틀렸을 수도 있는 용기

by 주엉쓰

어릴 적에는 말이 빠른 사람이 멋있었다.
생각하기보다 먼저 말하는 사람,
자신의 확신을 밀어붙이는 사람.
그런 이들이 세상을 움직인다고 믿었다.


하지만 나이가 들수록 알게 된다.
세상을 움직이는 건
확신이 아니라 의심이라는 걸.
‘틀렸을 수도 있다’는 마음이
얼마나 큰 성숙의 징표인지 이제야 안다.


젊을 땐 모든 것에 정답이 있다고 믿는다.
사랑에도, 일에도, 관계에도
올바른 방식이 하나쯤은 있을 거라 생각한다.
그래서 다투고, 상처 주고,
끝내 관계를 잃는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 안다.
정답은 늘 ‘상황 속’에 있다는 걸.
어떤 때는 옳았던 말이
다른 자리에서는 폭력이 되기도 하고,
어떤 행동은 용기이지만
다른 순간에는 무모함이 된다.


그걸 알게 된 사람은
함부로 판단하지 않는다.
확신 대신 질문을 품는다.
“그럴 수도 있겠네.”
“나는 왜 다르게 느꼈을까.”


이런 말이 세상을 바꾸지는 못하겠지만,
적어도 사람을 잃게 하진 않는다.

나는 그런 사람들을 좋아한다.
늘 단정하지 않고,
자신의 말에 여백을 남겨두는 사람들.
그 여백이 바로 이해의 공간이 된다.


요즘은 모든 게 너무 확실하다.
댓글 하나에도 정답이 있고,
SNS의 모든 문장은 누군가의 판결문처럼 느껴진다.
“이건 맞고, 저건 틀려.”
그런 말들이 세상을 좁힌다.


틀렸을 수도 있다는 말은
결국 나의 위치를 낮추는 일이다.
그건 겸손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두려움에 맞서는 용기다.
확신보다 의심이 더 어려운 이유는
그 안에 ‘자기 부정’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모든 성장은
자기 부정에서 시작된다.
어제의 내가 옳았다고 믿었던 것을
오늘의 내가 수정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우리는 살아 있는 사람이 된다.


나는 이제 누군가의 말을 들을 때
반박보다 질문이 먼저 떠오른다.
“그 사람은 왜 그렇게 생각했을까.”
그 물음 하나로 관계가 바뀌기도 하고,
때로는 내 시야가 넓어지기도 한다.


진정한 어른은
모든 걸 아는 사람이 아니라,
모르는 걸 인정할 줄 아는 사람이다.
그래서 나도 여전히 배운다.
나를, 세상을, 그리고 사람을.


나이가 들수록,
따지거나 주장을 내세우기 보다
질문하는 버릇을 가져야 한다.

”내가 틀렸을 수도 있음을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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