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잘 쓴 글’, ‘좋은 예술’이라고
부르는 것들의 기준은
대체 누가 만든 걸까.
기승전결, 도입·전개·결말, 감정선, 플롯.
모두 누군가가 미리 정해둔 틀 안에서만
‘완성도’를 논한다.
하지만 나는 가끔 생각한다.
그 모든 틀을 부수고도
여전히 사람의 마음을 움직인다면,
그게 진짜 예술이 아닐까.
이상의 「오감도」에는 운율이 없다.
문장의 문법조차 없다.
그런데도 그 혼란스러운 리듬 안에서
나는 오히려 ‘인간의 내면’을 느낀다.
불안과 혼돈, 불협화음이 그대로 살아 숨 쉰다.
그건 형식을 초월한 감정의 언어다.
우리가 쓰는 문장도,
결국 감정의 모양을 만드는 일이다.
감정이란 원래 비정형의 것인데,
어째서 사람들은 거기에 틀을 씌우려 할까.
타인의 평가가 무서워서일까,
아니면 이미 ‘정답이 있는 세상’에 길들여져서일까.
나는 글을 쓸 때마다 스스로에게 묻는다.
“이 문장은 진심인가,
아니면 기준을 의식한 결과물인가.”
타인의 칭찬을 받기 위해
내 감정을 다듬어버린 문장은 결국 공허하다.
반대로 문법이 조금 틀렸더라도
감정이 진심으로 전해지는 문장은 오래 남는다.
예술은 언제나 형식의 반대편에서 진화해 왔다.
그것이 음악이든, 시든, 회화든.
혁신은 늘 기존의 질서를 무너뜨리는 자들로부터 왔다.
세상은 끊임없이 말한다.
“이건 너무 낯설어.”
“이건 문법에 맞지 않아.”
“이건 규칙을 어겼어.”
하지만 생각해 보면,
‘낯섦’이란 말은 언제나 새로운 시대의 탄생을 알렸다.
예술가란 결국 낯섦을 감수하는 사람이다.
세상이 이해하지 못해도,
자신이 느끼는 감정에 충실할 수 있는 사람.
나는 그래서 글을 쓸 때,
‘잘 쓴 글’보다 ‘진심이 담긴 글’을 선택한다.
문장을 깎고 다듬는 일보다,
감정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일이 더 어렵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우리가 겪는 대부분의 불안은
‘틀에서 벗어나는 순간’에 찾아온다.
하지만 그 불안은 동시에 ‘자유’의 전조다.
모든 창작은 불안에서 시작된다.
그 불안을 견디는 사람만이
자신만의 언어를 갖게 된다.
어쩌면 인생도 예술과 같다.
누군가는 내 삶의 구성에
‘기승전결이 없다’고 말하겠지만,
나는 그게 오히려 내 서사의 진짜 모습이라 믿는다.
삶은 예측 가능한 결말을 위해 사는 게 아니라,
순간의 감정과 의미를 쌓아가는 과정이니까.
누군가는 그걸 ‘형식의 파괴’라 부를지 모르지만,
나는 그것을 ‘진심의 증명’이라 부르고 싶다.
틀에 얽매이고 타인의 평가를 의식하지 마라.
추구하고자 하는 소신이 있다면 그것을 표현하라.
소설에는 반드시 기승전결이 있어야 하고,
시는 반드시 운율을 지켜야 한다는 말은 형식일 뿐이다.
보이는 기준에 스스로를 옭아매지 말라.
예술은 언제나 틀을 거부하며 새로운 길을 열어왔다.
오감도에는 운율이 없고,
바벨의 도서관에는 기승전결이 없다.
표현의 본질은 형식이 아니라,
자신의 소신과 진정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