말이 유난히 귀에 거슬렸다.
왜 자꾸 그 말을 하는 거지.
내가 교체할 수도 없는데,
지금 이 상태에선
그 어떤 것도 바꾸고 싶지도 않은데.
버튼을 몇 번 눌러도 같은 소리.
컵을 치우고 다시 올려도 마찬가지.
그 순간,
문득 낯선 감정이 올라왔다.
‘짜증’이었다.
몇 주 만에 느껴보는 감정이었다.
고요한 절망의 늪 속에서
작은 돌멩이 하나가 툭,
물 위로 튀긴 듯한 감정.
그게 너무 낯설었다.
짜증이 반가운 감정이 될 줄은 몰랐다.
‘짜증이라도 나는 게 어딘가’ 싶었다.
그날 밤,
불을 끄지 않았다.
그저 누워서 천장을 봤다.
천장 한켠에는
실패한 밧줄의 흔적이
조금도 미안해하지 않은 얼굴로
조용히 붙어 있었다.
나는 말했다.
“내가 오늘은 그냥 넘긴다.”
이상했다.
그 말이 조금,
조금은 나 같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