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유럽 모먼트
부모님과 여러 차례 여행을 다니며 가장 걱정되는 것이 '음식' , '무엇을 먹을까?'에 대한 고민이다.
비단 우리 아시아 식문화인 '밥 (rice) 세권'을 벗어나면 더더욱 신경이 쓰일 수밖에.
그러나 요즘 친구들이 속속 부모님들과 우리나라 근처인 일본, 대만 등에 함께 여행을 다녀온 후기를 들어보면 생각보다 일본에서 음식이 맞지 않아 애 먹으셨다는 이야기도 쉽게 들을 수 있다.
이게 사실 나의 이야기일 수도 있다.
유럽 여행 전 가을, 엄마와 도쿄를 다녀왔는데, 정말 뼛속까지 한식을 사랑하는 엄마는 도착하자마자 동인천 신포동의 명물 '청실홍실'의 시원한 육수의 메밀을 생각하시며, 일본 메밀을 시키셨지만, 생각했던 맛보다 센 간에 이후 식사는 백화점 푸드코드나 7층 전문 식당가 중 한식당을 찾아드시곤 하였다.
아니러니 한 것은 다음 여행인 대만에서는 훠궈도 드시고, 딤섬도 잘 드시고, 대만 로컬 식당의 음식도 잘 드셨다. 이래서 나의 유럽여행 식사 계획이 좀 더 어렵게 다가왔을 것이다.
워낙 해외를 자주 가시는 우리 아빠는 정말 멋쟁이시다.
일흔을 바라보고 계신 나이임에도 단 한 번도 음식 타는 걸 보지 못했다. 심지어 한국에서도 가끔 우리 부부에게 우즈베크 음식이나 러시아 음식을 먹으러 함께 가길 원하시는 분이라, 아빠는 전혀 걱정되지 않아!라고 말하고 싶지만, 한식파와 양식파의 사이에서 매 끼니 식사를 고민하는 건 은근 스트레스였다.
프랑스와 런던 여행에서 식사비는 매 끼니 기본 1인 3만 원이다. 좀 더 파인 다이닝을 간다면 1인 7만 원 정도까지 잡을 수 있지만, 우리 가족은 숙소 근처 비스트로나 한인식당을 주로 이용했던 지라 이 정도 예산으로 잡았다. 예산을 떠나 드시고 싶은 것이 있다면 지체 말고 고 스트레이트하고 쫓아가긴 했다.
우선 아침식사.
런던 숙소에서는 전일 조식 포함으로 신청해서, 아침마다 각자의 취향대로 먹을 수 있다.
엄마는 채식
나는 바게트와 샐러드 약간의 단백질
아빠는 골고루 맛있게 플러스 요구르트, 우유 한 그릇씩.
되려 아침은 걱정하지 않아 좋았지만, 유럽 여행에서 아파트숙소에 머문다면,
한국에서 가져갈 수 있는 간편 조리식품들과 젓갈, 절임류를 가져가서 따뜻한 밥 한 그릇으로 때워도 괜찮다.
생각보다 보리차 티백을 활용하여, 금세 보리차를 만들어 밥에 말아, 젓갈 한 입과 때워도 나쁘지 않은 아침식사가 될 것이다.
파리 아파트먼트의 조식이 별로라 1인 18유로나 한다고 해서, 아빠가 당일 아침 공수해 온 샌드위치와
아빠가 직접 데운 전자레인지 조리 감자.
차라리 여행 중엔 종일 외식의 향연이니, 오전엔 되려 달걀, 우유, 샐러드 채소 그리고 감자, 고구마 등 조금 사서 조리해 먹으니 참 좋았다.
그렇게 매일 매 끼니 우리의 선택은 과연 눈치게임과 엄마의 짜증이었을까?
다행히 '아니'었다.
대부분 부모님과 함께 가는 유럽 여행지는 대도시일 것이다.
우리의 경우도 런던과 파리였고, 그 두 도시에서의 가장 중심지역에서 구글맵을 딱 켜면 정말 무궁무진한 각기 다른 나라의 특색이 있는 레스토랑들을 찾을 수 있다.
이동 중 점심은 이틀에 한 번꼴로 프랑스 비스트로나 스테이크 하우스를 즐겼거나,
겨울여행이라면 한 번씩 생각나는 '따뜻한 국물'을 또는 정말 간단하게 맥도널드나 서브웨이를 즐긴 날도 있었다.
그중 한식이 아닌 '아시안'을 찾는다면, 일식 가락국수와 초밥을 파는 가게나 베트남 쌀국수를 먹었다.
2009년도 프랑스 파리에 왔을 때에도, 베트남 쌀국수는 파리 현지인들에게도 매우 인기 있는 음식이었는데, 단연 2024년도는 더 많은 수의 베트남 pho 쌀국숫집이 생겨, 길거리마다 짧은 웨이팅 후 바로 먹을 수 있었다.
1인 만오천 원이 되지 않은 금액으로 따뜻하고 든든하게 엄마의 배를 채울 수 있다.
어느 날, 시테섬 노트르담 성당 근처 비스트로에서 때운 점심이다.
꼭 먹어보고 싶던 정말 프렌치 어니언 수프는 내 것.
아래의 커다란 바게트 샌드위치는 아빠 것.
맨 위의 오믈렛은 엄마의 것.
양은 살짝 많고, 당연히 로컬식이라 조금 느끼했지만 그나마 드실 수 있다고 했다.
그리고 파리 리옹 근처 숙소는 길거리에 정말 많은 비스트로들이 있다.
백번을 다시 봐도 예쁜 우리 동네, 사진의 오른쪽 쭉 30m 정도 가면 대로가 있었고, 그대로엔 캐주얼한 레스토랑이 몇 곳 있었다. 물론 케밥, 초밥, 핏제리아 등 엄청 다양한 식당들이 즐비했다.
그중 소위 프랑스 '김밥천국'이라 불리는 비스트로를 몇 번 갔었다.
애피타이저 - 메인 - 디저트 그리고 당연히 free baggette까지 나오는 곳인데, 1일 20유로도 되지 않은 금액에 먹을 수 있는 정말 파리의 김밥천국이었다.
달팽이 요리를 따라한 듯한 왕다슬기 요리와, 직접 채소를 갈아 만든 베지터블 숲
메인으론 양고기, 닭고기 등 육류와 흰살생선 필렛 등의 요리와 곁들임 으깬 감자, 채소들이 한 플레이트에 나왔다. 디저트도 대부분 가게에서 직접 만든 수제품으로 프랑스의 명물 크림 브륄레나 애플파이 등이 함께 서브되었다.
사실 런던의 피카딜리 서커스에서 정말 형편없는 한식을 약 우리 돈 12만 원 정도에 먹고 나니, 우선 리뷰를 의심하고 또 의심한다.
아니 내 나라도 아닌 곳에서 무슨 퀄리티를 따지냐고 하겠지만,
나는 음식에는 진심이다. 많이 먹고 좋아하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그 '정성'을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이다.
그래도 행운의 여신 박여사와의 여행이라 그랬을까? 구글맵에도 아직 등록되지 않은 우리 숙소에서 5분 거리에 있는 한식당 'Hangbok, 행복'을 찾을 수 있었고, 우린 그렇게 프랑스에 머무는 4박 5일 동안 매일 저녁식사 도장을 찍었다.
숙소 근처에 돌아오고 한국식당에 앉아 있으니, 괜히 마음이 편안해지는 느낌이다.
게다가 이역만리 떨어진 유럽땅에 한국식당에서 한국인이 맛있고 야무지게 젓가락질하는 모습이 신기했는지, 양 옆 테이블의 프랑스인 그리고 외국인들이 계속 쳐다보고 '저건 뭐지?' '어떻게 먹는 거야?' 라며 얘기한다.
알아듣고 들리니, 대답을 안 해줄 수가 없어, 옆 테이블의 프랑스인 노부부에겐 메뉴판을 펴 다시 알려주는 오지랖을 부렸으나, 아빠와 프랑스 아저씨와의 짧은 영어 대화로 식당 분위기는 더욱 화사해졌다.
엄마, 아빠를 모시고 다니다 보니,
내가 여기까지 와서 현지의 식도락을 즐기지 못하는 게 말이 되나?
아니 엄마는 왜 이렇게 코즈모폴리턴적이지 못하는가?라는 부분에 많이 다투었고,
엄마 또한 '든든한 끼니'가 참 중요하신 분인데, 우리 입맛에 맞추려고 들어 간 식당에서 식사에 힘들어하시는 모습을 보니 한 편으론 안타깝고, 솔직히 답답하기까지 했다.
보이지 않은 내 맘 속에 괜스레 엄마가 미워지는 철딱서니 없는 마흔 줄 딸내미.
전 세계 어딜 가도 있는 한국식당인데 그것 좀 찾아 하루 한 끼 든든하게 드시게 하면 어떻다고, 내가 그렇게 심술내고 툴툴거렸을까.
그냥 아무것도 안 해도, 숙소에 앉아 프랑스, 런던 거리를 바라만 봐도 행복하다는데, 뭘 그렇게 지치고 힘들게 빡빡하게 모시고 다녔는지..