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누구나 타인을 판단하며 산다.
그건 거의 반사적인 행위에 가깝다.
길거리에서 마주친 사람의 표정 하나에도,
SNS에 남겨진 문장 하나에도
우리는 끊임없이 평가하고 비교한다.
하지만 타인을 나무란다는 건
결국 내 안의 불안을 말하는 일이다.
내가 싫어하는 그 모습이 사실은
내 안에도 있다는 걸,
인정하고 싶지 않아서 내뱉는 말일지도 모른다.
“나는 저렇게 살지 않아야지.”
“저 사람은 왜 저럴까.”
이런 말들은 결국
‘나도 저럴 수 있다’는 불안의 다른 표현이다.
어쩌면 나도 언젠가는 그렇게 될까 봐,
내 안의 그림자를 밀어내기 위해
타인을 비난하며 안도감을 얻는 것이다.
어릴 적 나는 누군가를 쉽게 판단했다.
특히 내 기준에 맞지 않는 사람들을.
그건 내 ‘옳음’을 증명하기 위한 싸움이었고,
동시에 내 ‘불안’을 감추기 위한 방패였다.
하지만 살아보니,
사람을 나무랄 때마다 결국 나 자신이 작아졌다.
타인을 평가할수록
내가 모르는 세계가 늘어나더라.
세상을 흑백으로 나누기엔
인간의 사정은 너무 복잡했다.
그래서 이제는 조금 다르게 본다.
누군가의 행동이 이해되지 않을 때,
“왜 저럴까” 대신 “무슨 사정이 있을까”를 먼저 생각하려 한다.
그 순간 나의 언어는 조금 부드러워지고,
나의 마음은 조금 넓어진다.
결국 타인을 나무라는 건
내가 아직 나를 다루지 못했다는 뜻일지도 모른다.
내 안의 감정을 조율할 줄 모르니까,
그 불균형이 밖으로 흘러나오는 것이다.
강물에 휩쓸리지 않으려면
수영을 배워야 한다는 말처럼,
세상의 부조리와 타인의 모순에 휩쓸리지 않으려면
먼저 나 자신을 다루는 법부터 배워야 한다.
수영을 배운 사람은
물살이 거세도 쉽게 빠지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자신을 이해한 사람은
타인의 말과 행동에 쉽게 흔들리지 않는다.
그건 단단함이 아니라, 유연함에서 오는 안정이다.
나는 이제 누군가를 쉽게 나무라지 않는다.
대신 그를 비추는 내 감정을 바라본다.
‘왜 나는 저 사람에게 화가 났을까?’
‘왜 저 말이 나를 건드렸을까?’
그 질문 속에 나의 미숙함이 숨어 있을 때가 많았다.
결국 타인을 이해하는 일은
내가 나를 이해하는 일과 같다.
타인의 결함을 통해 나의 결핍을 보고,
타인의 실수를 통해 내 한계를 배운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생각한다.
내가 타인을 나무랄 자격이 있는가,
아니면 나를 돌아봐야 하는 순간인가.
아마 인생은 그 두 가지 질문을
끝없이 반복하는 과정일지도 모른다.
타인을 나무라는 말,
결국 자기 고백일 때가 많다.
강물에 휩쓸리지 않으려면,
먼저 수영을 배워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