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의 시선에 지불하는 비용

성공은 누구의 눈으로 완성되는가

by 주엉쓰


얼마 전 캐스퍼 자동차를 구매하고 1년 정도 지난

친구와 대화를 나눴습니다.


“경차를 구매하면 보험료 저렴하지, 세금 덜 내지, 지자체에서 청년 유류비 지원 나오지. “


경차를 구매하면 실용적인 측면에서 혜택이 정말 많죠.

차를 잘 타고 다니지도 않고,

돈을 아끼려는 친구의 생각에는

아주 합리적인 선택을 한 것으로 보였습니다.

그런데, 친구는 뜻밖의 말을 꺼냈습니다.


“근데, 내가 너무 멍청한 거 같아”


라는 생각하지 못한 대답이 돌아왔어요.


“나는 내 차에 만족해. 아니, 만족하다 생각했어.

하지만 사람들은 나한테 아무렇지 않게 서슴없이

‘그 돈이면 중고차 세단을 사지’, ’조금 있음 결혼할 것도

생각해서 돈 더 보태서 큰 차를 사지‘ 한 두 번은 괜찮았는데

이 말들이 계속 반복되다 보니까, 어느 순간부터는

‘내가 너무 멍청했나?’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지배하더라. “


대기업에 들어가야 하고,

외제차와 슈퍼카를 타야 하고,

비싼 시계와 명품을 걸쳐야만 인정받는다는 생각.

결국, 그것 또한 허물뿐인 성공의 틀일 뿐이다.


그렇다면 진정한 성공이란 무엇인가?


우리는 최저임금을 받아도 생활필수품은 살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소득의 크기가 아니라,

무엇에 가치를 두고 소비하는 가다.


나는, 여러 철학가들이 이야기하는

‘인간은 자유의지가 없다 ‘는 이론을 어느 정도 믿는다.


그중에서 라캉의 '타자의 욕망' 이론을 삶에 비춰보면,

가장 닮은 점이 많다고 느낍니다.

물론, 이것들은 개개인의 견해 차이라고 본다.


하지만 ‘성공’이라는 단어를 정의하기 위해서는

‘타인을 배제‘할 수는 없다고 본다.


우리는 어쨌든 나의 성공이라 하지만,

그 또한 누군가에게 인정을 받아야 하기 위해

타인의 욕구를 충족시켜줘야 한다.


타인에게 인정받지 못한 ‘성공’은 성공이라 할 수 있는가,

가능하다면 ‘성공’이랑 ‘실패‘라는 비교 대상 군은 왜 생겨나게 된 건가.

이렇듯 우리는 누군가에게 인정을 받기 위해 욕구를 충족시켜 주려 노력한다.

그렇기에 ‘성공’이라는 말은 언제나 타인의 시선을 전제로 한다.


그렇다면 여기서 중요한 맹점은 이것이라 생각한다.

‘성공’이라는 말에서 타인의 시선을 배제할 수 없다면,

그 성공 속에, 정작 당신이 진정하고 싶은 것은 남아 있는가?



노동을 해서 돈을 벌어야 하고 성실해야 하며,

도덕적 윤리를 지켜야 한다는 사회적 약속에 의해 살아간다.

이러한 시스템 속에서

우리는 규칙을 지키기도 빠듯한 삶 속에

행복하냐는 질문을 강요받으며 살아간다.


어릴 때 우리는 ‘꿈’이 무엇인지,

수 없이 많은 질문을 받았고

장래희망에는 나름 구체적이지는 않아도

미래에는 내가 어떤 모습일지 상상하며 적고는 했다.

시간이 지나며, 현실이라는 벽 앞에 '꿈' 보다는 해야 하는 것

혹은 하고 싶은 것보다는 '더 잘 보일 수 있는 것'을 택하게 된다.


좋은 옷, 좋은 차, 좋은 집, 돈을 많이 벌어야 해.

어느 순간부터 이런 것들을 '더 값진 것'이라 부른다.

물론 '자본주의 사회'에서 '값'으로 쳤을 때, 더 값진 것이 맞다.


행복의 기준으로 봤을 때,

자본주의 사회에 맞는 '값진 물건'을 샀다.

그래야 행복하니까, 그런데 돌아오는 질문은 행복이란 무엇일까?


"그렇다." 우리는 지금 '행복의 기준'에 따라 살고 있기에,

이런 메커니즘 속에 빠져 있는 것이다.

우린 분명 '꿈'이 있었다. 하지만 '사회적 구조'가 우리에게

"이렇게 살아야 행복해" 라며 강요를 하고 있다.

그러니 우리는 <행복>을 강요받고 있다.


'자본주의'와 '행복'은 동일화가 될 수 없다.

아니 명확하게 이야기하면, "모두"가 행복해질 수 없다.

본디, 좋은 제물이란, 나보다 더 가진 자를 보며 느끼는

상대적 박탈감에서 만들어내는 욕구다. 그것이 행복인가.

<마케팅 수단 중 하나로도 쓰인다.>


그렇다면 행복은 '하고 싶은 것을 했을 때 오는가?'

아니, 그렇게 된다면 세상은 곧 '방종의 세상이 될 것이다.'

과도한 안정감과 평온은 지루함을 불러일으킬 것이고

새로운 자극과 충동을 불러일으킬 것이다.


그렇다면, 행복은 어디에 있는가?

'행복'은 찾을 수 없다.


"당신이 멍청해지지 않는 이상"


행복해지려면, 당장 멍청해져라.

우리는 타인에게 너무 많은 신경을 쓰고 있다.

그렇기에 행복할 수가 없는 것이다.


"평생 고립 된 곳에서 슈퍼카와 초호화 저택 최고급 음식들을 주는 것"

"평범한 집에서 그저 그런 월급을 받으며, 그저 그런 차를 타고 그저 그런 음식을 먹으며

가족들과 살아가는 것"


어떤 게 더 행복할까.


'어떠하게 보이는지 타인과 비교하지 않으면, 두 번째가 훨씬 행복하다.'


결국 첫 번째를 택하는 사람도 저것들을 자랑하고 인정해 줄 대상이 없다면,

금방 행복을 느끼지 못하게 될 것이다.


물질 만능주의는 상대적 박탈감을 주고,
성취주의는 좌절감을 주며,
이타주의는 허탈감을 주기에
나는 멍청해지기를 택했다.




행복

우리는
존재하지 않는 것을
형상화 하라며 강요했고,
평생 돌아봐야 할 오답노트에
정의를 내리라 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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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두 집 살림을 한다.

평일에는
알람이 나를 맞이하며,
모니터가 나를 비추고
직급이 나의 이름인 집.

주말에는
약속이 나를 재촉하고,
햇살이 나를 안아주며
내 이름으로 불리는 집.

소모하고 소모한 것을
수습하며 살아가는 아이러니다.

나는 두 집 살림을 한다.


자신의 삶에서 결코 쉽지는 않겠지만,

'타인'이 주체가 되어서는 안 된다.


결코 "경차"를 구매한 내 친구의 선택도

잘못된 선택이 아니다.


우리는 세상을 살아가며 보이지 않는 "타인의 시선비용"을 지불하며 살아가고 있다.

결코, 소비하지 않고는 살아갈 수는 없지만 '나 자신'을 위해 조금씩은 줄여 나갈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 무엇보다 '내 삶의 만족'과 '내 삶의 행복'을 위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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