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지 않는 선

우리는 알고리즘 속에서 계급을 배운다

by 주엉쓰

요즘 나는 ‘알고리즘’이라는 말을 들을 때마다
이상하게 사회의 구조가 떠오른다.
보이지 않는 기준이 우리를 나누고,
그 기준 안에서 각자의 자리를 ‘추천’ 받으며 산다.
마치 우리가 누군가의 코드 속에서
순서대로 배열된 존재들처럼 말이다.


SNS를 열면,
‘좋아요’를 많이 받은 글이 맨 위로 올라온다.
플랫폼은 말한다. “이게 지금 세상의 흐름이에요.”
그건 단순한 기술의 문제 같지만,
사실상 사회의 축소판이다.
누가 중심에 있고, 누가 주변에 있는지가
무의식적으로 각인된다.


영화 「기생충」을 처음 봤을 때 느꼈던

불편함도 그거였다.
봉준호 감독은 말 한마디 없이,
카메라 구도 하나로 ‘선’을 그었다.
위층과 아래층, 계단 위와 계단 아래,
햇빛이 드는 집과 물이 스며드는 집.
그 경계선은 너무나 명확했다.


나는 그 장면들을 보며
‘알고리즘이 만든 계급’을 떠올렸다.
보이지 않지만, 존재하는 선.
우리는 그 선을 넘지 않고 산다.
넘어가려 하면 ‘불편한 존재’가 된다.
질서가 어긋난다고 말하는 사회 속에서,
그 질서가 누구의 이익을 위한 것인지는 묻지 않는다.


조여정 배우가 말했던 대사,
“지금 가정부에게 만족하는 이유? 선을 넘지 않아요.”
그 한 문장은 너무 정확했다.
우리는 지금도 각자의 자리에서
‘선을 넘지 않는 법’을 배우며 자란다.
말투, 복장, 학력, 거주지, 연봉, 취향—
이 모든 것이 ‘선을 지키는 방법론’으로 작동한다.


그 선을 넘어가면?
불편해진다.
상류층은 불쾌해하고,
하류층은 죄책감을 느낀다.
결국 모두가 자기 자리를 유지하기 위해
침묵을 선택한다.
그게 사회적 평화의 모양이다.


하지만 가끔 나는 묻는다.
이런 세상에서 진짜 ‘자유’란 존재할까.
우리가 스스로 선택한다고 믿는 그 모든 선택이
사실은 알고리즘이 추천한 결과라면?
“이건 당신에게 어울릴 거예요.”
그 말 한마디로 우리는 이미
자기 검열된 선택을 하고 있는 건 아닐까.


결국 우리는 눈에 보이지 않는
‘선’ 속에서 살아간다.
그 선은 법으로 정해진 것도 아니고,
누가 강요한 것도 아니다.
그저 오래된 시선의 축적,
그 안에서 안도감을 느끼는 우리의 습관일 뿐이다.


나는 이제 그 선을 지키는 사람보다,
그 선을 바라보는 사람이고 싶다.
넘어가겠다는 의지도,
지키겠다는 결의도 없이,
그저 ‘왜 이 선이 필요한가’를 묻는 사람.


사회는 늘 위계로 나뉘어 있다.
하지만 진짜 계급은 ‘위치’가 아니라 ‘시선’에 있다.
남을 내려보는 사람은 언제나 위에 있고,
올려다보는 사람은 언제나 아래에 있다.
그렇다면 나는 그냥 ‘정면’을 바라보고 싶다.



그러니까 ‘알고리즘’이라는 단어가 생긴 걸까.
사회는 묘하게 작은 단위부터 보이지 않게 급을 나눈다.
그리고 사람들은 그 구조 안에서 편안함을 느낀다.

“세상이 그은 선을 넘는 순간,
우리는 비로소 자기 위치를 자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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